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하 한국재무학회 책임연구원이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에 따른 재무적 파급효과를 설명하고 있다. = 장민태 기자
[프라임경제]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 시 약 15조 규모의 국가적 손실이 예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산업은행은 부산 이전을 전제로 한 보고서를 들고 국회 설득에 나서고 있다. 이는 '법 개정 후 부산 이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국회 앞에서 약속한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발언과도 전면 배치된다.
31일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이하 노조)는 서울 여의도 소재 산업은행 본점에서 '부산 이전 타당성 검토 연구용역 결과 발표회'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김현준 노조 위원장은 산업은행 부산 이전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관련 "객관적이고 정략적인 분석 결과를 정부·국회·국민에게 알리는 자리"라고 강조했다.
앞서 노조는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의 타당성을 검토하기 위해 한국재무학회와 금융경제연구소에 연구용역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날 한국재무학회와 금융경제연구소는 발표회에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재무학회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부산으로 이전할 경우 10년에 걸쳐 약 7조39억원의 기관 손실이 발생한다. 손실은 수익감소 요인과 비용증가 요인으로 분석됐다. 수익감소 요인은 △동남권에 절대적으로 적은 거래처 △기존 고객 거래 중단 △신규 딜에서 배제 △인력 이탈 등이다. 비용증가 요인으로는 주거 공급 및 정착 지원비와 퇴직금 등을 꼽았다.
실제 조사 기업인 엠브레인이 노조 의뢰를 받아 산업은행 본점 거래처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 930명 중 72.6%는 산업은행 부산 이전으로 불편 발생 시 타 금융기관과 거래하겠다고 답했다.
아울러 한국재무학회는 산업은행 본점 이전으로 인한 국가 경제적 파급효과 축소 규모를 약 15조4781억원으로 예상했다. 반면 부산 이전으로 창출될 파급효과는 1조2452억원에 불과하다는 게 이들 설명이다.
또 다른 연구를 맡은 금융경제연구소는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산업은행 지방이전은 효과적인 방안이 아니다"라며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산업은행이 진정한 국가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지역성장기금을 조성하고 지방은행과 협력모델을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발언 중인 김현준 산업은행 노동조합 위원장. = 장민태 기자
김 노조위원장은 발표회에서 "산업은행 노조는 사측과 정부가 마땅히 검토했어야 할 이전에 따른 파급효과를 분석해 국책금융기관으로서 국익을 생각하고 맡은 바 소명을 다하고자 한다"며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산업은행 부산이전에 대해 노조는 끝까지 문제를 제기하고 저항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기형 의원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국회와 약속 어겨"
산업은행 사측은 이미 본사 이전을 전제로 한 보고서를 들고 국회 설득에 나선 상태다.
산업은행은 노조보다 앞선 올해 3월 삼일PWC에게 부산 이전 추진 관련 연구용역을 의뢰해 지난 25일 결과 보고서를 받았다. 이 보고서는 △대부분 기능을 이전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이전' △여의도와 부산에 기능을 병행 배치하는 '금융수요 중심형 이전' 두 가지 안을 제언했다.
금융권과 정치권에 따르면 산업은행 사측은 사실상 이전에 해당하는 '지역성장 중심형 이전'을 채택해 금융위원회에 보고했고, 수석부행장 등이 보고서 요약본을 들고 이전에 반대하는 국회의원들을 찾아 설득하고 있다.
산업은행이 국회의원 설득에 나선 건 관련 법 때문이다. 현행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는 산업은행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고 명시돼 있다. 이로 인해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산업은행 본점 이전은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하는데, 현재 국회는 총 300석 중 더불어민주당·더불어시민당에서만 180석을 보유한 여소야대 정국이다.
문제는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이 국회와 약속을 어기고 법 개정도 되기 전에 이전과 관련된 보고서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오기형 의원이 언급한 강석훈 회장의 1차·2차 컨설팅(용역보고서) 발언. ⓒ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록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강 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1단계 용역보고서를 통해 '이전의 타당성'을 검토하고, 법 개정 이후 2단계 용역보고서로 이전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산업은행 사측이 마련한 보고서는 본점 이전 추진 시 역량강화 방안을 담고 있다. 법 개정도 되기 전에 이전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연구를 의뢰한 셈이다.
이에 대해 오 의원은 "해당 보고서는 주문제작형 엉터리 보고서로, 제목이 보여주듯 '지방이전 추진 시' 역량강화 방안"이라며 "이전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하라고 (외부에) 과업을 준 것이 아니라, 부산 이전을 전제로 한 보고서"라고 꼬집었다.
이어 "국회는 산업은행에 '이전의 타당성'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었다"며 "산업은행이 법 개정 추진을 위해 국회에서 실질적인 토론을 하고자 한다면 제대로 된 검토 보고서를 제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