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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가 선택한 미래 장악 키워드는 '나노'

6가지 첨단 나노 소재 기술 최초공개…"차세대 전기차 글로벌 경쟁력 제고"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3.07.20 13:26:26
[프라임경제] #1. 직장인 A 씨는 출근하려고 차를 봤다가 범퍼 쪽에 약간의 긁힘을 발견했다. 차에 적용된 셀프 힐링 기술 덕택에 곧바로 원래 상태로 돌아올 것을 알기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2. A 씨는 전기차를 언제 충전했는지도 잊었다. 높은 효율의 태양전지가 차량 곳곳에 적용돼 있어 자체 생산한 전기로 출퇴근길 주행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두 사례 모두 나노(Nano) 소재를 기반으로 현대자동차·기아가 개발 중인 기술들이다. 1nm(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로, 머리카락 굵기의 10만분의 1에 해당된다. 작은 크기 단위에서 물질을 합성하고 배열을 제어해 새로운 특성을 가진 소재를 만드는 것을 나노 기술이라 부른다.

ⓒ 현대자동차

20일 현대차·기아는 서울 중구 명동에 위치한 커뮤니티하우스 마실에서 '나노 테크데이 2023'을 개최하고, 미래 모빌리티 실현의 근간이 될 나노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이번 행사는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에서 착안해 '나노효과(The nano effect)'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모빌리티 산업에서 소재 단계에서의 기술력이 완제품에서 차별적인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날 현대차·기아는 각기 다른 목적과 활용도를 가진 총 6개의 나노 소재 기술을 소개하고, 별도의 전시공간을 마련해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했다.

구체적으로 △손상 부위를 스스로, 반영구적으로 치유하는 ①셀프 힐링(Self-Healing, 자가치유) 고분자 코팅 △나노 캡슐로 부품 마모를 획기적으로 줄이는 ②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자동차와 건물 등 투명 성능 요구되는 모든 창에 적용 가능한 ③투명 태양전지 △세계 최고 수준의 효율을 자랑하는 모빌리티 일체형 ④탠덤(Tandem) 태양전지 △센서 없이 압력만으로 사용자의 생체신호를 파악하는 ⑤압력 감응형 소재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획기적으로 저감하는 ⑥투명 복사 냉각 필름이다.

이종수 현대차·기아 선행기술원장(부사장)은 "기술 혁신의 근간에는 기초이자 산업융합의 핵심 고리인 소재 혁신이 먼저 있었다"며 "앞으로도 산업 변화에 따른 우수한 첨단 소재 기술을 선행적으로 개발해 미래 모빌리티에 적극 적용해 나갈 것이다"라고 말했다.

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 기술을 적용한 소재. ⓒ 현대자동차


최근 자율주행과 전동화는 기술적 고도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핵심 부품에 발생한 미세한 상처나 마모는 치명적 오류를 불러올 수 있다. 카메라 및 라이다에 난 조그만 상처는 외부 환경에 대한 정확한 판단에 지장을 초래한다. 또 대용량 모터의 초고속 회전으로 움직이는 전기차는 동력 부품의 내마모성과 내구성 확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현대차·기아는 나노 소재를 활용해 마치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고, 마찰이 발생하는 부위에 캡슐이 터지면서 윤활막을 형성하는 기술을 선보였다.

①셀프 힐링 고분자 코팅은 차량 외관이나 부품에 손상이 났을 때 스스로 손상 부위를 치유하는 기술이다.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셀프 힐링 기술은 상온에서 별도의 열원이나 회복을 위한 촉진제 없이도 두 시간여 만에 회복이 가능하고, 반영구적으로 치유가 가능하다. 

우선적으로 자율주행의 핵심 부품인 카메라 렌즈와 라이다 센서 표면 등에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향후 차량의 도장면이나 외장 그릴 등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혹독한 외부 환경에서도 셀프 힐링 성능을 유지하고 발수와 절연과 같은 기능을 더하기 위한 연구도 지속할 방침이다.

