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나노 입자가 훼손된 신체 일부를 자가 복구한다. 또 몸 속의 나쁜 종양들을 나노입자가 제거한다. SF영화의 한 장면이다. 그런데 이러한 치료 장면이 멀어보이지 않는다. 국내에도 나노 입자로 약물을 전달해 난치성 질환을 해결하기 시작했다.
주인공은 강재승 엔테라퓨틱스 대표다. 엔테라퓨틱스는 인천TP와 탭엔젤파트너스가 공동주관한 보건복지부 K-바이오헬스지역센터 지원사업 '바이오 창업경진대회'에서 최우수팀으로 선정된 기업이다.
서울대 의대 해부학 교수, 과학기술우수논문상, 서울대학교병원 의생명연구원 교수, 'FACULTY of 1000PRIME'우수논문 선정…. 강재승 대표를 표현하는 말이다. 탄탄대로를 걷던 서울대 의대 교수가 3년 전 돌연 스타트업이라는 황무지에 뛰어들었다. 인류의 오랜 숙제인 부작용과 내성을 없앨 수 있는 난치병 신약 개발을 위해서다. 난제에 한걸음 다가서고 있는 나노 입자를 이용한 약물전달 시스템 이야기를 들었다.
◆내성 없고 쉬운 투여 방식…'혁신형 신약' 현실로
한국은 항생제 사용이 많은 나라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9년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DID, DDD/인구1000명/일)은 26.1로, OECD 29개국 중 그리스와 터키에 이어 3번째로 높았다. DDD(Defined Daily Dose)란 의약품 소비량 측정단위로 성인(70kg 기준)이 하루 동안 복용해야 하는 평균 유지 용량이다. 즉, 26.1 DID는 우리나라 국민 2.61%가 매일 항생제를 복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항생제의 문제는 내성이다. 적절한 사용은 치료가 이뤄지게 돕지만, 내성이 생기면 아무리 좋은 항생제라고 하더라도 내성으로 인해 치료가 어려워진다. 항생제 이외의 또 다른 대표적인 예가 항암제다. 암세포에서 발생하는 항암제 내성은 치료 효과와 민감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내성 발생을 줄이기 위해 투약 양을 줄이면 항암제에 의한 항암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이는 암 재발 및 치료 실패를 초래한다.
부작용이나 내성을 줄이며 기존 약을 획기적으로 뛰어넘는 방법은 없을까. 강재승 엔테라퓨틱스 대표는 '나노입자'에 약물 전달 시스템을 탑재해 체내에 전달하는 방식을 통해 부작용과 내성이 없는 '혁신형 신약'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강 대표는 기존에 사용되던 약들의 부작용과 한계점에 주목했다. 일반적으로 약은 생체 내에 투여됐을 때 오랫동안 유지되며 효과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하게 표적이 되는 체내 질환 관련 장기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엔테라퓨틱스의 '다공성 실리콘 나노입자'는 나노 입자에 담긴 약물이 일반 약물보다 더 오랜 시간 체내에 머물면서, 목표 표적 부위까지 정확히 도달한다. 사진은 다공성 실리콘 나노입자의 최종 전자현미경 사진. ⓒ 엔테라퓨틱스
엔테라퓨틱스의 '다공성 실리콘 나노입자(porous silicon nanoparticle)'는 생체 독성이 상당히 낮고 약물의 탑재 효율이 높다. 탑재된 약물의 방출 시간과 장소를 조절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쉽게 말해 나노 입자에 담긴 약물이 일반 약물보다 더 오랜 시간 체내에 머물면서, 목표 표적 부위까지 정확히 도달한다.
입자가 작기 때문에 점막을 통한 침투도 가능하다. 엔테라퓨틱스는 섭취를 통해 약을 투여하는 기존 경구투여 방식에서 벗어나 비강 내 투여를 통해 코의 점막에 뿌리는 스프레이 형태로 개선했다.
강 대표는 "환자가 가지고 있는 질환에 따라 좀 더 효과를 낼 수 있는 투여 방식을 고민하는 것이 기존 제약회사들의 치료제 개발방법과의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 30년 경력 의과학 전문가의 스타트업 도전
엔테라퓨틱스의 출발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강 대표는 연구 수행을 위해 필요한 원활하고도 안정적인 연구 자금 확보의 문제로 고심이 깊었다.
