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얼마 전 한 지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원장님, 제 딸이 동영상 사이트에서 식초와 밀가루로 점을 뺄 수 있다는 내용을 접한 뒤 따라 해보고 싶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황당한 질문이라 "의학적 근거가 없는 내용이라면 따라 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라는 원론적인 답변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동영상 사이트들에서 직접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다양한 내용이 있었는데 식초(또는 사과식초)와 밀가루, 베이킹소다 등을 섞어 점, 검버섯, 기미를 뺄 수 있다는 것이 많았다. 식초, 밀가루, 식용 베이킹소다는 식품으로 먹는 것이므로 피부에 발라도 안전하다는 것을 은근하게 내세우고 있었다.
그 외에 치약으로 기미를 해결한다는 내용, 해외 직구를 통해 성분이 분명하지 않은 연고, 크림, 화장품 등을 이용해 점을 '감쪽같이 뺄 수 있다'라는 주장들도 영상 사이트나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올라 있었다.
물론 이에 대해 피부과 전문의들이 "식초나 베이킹소다를 피부에 바르면 염증이나 피부 손상을 입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라는 콘텐츠를 올려놓기도 했다. 하지만 피부과 의사들의 콘텐츠는 조회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을 보면 의사의 말은 인기가 없는 듯하다.
그렇다면 식초로 점이나 검버섯을 뺄 수 있다는 주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정확한 내용을 검증해보지는 않았으나 산성 성분인 식초를 계속 피부에 바르면 화학물질에 의한 미세한 손상이 생기는 과정에서 점이 희미해지거나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밀가루에 점을 뺄만한 그 어떤 성분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인터넷의 글과 영상 사이트들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점을 빼준다는 물질로 식초 외에 TCA, 글리콜산 등도 언급하고 있다.
강한 산성을 띠는 물질인 TCA나 글리콜산은 병원에서 화학박피를 할 때 사용했던 것들이다. 한 블로그에서는 '산성도(pH)가 2.0에 가까운지를 확인해야 한다'라는 내용도 있는데 pH2.0이면 강한 산성이다.
식초로 점을 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먹는 식초로 점을 뺄 수 있다고?"라며 귀가 솔깃해질 수 있다.
하지만 식초의 화학 성분 중에 점이나 검버섯의 색소를 분해하거나 제거해주는 것은 없다. 결국 식초의 산성 성분의 피부 손상 작용을 이용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어 쓰면 점을 빼는 효과가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을 뿐 아니라, 위험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으면 비율에 따라 양잿물이라고 하는 초산나트륨 수용액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식초와 베이킹소다를 섞어서 화장실, 욕실 청소 세제로 쓴다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이 절대 안 된다고 지적한 적도 있다.
화장실 청소에도 쓰지 말라는 물질을 얼굴에 발라 점, 검버섯을 없애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될까?
레이저로 점 빼는 비용이 매우 비싸다면 그나마 이해라도 할텐데, 비용이 크게 낮아진 요즘 왜 이런 터무니 없는 주장들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지 모를 일이다.
화학박피는 치료 효과가 있으나, 부작용 위험도 있으므로 의사들도 시술할 때 매우 조심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집에서 화학박피를 하는 방법'과 같은 문구를 접하면 안타깝고 답답하다.
글. 김영구 원장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졸업 / 강남세브란스 피부과 전공의 수료 / 피부과 전문의 / 대한피부과학회 정회원 / 대한피부과의사회 정회원 / 대한의학레이저학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