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 기술을 적용한 시편. ⓒ 현대자동차


이와 함께 ②오일 캡슐 고분자 코팅은 셀프 힐링의 또 다른 방식인 나노 캡슐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가능성을 확장해 개발된 스핀 오프(spin-off, 파생적으로 발생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부품에 저마찰과 내마모성을 부여해 제품의 부가가치를 향상시킨다. 나노 캡슐이 포함된 고분자 코팅을 부품 표면에 도포하면 마찰 발생 시 코팅층의 오일 캡슐이 터지고, 그 안에 들어있던 윤활유가 흘러나와 윤활막을 형성하는 원리다.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오일 캡슐 기술은 액체와 고체 윤활제의 장점을 모두 갖췄다. 나노 캡슐 내에 액체 윤활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 낮은 비용으로도 높은 윤활 효과를 거둘 수 있고, 고체 윤활제와 같이 넓은 범위에서도 적용이 가능하다.

또 오일 캡슐 코팅은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윤활 효과를 수행한다. 현대차·기아의 자체 시험 결과 부품에 도포된 오일 캡슐 코팅은 부품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전부 마모되지 않고 윤활 기능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기술은 발열과 마찰이 큰 차량의 핵심 동력 전달 부품에 적용돼 내구성과 효율을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에서도 전기차 모터와 감속 기어의 회전량 손실을 줄여 전비 개선을 도모하고 부품 수명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현대차·기아는 엔진의 구동력을 바퀴에 전달하는 드라이브 샤프트(Drive Shaft)에 이 기술을 적용해 양산을 목표로 제품을 개발 중이다. 나아가 향기를 포함한 나노 캡슐을 실내 내장재 마감에 적용해 손길이 스칠 때마다 다채로운 향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페로브스카이트 투명 태양전지. ⓒ 현대자동차


전기차시장에서는 주행가능거리 확대와 충전시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힌다. 현재의 전기차 에너지 시스템은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극적인 에너지 개선을 이루기 힘들다. 더욱이 전자 장치 증가로 전력 사용량이 증대됨에 따라 에너지효율을 향상시키기 위한 고도의 기술 개발이 요구되고 있다.

이에 현대차·기아는 태양전지 기반의 고효율 에너지 생성 기술을 연구하고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태양전지는 실리콘 소재를 기반으로 제조돼 건물 창문이나 차량 글라스처럼 투명한 성능이 요구되는 곳에는 적용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날 공개된 나노 소재 기반의 태양전지는 전동화 차량은 물론, 건물 등에도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어 미래 성장 잠재력이 매우 크다.

현대차·기아가 이날 공개한 ③투명 태양전지는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지닌 페로브스카이트(Perovskite) 소재를 이용한 태양전지 기술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광전효율이 높아 태양전지로 제작했을 때 발전효율이 실리콘 태양전지 대비 30% 이상 높다. 

현대차·기아는 페로브스카이트의 또 다른 특징인 투과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그 결과 광흡수층 두께 조절을 통해 태양광 발전과 물리적인 투명 상태 구현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기존 셀 단위(1㎠) 소면적 연구에서 벗어나 대면적(200㎠ 이상)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모듈 단위로 커진 상황에서도 1.5와트(W)급 성능을 보이는 투명 태양전지를 개발한 것은 세계 최초다.

탠덤 태양전지 셀과 모듈. ⓒ 현대자동차


투명 태양전지 활용성은 무궁무진하다. 기존 불투명 실리콘 태양전지는 전동화 차량 지붕 위에만 한정적으로 적용됐는데, 투명 태양전지는 차량의 모든 글라스에 적용돼 더 많은 발전량으로 전기차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더불어 건물 창문도 대체함으로써 에너지 소비를 절감하는 동시에 외관상으로도 크게 이질감 없는 건축 설계가 가능하다. 이를 위해 현대차·기아는 현대건설 등과 함께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태양전지는 지속가능한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낮은 효율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의 발전 효율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판단에 따라 새로운 방식의 차세대 태양전지를 개발하려는 노력은 세계 각국에서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 역시 실리콘 태양전지 위에 차세대 태양광 소재인 페로브스카이트를 접합해 만든 ④탠덤 태양전지에 주목하고 있다. 두 개의 태양전지를 적층해 서로 다른 영역대의 태양광을 상호 보완적으로 흡수해 35% 이상의 에너지효율 달성이 가능한 기술이다.