그는 "연구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 방법은 국가 연구 과제나 제약사들과의 연구 협력을 통한 연구 지원 등인데, 지원 연구비의 규모가 크지 않고 연구지원 기간 또한 길지 않아 어려움이 많았다. 또한 연구 결과물의 평가가 논문에 국한돼 논문을 위한 연구가 될 수밖에 없었다"며 "주체적으로 연구 비용을 충당하고 결과물이 좀 더 실용화돼 국민 건강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지난 30년간 면역, 바이러스학에 기반한 의과학 관련 분야의 전문 연구를 진행해왔다. 그 결과 신약, 뇌과학과 분야에서 15년 이상의 경력을 지닌 김예진 연구소장, 신슬기 책임 연구원과 미국 UCSD의 유기 화학 합성 연구진이 포함된 형태의 다학제간의 연구팀을 구성하고 엔테라퓨틱스를 설립했다.
그는 "우리 팀에는 현재 국내 유수의 대학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임상 연구진까지 포함돼 있다. 이것은 개발된 신약 물질의 안전성과 효능을 검증하기 위한 병원과의 연계 연구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약의 안정성, 검증 단계에 대한 대단한 강점이 된다"며 "기초과학과 기초의학 그리고 임상의학을 전공하는 구성된 연구진의 전문성은 높은 기술력의 원천"이라고 말했다.
엔테라퓨틱스는 지난해 세포 실험에 그쳤던 실험 단계를 1년 여만에 동물 실험 단계로 끌어올렸다. 강 대표가 개발 중인 또 다른 기술은 코로나19 감염증을 포함하는 호흡기계 감염 바이러스 질환의 치료제다. = 김수현 기자
1차 결과물은 뇌종양 치료제다. 나노 입자를 활용해 마치 GPS처럼 뇌 종양 세포에만 도달한다. 내성도 없다. 지난해 세포 실험에 그쳤던 실험 단계는 1년 여만에동물 실험 단계에 접어들었다.
강 대표는 "표적질환을 대상으로 표적질환을 갖고 있는 동물 모델의 생체 효과를 확인하는 단계"라며 "동물 실험에서 효과적이면 임상 1상이나 2상으로 넘어갈 수 있다. 지난해와 비교해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자신이 있다"고 전했다.
강 대표가 개발 중인 또 다른 기술은 코로나 19 감염증을 포함하는 호흡기계 감염 바이러스 질환의 치료제다. 그는 "현재 신종플루를 대상으로 해 비강 내로 투여하는 형태의 약물 개발이 완료됐으며 안전성에 대한 검증이 진행 중"이라며 "안전성에 있어 성공적인 결과를 확보한다면, 신종플루 뿐 아니라 현재 전 세계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코로나 19 치료제에도 관련 기술을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 "국내외 러브콜… 제약사 기술 이전, 국제적 경쟁력 키울 것"
나노 기술을 이용한 치료제 연구개발은 이미 많은 기업 및 기관이 관심을 갖고 있다.
엔테라퓨틱스는 2019년도에 서울대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는 바이오 분야 역점 사업인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단 지원사업의 1기 입주기업으로 선정됐다. 강 대표는 "연구개발만 도맡아 하다 보니 경영·회계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 부족에 계속 부딪히게 됐다. 현재 서울대학교 캠퍼스타운 사업단에서 지원하고 있는 법률, 재정관리 등의 부문의 전문가 조언은 원활한 연구개발을 위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엔테라퓨틱스는 내년 중으로 △뇌종양 △췌장암 △인플루엔자 △코로나19 등 4개 질환에 대한 임상 1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아토피, 건선과 같은 피부질환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연구도 진행한다. ⓒ 엔테라퓨틱스
엔테라퓨틱스의 연구는 단순히 국내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싱가폴에서도 공동연구진과 협업을 하고 있다. 국제적인 네트워크면에서도 경쟁력을 갖고 있다. 엔테라퓨틱스는 최근 2개의 투자사로부터 30억 가량의 유상증자를 유치하며 그 경쟁력을 입증했다. 강 대표는 내후년쯤 200억~300억 규모의 추가 유상증자를 계획 중이다.
또한 내년 중으로 △뇌종양 △췌장암 △인플루엔자 △코로나19 등 4개 질환에 대한 임상 1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아토피, 건선과 같은 피부질환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연구도 진행한다. 강 대표는 "장기적으로 개발해 온 물질을 직접 생산부터 판매까지 진행하는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보다 제조, 판매, 마케팅에 있어서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국내외 제약회사들에게 개발한 기술을 이전 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업 규모를 키워갈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엔테라퓨틱스는 인천테크노파크가 주최하는 보건 산업 분야의 유망 아이디어 및 우수사업모델 발굴 지원을 위한 창업경진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 5월26일 열린 대회에는 바이오 관련 11개 기업이 참여했고, 엔테라퓨틱스는 최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