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최근 <알쓸범잡>이라는 시사 프로그램이 대구에서 일어났던 학교폭력으로 인한 자살사건을 재조명 하였다.
대구에 한 학생이 학교 폭력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건인데 가해 학생들이 피해학생에게 한 행동은 정말 상식을 벗어난 행동들이었다. 집까지 따라와 폭행을 하고 물고문뿐만 아니라 목에 줄을 감고 과자부스러기를 먹게 하는 등의 비인간적인 행동들을 이어왔다. 그리고 그로 인해 피해학생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혼자 견디다가 그런 선택을 했는지 의아해 했다. 그래서 오늘은 학교폭력의 심각성을 그 무게보다 가볍게 보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던 피해자에 대해 같은 학생으로서 '왜'라는 상황을 언급해보고자 한다.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이라는 이름과 달리 학교 일과가 끝나고도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키즈현대 티스토리
왜 주변에 알리지 않았는지? 라며 피해자에게 죽음을 회피로 보는 시선에 '안타까움이 섞인 무지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왜 피해자는 주변에 알리지 못 했을까.
몇몇 사람들은 학교폭력에 대한 기사나 사실을 접하게 되면 "왜 신고를 안 하지?" "신고하면 되는 거 아닌가?" "왜 부모님께 말하지 않았지?"라고 말한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학교폭력'이라는 이름과 달리 학교 일과가 끝나고도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 등교해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그 후에는 학원이나 동네에서 마주치는 것을 생각하면 하루 중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보다 긴 시간을 가해자인 그들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근거리 통학권에 있는 중학교의 경우 학교와 집 주변에서 더 많은 시간을 가해자와 함께하게 되는 것이고, 고등학생의 경우는 학교에서 있는 시간이 길어 더 오랫동안 폭력을 겪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매일 폭력과 괴롭힘을 당하며 차곡차곡 쌓인 공포감은 더 이상 말로 표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다. 다들 '신고'라는 것을 쉽게 말하지만 몇 개월, 몇 년 동안 이어온 장난이라는 이름으로 비겁하게 포장된 폭행과 괴롭힘을 당하면 괴로움보다 더 큰 공포가 자리를 잡게 된다.
신고를 한다면 앞장서 괴롭힌 학생들은 퇴학 또는 전학 처분을 받을 수도 있지만 그 외의 학생들은 교내봉사 또는 사회봉사 처분만을 받고 다시 피해자 곁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피해자는 보복을 할지도 모르는 가해자들과 함께 한 공간에 다시 있게 되는 것이다.
그 학생들이 괴롭힘을 이어갈지 괴롭힘을 멈출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분명한 것은 피해 학생은 언제 다시 괴롭힘을 당할지 모르는 위기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가해학생들이 무서워 이제껏 이런 상황을 목격하고도 방관해온 학생들이 과연 신고를 했을 때 피해학생의 편을 들어 줄지는 예측할 수 없고 피해자 역시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듯 '신고'라는 두 글자를 통해 학교폭력을 피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문제는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 받지 않는 다양한 사례들과 피해자의 인권이 우선시 되지 못하는 각종 문제 그리고 여전히 존재하는 학교 내에서 쉬쉬하는 분위기가 쉽사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지 못 하는 중요한 이유 일 것이다.
요즈음 성관련 범죄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이 피해자가 이사를 가야 하는 것이냐며 가해자에 대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처럼 학교폭력도 비슷한 상황에서 멈춰 있다. 가해자가 처벌을 받더라도 한 동네에 살면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상황이 오게 되고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무서워 보호 받아야 할 피해학생들은 이사를 가게 되고 그마저도 형편이 안 되는 경우는 계속 공포에 떨며 생활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 가해자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 피해자를 가해자로부터 '온전히 보호를 해주는 정책'과 피해자를 위한 '이사·치료 비용에 대한 지원 정책 확대'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인다.
고형호 서울 휘문고등학교 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