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레이저 치료를 받을 때 "원장님, 레이저 치료를 받으면 피부 각질이 얇아지나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 질문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고 의학적 근거도 없다. 다만 각질과 피부 건강이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은 흥미롭다.
피부과 전문의들이 강조하는데도 대중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것 중 하나가 '각질'이다. 때를 밀면 피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도 여전히 때를 밀려고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뿐 아니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각질이란 단어를 입력하면 '각질 제거' '얼굴 각질 제거' 등 각질 제거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콘텐츠나 제품들이 많이 올라와 있다. 각질은 빨리 없애버려야 하는 대상으로 오인하게 할 정도다.
'때'는 '옷이나 몸 따위에 묻은 더러운 먼지 등의 물질 또는 피부의 분비물과 먼지 등이 섞여서 생긴 것'으로 설명돼 있다.
세탁의 목적은 옷에 묻은 때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런데 피부에 묻은 때도 옷을 세탁하듯 제거해야 할까?
피부의 때는 먼지 등 더러운 외부 물질뿐 아니라, 죽은 세포와 각질 세포 등이 섞여 있어 비누, 클렌징 크림, 샤워젤 등을 써서 세안이나 샤워만 해도 대부분 씻어낼 수 있다.
만약 때밀이 수건 등으로 피부를 밀면 때만 떨어져 나가지 않고 피부 각질까지 제거된다. 문제는 이렇게 제거되는 각질은 '오물'이 아니라, 피부의 한 부분이라는 점이다.
피부는 맨 위에서부터 각질-표피-진피-피하지방으로 나누는데, 각질을 따로 나누지 않고 표피에 포함하는 분류법도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표피 세포의 약 95%는 각질을 만드는 각질 형성 세포다. 피부의 표피에는 면역에 관여하는 랑게르한스세포, 자외선 차단에 관여하는 멜라닌세포 등의 역할도 있으나, 주된 임무는 각질을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각질은 피부의 수분 증발 억제 등 여러 역할을 하는데 그중 하나가 '생체 방어', 즉 면역 기능이다. 그래서 각질을 '장벽대(barrier zone)'라고도 한다.
표피에 있는 각질 형성 세포는 다양한 종류의 면역 물질(사이토카인 등)을 분비하며, 세균이나 바이러스, 곰팡이 등이 침투할 때 면역 반응을 통해 차단하는 벽과 같은 작용을 한다는 뜻이다.
각질은 죽은 세포의 세포막과 그 사이를 채우고 있는 지질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매우 약하게 붙어 있다는 특징이 있다. 때수건으로 밀거나 각질 제거제를 사용하면 쉽게 떨어져 나간다.
각질이 떨어져 나간 자리의 피부는 염증, 면역 반응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뿐 아니라 수분도 쉽게 증발한다.
수분이 빨리 손실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탄력이 감소한다. 평소 피부의 산도는 4.5~5로 약산성을 띠는데, 때를 밀거나 각질을 과도하게 제거하면 알칼리성으로 변한다. 피부의 산도가 알칼리성으로 바뀌면 각질층 재생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다.
때를 밀거나, 각질 제거제를 과도한 사용하는 것은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장벽을 스스로 허무는 것과 마찬가지다.
면역을 강화하려고 백신을 접종하고, 건강식품까지 챙겨 먹는 사람들이 면역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피부의 각질을 없애 버리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글. 김영구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강남세브란스 피부과 전공의 수료 / 피부과 전문의 / 대한피부과학회 정회원 / 대한피부과의사회 정회원 / 대한의학레이저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