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대한민국 인구가 줄면서 산업인력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대 초 70만명이 넘었던 연간 출생아 수는 지난해 26만500명을 기록했다. '일할 수 있는 인구'를 뜻하는 생산연령인구는 2020년 3738만명(72.1%)에서 2050년 2419만명(51.1%)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인구 감소는 결국 전 산업의 인력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프라임경제가 산업 전 분야에 대한 인력난을 집중 짚어봤다.
# 지난 주말 장성 A 마을에서는 주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양파 기계 수확 연시회가 열렸다. A 마을은 농촌노동력의 감소와 노령화로 주산작물인 양파․마늘 재배 영농작업 기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농번기 인력난을 해결하고 생산비 절감을 위해서다.
양파재배는 밭작물 가운데 유난히 손이 많이 간다. 그런데 기계화해 인건비를 절반가량 줄였다. 오는 8월 초에는 항공 드론 방제 작업을 통해 병해충 피해 최소화에도 나설 계획이다. 양파재배 농민 장 모씨(62)는 "기계화, 스마트 시스템 도입 후 인건비 40% 정도를 절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45가구 67명이 살아가는 전남 고흥군 포두면 B 마을. 한국고용정보원이 지정한 인구소멸지역 중 하나다. 마을 주민 열의 여섯은 7~80대 고령층. 1998년 8590명이던 포두면 인구수는 2021년 4890명으로 줄었다.
20년간 밭농사를 하고 있는 김 모 씨(65)는 마음처럼 되지 않는 농사에 고심이 깊다. 마을에 배치될 외국인 계절 근로자들이 코로나19 장기화로 집단 감염이 이뤄진 데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농업용 면세유까지 급등한 탓이다. 코로나 이전 11만원이던 근로자 일당은 18만원을 상회한다. 작은 규모로 농사를 짓는 김 씨에게는 버거운 액수다. 그는 "봄 가뭄으로 인해 작황이 좋지 않았는데 웃돈까지 주고 인력을 구해야 한다"며 "농사를 해봐야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 무너지는 1차 산업 "풍년에도 수익 없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 기후 변화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되면서 국내 1차 산업이 인력난으로 무너지고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농업인의 71.5%가 영농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 연합뉴스
국내 1차 산업이 일 할 사람 부족으로 무너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기후 변화 등으로 글로벌 공급망이 붕괴됐다. 식량위기가 현실화되면서 인도에 이어 이집트, 카자흐스탄·코소보·세르비아는 밀 수출에 빗장을 걸었다. 인도네시아·아르헨티나·러시아·우크라이나 등도 식물성 기름을 포함한 다양한 식료품 수출을 금지했다.
수입 길이 막히자 주 밀가루와 식용유 가격이 곧바로 3~40% 이상 폭등했다. 소비자들은 지갑을 닫았다. 자영업자는 원자재 가격 상승의 시련을 맞고 있다.
1차 산업은 단순한 듯 보이지만 모든 산업과 연결되는 밑바탕이다. 한국은 식량 자급률이 45.8%, 곡물 자급률은 21%에 불과하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농업·농촌에 대한 국민의식 조사 결과 농업인의 71.5%가 코로나19 이후 영농인력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올해 농업 경영에 가장 큰 위협 요소는 '일손 부족(19.4%)'이다. '농업 생산비 증가', '기후 변화에 따른 기상이변과 재배 여건 변화'가 뒤를 이었다.
어촌은 더욱 심각하다. 어업은 외국인 근로자도 기피할 만큼 노동강도가 강하다. 육지의 제조업이나 농업에서 몸값을 높게 불러 어업 외국인 노동자를 채가기도 한다. 외국인 노동자들도 불법노동자가 되는 것을 무릅쓰고 어촌에서 이탈한다.
수산업협동조합중앙회 어업경영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정치망어업의 조업 일수는 출어 횟수(-3.6%), 출어 일수(-3.2%)뿐만 아니라 어획과 관계없이 어구 등을 해중에 투입하는 어로 일수(-13.3%)까지 모두 감소했다. 어획량은 26.2% 줄었다. 출어와 어로 일수가 모두 줄면서 어획량이 20% 이상 감소한 것은 1994년 이래 처음이다.
코로나19 상황이 해소된 후에도 인력난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연구원이 지난 2월 전국 농업 경영인 2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 보고서 '농업인력 부족 문제, 해결이 필요할 때'를 보면 농업 경영인 10명 중 9명은 코로나19 종료 이후에도 농업인력 부족 현상이 지속되거나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내 농림어업 취업자가 급격히 감소(1976년 551만4000명→2021년 145만8000명)하면서,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는 거다.
◆ 인프라 부족…증가하는 인구소멸 농촌
농어촌 인력난의 원인은 다양하다.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어업 인구소멸과 고령화로 전체 인구 파이가 줄어든 것이 원인"이라며 "여기에 교육, 의료 등의 인프라가 부족하면서 귀농·귀촌 가구는 증가하지만, 일하겠다는 농업인은 적다"라고 설명했다.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1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어가 인구수는 전년과 대비해 각각 4.3%, 3.4%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인구 소멸의 핵심 근원이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된 인프라에 있다고 분석했다. ⓒ 프라임경제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2021년 농림어업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농가 수는 103만1000가구로 전년(103만5000가구)보다 0.4%(4000가구) 줄었다. 이에 따라 전체 가구에서 농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4.4%로 전년보다 0.1%포인트 떨어졌다.