현대차·기아는 2022년 UNIST(울산과학기술원)와 공동연구실을 출범하고 고효율의 탠덤 태양전지를 개발 중이다. 자체 시험 평가에서 세계 최고 수준인 30% 이상에 달하는 에너지효율을 기록하는 등 값진 성과도 내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친환경차의 △후드 △루프 △도어 등 태양광을 직접적으로 많이 받는 부위에 탠덤 태양전지를 적용하는 것만으로도 일상주행이 가능한 전력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현재 일평균 태양광 발전만으로(국내 평균 일조량 4시간 기준) 20㎞ 이상의 추가 주행거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대차·기아는 "태양광을 받는 면적이 큰 전동화 상용차에 탠덤 태양전지를 적용하면 전력 생산 측면에서 더 큰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며 "글라스 부위에 적용 가능한 투명 태양전지까지 결합시켜 차체 대부분을 발전 시스템으로 활용할 경우 진정한 의미의 탄소중립 모빌리티에 한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압력 감응형 소재 체험폼. ⓒ 현대자동차


⑤압력 감응형 소재는 별도의 센서 없이 소재에 가해지는 압력을 전기 신호 형태로 변환하는 기술로, 차량의 발열시트 폼(foam) 내부에 적용돼 탑승자의 체형 부위만 정확하게 발열시켜 준다. 필요하지 않는 부위의 발열을 억제함으로써 소비전력 절감을 돕고, 전동화 모델은 추가 주행거리 확보가 가능해진다.

소재 개발에는 탄소나노튜브(Carbon Nano Tube, CNT)가 활용됐다. 탄소 집합체인 탄소나노튜브는 튜브 모양의 구조를 갖추고 있어 가볍고 튼튼하며 전기전도도 및 열전도도가 뛰어나다. 시트에 일정 수준 이상의 압력이 가해지면 탄소나노튜브의 접촉이 증가해 저항이 줄어들고 전류량이 늘어나 해당 부위에 발열이 발생하는 원리를 활용했다.

현대차·기아는 이 소재를 특수 용액에 균일하게 분산시켜 스펀지와 같은 시트 폼에 코팅하는 공정 기술을 독자 개발했다. 시트 폼의 유연한 물리적 성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용액을 최대한 얇게 코팅했으며, 반복되는 마찰에도 성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내구성도 확보했다.

압력 감응형 소재는 발열시트 외에도 다양한 미래 기술과 연계돼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편의를 제공할 전망이다. 자율주행 시대에는 다른 센서를 대신해 탑승자의 정확한 자세 감지가 가능하고, 호흡·심박수와 같은 생체신호를 감지해 건강상태를 진단하는 서비스도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압력 감응형 소재 체험폼. ⓒ 현대자동차


마지막으로 물체가 복사열을 흡수하는 양보다 방출하는 양이 많아 온도가 내려가는 현상을 복사냉각이라고 한다. 현대차·기아가 개발한 ⑥투명 복사 냉각 필름은 차량 유리에 부착돼 더운 날씨에도 별도의 에너지 소비 없이 차량 내부의 온도 상승을 낮추는 친환경 기술이다. 차량의 글라스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양산성을 고려해 대면적화까지 성공한 사례는 현대차·기아가 세계 최초다.

다층 필름 구조로 이뤄진 이 소재는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자외선 △가시광선 △근적외선과 같은 열을 차단하고, 효과적인 복사 냉각을 위해 원적외선대의 열을 방사한다. 기존 틴팅 필름이 외부의 열 차단만 가능한 반면, 투명 복사 냉각 필름은 열이 외부로 방출되도록 하는 기능이 추가돼 탄소 저감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현대차·기아가 실제 차량에 적용해 자체 시험한 결과에 따르면, 복사냉각 필름을 부착한 차량은 기존 틴팅 필름 적용 차량보다 최대 7℃ 가량 실내 온도가 낮아졌다. 여름철 차량 탑승 직후 에어컨 사용량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됨으로써 차량 운행주기 탄소배출량은 약 0.3~0.8% 저감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동화 차량을 비롯한 PBV와 같은 미래 모빌리티의 유리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 추세에 따라 이 기술의 활용도는 점차 커질 전망이다. 또 건물이나 태양전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응용돼 추가적인 에너지 사용 없이 효율적인 열 관리와 이를 통한 탄소 저감이 가능할 전망이다.

홍승현 현대차·기아 기초소재연구센터장(상무)은 "오늘 공개된 나노 기반 기술들은 현대차그룹 소재 전문가들이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다"라며 "나노 소재 기술은 모빌리티 산업 변화를 선도할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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