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최종 사업완료 후 예상 조감도(이화교, 남→북 방향). © 서울시
[프라임경제] 최근 전국적으로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설치,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대규모 지하차도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달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참사 여파로 '도로 지하화'가 재난 대응 측면에서 취약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면서 해당 사업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지하차도는 교통체증을 완화하는 동시에 도시경관을 해지지 않는 등의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여기에 △소음·분진 △지역 단절 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통량이 많은 대도시권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1년 국민권익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지하차도는 925개다. 2022년 서울시 도로시설물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 지하차도는 164개 총 연장 54㎞ 면적 88만3411㎡에 달한다.
다만 지하차도와 같은 지하공간은 침수나 화재 등 사고 발생시 대형 재난으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 단점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최근 집중 호우 등으로 인한 인명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방재 대책만으로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와 지자체 등에서 기후 변화를 염두에 두고, 지하차도 조성 사업 등과 관련해 설계 지침 및 방재 기준 등을 강화하고 있는 추세"라며 "다만 예측 범위를 벗어난 기상 이변 탓에 현재 재난관리 체계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라고 우려했다.
이런 연유 탓에 지하차도 설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등 시민 우려를 근본적으로 불식시킬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특히 지하 차도 특성상 폭우에 매우 취약하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효율'보단 '안전' 위주 방안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극단적 기상 현상에 잦아진 재난 사고…사회적 불안감 확산
최근 기후 변화 여파 탓인지 기존 장마와는 다른 기록적 폭우 현상이 잦아지고 있다. 올해 장마의 경우 △누적 강수량 역대 3위 △일평균 강수량 역대 1위 등 역대급 기록을 남긴 채 종료됐다는 게 기상청 설명이다.
물론 장마 강수 일수는 평년과 비슷한 21.2일이다. 반면 누적 강수량은 관측(1973년) 이래 역대 3위 수준인 648.7㎜에 달한다. 일평균 강수량(30.6㎜)으로 따지면 역대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셈.
미호천 제방 유실로 침수된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해양 경찰 등 구조대원들이 도보 수색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달에는 서울 동작구 폭우에 있어 기상청이 직접 '극한 호우' 긴급재난문자를 처음으로 발송하기도 했다. 지난해 중부지방 집중 호우 계기로 기상청은 △1시간당 50㎜ △3시간당 90㎜ 이상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할 경우 행정안전부를 거치지 않고, 직접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도록 관련 법규가 개정된 바 있다.
문제는 이런 집중 호우 현상이 매년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13년 당시 48건에 불과했던 극한 호우 기준에 부합하는 비는 △2021년 76건 △2022년 108건으로 연평균 8.5%씩 증가하고 있다. 더불어 1973년~1982년간 연평균 2.4일이던 '시간당 50㎜ 이상 강수일수'도 2012년부터 2021년까지 6.0일로 늘었다.
국립기상과학원이 발표한 '2022 남한상세 기후변화 전망보고서'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수준과 유사하게 온실가스 배출이 지속되는 경우(고탄소 시나리오; SSP5-8.5) △21세기 전반기(2020~2040년) △중반기(2041~2060년) △후반기(2081~2100년) 1일 최대 강수량은 현재와 비교해 각각 14%, 28%, 36% 증가한다. 상위 1% 극한 강수일수도 0.2일, 0.3일, 0.6일 증가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폭우로 인한 침수 사고는 해마다 끊이지 않고 있다. 2019년 감사원 '대도시권 지하차도 안전관리 실태 점검'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4년 4건, 2015년 3건이었던 지하차도 침수사고 발생 건수가 △2016년 8건 △2017년 24건 △2018년 10건(1~7월 기준)으로 늘어난 바 있다. 특히 올해에는 청주 궁평2지하차도(이하 오송 지하차도) 참사로 인해 14명이 숨지기도 했다.
◆"데이터 토대 대책 마련" VS "사업 원점 재검토 필요"
14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계기로 △영동대로 복합개발 내 지하차도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경부간선도로 지하화 등 현재 계획된 지하차도 조성 사업 안전 대책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특히 박원순 전 서울시장 시절, 기본 계획이 수립된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은 지하에 GTX 등 대중교통 복합환승센터와 상업시설 등을 조성하는 한편 지상을 녹지광장으로 변모시키는 사업이다.
해당 사업에 대한 침수 등 안전 이슈가 불거진 건 지상광장 조성을 위한 '480m 길이 대형 지하차도 설치' 때문이다. 도심광장 효용성과 도시경관 등을 고려한 계획이라는 게 서울시 입장이지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6월29일 서울시청에서 정수용 서울시 지역발전본부장이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사업 기본계획을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업계에 따르면 감사원이 강화된 설계기준으로 사전 침수 대책 등을 수립하도록 권고할 정도로 지대가 낮아 침수 위험성이 상존한 지역이다. 더불어 지하차도 완공시 시간당 최대 6000여대에 달하는 차량이 통과하고, 교통 이용객이 하루 60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재난 발생시 대형 참사로 번질 위험이 매우 높다.
오는 2028년 개통 목표로 하반기 착공을 앞둔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의 경우 오송 지하차도와 같이 하천변(중랑천) 인근에 위치한 만큼 참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중량천변은 대표 상습 침수 지역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집중 호우로 인한 수위 상승 때문에 동부간선도로 양방향 전 구간이 전면 통제된 바 있다.
경부고속도로 지하화 사업 중 하나인 '경부간선도로 지하화'의 경우 국내 최대 통행량을 보이는 만큼 침수·화재·교통사고 등에 대한 철저한 방재 대책이 요구되고 있다. 해당 사업은 양재~반포 구간(6.9㎞)에 중심도 지하도로를 설치하고, 지상에 도로와 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이외에도 △경인고속도로 △경기도 자유로 △테헤란로(이하 서울) △언주로 △도곡로 등도 연구용역을 진행하거나, 예비 타당성 조사를 시작하는 등 지하화 계획이 검토되고 있다.
정부 및 지자체는 이런 지하차도 사업들과 관련해 철저한 타당성 조사 및 설계기준 강화 등 안전 대책을 마련한 만큼 기본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달리 전문가들은 극단적 기상 현상이 뉴노멀이 된 상황에서 빈도 개념 등 과거 데이터 기반한 방재성능목표 및 설계기준 상향 등 대책이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이에 따라 지하차도 사업에 대한 원점 재검토 등 전향적 접근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개발 욕구는 다양하고 공간은 부족한 과밀 상황에서 지하차도 건설은 필연적으로 보이지만, 위험 요인을 간과한 무분별한 개발은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특히 지하차도 내 사고는 지상에 비해 큰 규모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고, 침수뿐 아니라 화재, 지진, 폭발사고, 테러 등 여러 재난 사고에 근본적으로 취약한 구조이기 때문이다.
교통·재난안전 분야 전문가는 "침수 등으로 인한 재난 사고 근본 원인은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효율' 측면에서 공간 활용을 검토했다면 이젠 '안전' 중시 관점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 근본적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