인구 감소 폭은 더 가파르다. 지난해 농가 인구수는 221만5000명으로 전년(231만4000명)과 견줘 4.3%나 감소했다. 총인구 대비 농가 인구 비율은 4.3%로 전년보다 0.2%포인트 감소했다. 어가 인구수는 9만3800명으로 2020년(9만7100명) 대비 3.4% 줄었다.
전문가들은 인구소멸의 핵심 근원이 수도권과 광역시에 집중된 인프라에 있다고 분석한다. 도시와 비도시 간 불균형 심화로 지역 내 △교육 △교통 △의료 △문화 △복지 등이 축소되면서 결국 거주지로서의 불편이 가중돼 거주민이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경기연구원 관계자는 "자녀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이상의 연령이 되면 대부분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며 "지역 내 소규모 도시와 준도시가 소멸하는 것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의 대응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 농어업 고령화에 기계화도 어려워
전문가들은 인력난의 이유로 농어업의 고령화도 꼽는다. 우리나라는 출산율은 줄고, 평균 수명은 늘어나면서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있다. 고령 인력이 주를 이루는 농어촌의 특성상 생산 가능 인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65세 농,어가 고령인구 비율은 각각 46.8%, 40.5%를 차지했다. 전국 평균치인 17.5% 보다 약 2배 이상 높은 수치다. ⓒ 프라임경제
통계청 농림어업조사 결과에 따르면 65세 이상 농가 고령 인구 비율은 46.8%다. 전년보다 4.5%포인트 증가했다. 70세 이상 농가 인구는 72만명이다. 전체 농가 인구의 3명 중 1명을 차지한다.
반면 40세 미만 청년농은 31만2000명으로 30만명대를 겨우 유지했다. 전체 농가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4.1%다. 2017년 40만명을 넘어섰던 청년농은 2018년 30만명대로 주저앉았고, 지금은 30만명대마저 위협받고 있다.
어촌은 고령화 진행속도가 농촌 지역보다 빠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어촌의 65세 이상 고령화율은 36%에서 증가한 40.5%로, 전국 평균치인 17.5%보다 약 2배 이상 높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인한 어촌 소멸 위기가 현실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한편, 전체 가구원 수 감소와 고령화 문제를 상쇄할 수 있는 기계화 보급률은 고령화 속도보다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영농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밭 농업 기계화율은 61.9%에 불과했다. 파종과 정식 작업은 12.2%, 수확 작업은 31.6%로 특히 저조하다. 쌀을 제외한 작물의 경우 밭 구조 특성상 농기계가 인력을 대체하기 힘들다는 의견도 많다.
농업인 김 모 씨는 "기존 작물 재배에 기계화를 들이려면 돈도 많이 들고 작동법을 익히는 것도 쉽지 않다"라며 "대부분 고령인 주민들이 많아 설치 및 유지관리 등은 생각하고 있지도 않다"고 전했다.
◆ 코로나19 재확산에 계절 근로자 차질…농어민 긴장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국내에 들어오기로 했던 외국인 계절 근로자 입국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농어민의 불안감도 높아지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인 계절 근로자 수급도 차질을 빚고 있다. 코로나19 장기화 여파로 국내에 들어오기로 했던 외국인 근로자 95% 이상이 들어오지 않고 있다. 이들을 고용하던 농어민들에게는 치명적인 타격이다.
정부는 부족한 △제조업 △건설업 △서비스업 △어업 △농·축산업 일손을 메우기 위해 최장 4년 10개월 동안 취업할 수 있는 고용허가제(E-9)와 5개월 동안 체류 가능한 계절근로자제(E-8)를 지난 2004년과 2015년 도입했고, 연간 700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농어촌으로 향했다.
지난해 외국인 계절 근로자 배정 인원 6216명 중 입국 인원은 504명, 약 8%에 불과했다. 2020년은 4917명 중 0명을 기록했다. 고용허가제 인원은 6400명 이상이 배정됐지만, 지난해 입국자는 1086명에 그쳤다. 수산분야에선 고용허가제 배정 2441명의 6.3%인 153명만 공급돼 소규모 어선의 출어 포기가 이어졌다.
정부가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추진했던 외국인 근로자 입국 여부도 불투명해졌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14일 코로나19로 지연됐던 외국인 근로자의 신속한 입국을 위해 지난 2년간 입국하지 못했던 2만6000여명을 8월까지 우선 입국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밖에 올해 고용허가서를 발급받고도 입국하지 못한 2만8000여명도 연내 입국을 추진하는 등 올해 말까지 7만3000여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투입해 인력난을 해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하지만 여름철 코로나19 재유행 조짐이 보이면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계절 근로자들을 절실하게 기다리던 농어민들은 참담한 심정이다. 지난 2년 동안 외국인 근로자의 입국이 중단되면서 노동력 부족으로 생산량에 차질을 빚었는데, 이번 입국마저 불발되면 올가을 농번기, 성어기 인력난이 예상돼서다.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 관계자는 "농어가의 규모화와 전문화가 진척되면서 각 지자체에서 지원을 늘리고 있지만 인구 감소와 고령화, 젊은 층이나 외국인 근로자의 부족 등으로 일할 사람을 찾기 어렵게 됐다"며 "국가 기반인 1차 산업이 흔들리면서 세계적인 식량전쟁의 우위도 점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