[프라임경제] 최근 콜센터 실습생의 비극을 그린 영화 '다음 소희'가 주목받고 있다. 이 영화는 지난 2016년 전주의 한 콜센터로 현장실습을 간 고등학생이 우울증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자살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했다. 콜센터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콜센터 실습생 소희는 그 누구보다 밝게 고객 상담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설, 성희롱 등 악성민원에 시달리며 표정이 점점 어두워진다. ⓒ 트윈플러스파트너스·키이스트
영화에 비친 콜센터는 끊임없이 울려대는 벨소리로 가득한 사무실, 마치 실적 채우기에 급급한 '콜 공장'처럼 보였다. 여기에서 상담사들은 낙오자가 되지 않으려고 한 콜이라도 더 받아 응대율을 높이고, 상품을 해지하겠다는 고객을 설득해 방어하는데 안간힘을 쏟고 있었다.
이처럼 응대율에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에서는 응대율과 실적을 목표치에 맞추지 않으면 우리팀 모두에게 피해가 가는 상황이라고 상담사들에게 겁박한다. 실적에 대한 압박은 실습생인 소희도 예외는 아니었다. 응대율이 곧 급여에 반영되는 '인센티브'와 직결되다 보니, 상담사인 근로자 입장에서도 회사 입장에서도 실적은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달콤한 쿠키'인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도 생각해 보자. 원청사는 보여지는 '성과 지표'를 통해 운영업체를 선정하는데 그게 바로 '응대율'이다. 이런 이유로 운영업체는 재계약을 위해 목표치인 '응대율'을 맞춰야 하고, 상담사들에게 '인센티브'라는 당근으로 유인책을 쓰고 있다.
이렇게 기본급에 인센티브까지 두둑이 얹은 급여가 꾀 쏠쏠하면 좋으련만 상황은 그렇지도 않다. 콜센터 상담사 급여는 오랫동안 최저임금과 맞닿아 있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해 업계는 '제살 깍이식 최저가 입찰'이 낳은 결과라고 보고 있다.
콜센터 업계 한 관계자는 "콜센터 업계는 외형적으로 성장했을지 모르지만, 상담직원의 근무환경이나 조건은 갈수록 열악해지고 있다"면서 "급여나 인권, 복지 수준은 외형적 성장에 못 미치는 점이 아쉽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운영사가 '최저가 입찰'로 수주를 하려다 보니 상담사 복지비를 비롯해 퇴직충당금, 연차 비용 등을 줄여서 제안했기 때문에 사업비는 어느 시점부터 정체돼 있다"면서 "결국 싼 가격을 앞세운 최저가 출혈경쟁이 낳은 폐해"라고 비판했다.
감정노동도 높은 이직률을 부추기고 있다. 칼을 들고 센터를 찾아오겠다는 고객부터 욕설을 퍼붓거나 성희롱까지 일삼는다. 감정에 격해진 고객들은 수화기 너머로 보이지 않는 상담사에게 마구 불쾌한 감정을 퍼붓는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상담사들은 '먼저 전화를 끊겠다'고 용기내 말하고, 휴식시간을 갖는 게 전부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콜센터 역할을 재정립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기업들은 상담사를 앞세워 욕받이 역할만 부추길 것이 아니라 고객 접점에서 고객 소리를 귀담아 듣는 콜센터의 근본적인 역할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콜센터는 고객에게 전문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인식개선도 필요하다.
또한 콜센터 상담환경을 바꾸려면 최저가 입찰이 아닌, 전문성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 최저 비용으로 최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효율성'보다 '제 값'을 책정하고, 받아서 상담사 복지와 환경개선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힘든 일을 하면 존중받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 한다고 더 무시해. 아무도 신경을 안 써."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동안, 콜센터 업계는 성장했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 또 다른 소희가 나오지 않으려면, 고객들도 전화를 걸기 전에 한번만 더 생각해 보자. 지금의 내 감정을 분풀이하는 게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르는) 상담사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는 않는지 말이다.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