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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톤코츠를 꽃피운 '하카타라멘'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08.22 12:30:48
[프라임경제] 하카타(博多)라멘은 토쿄의 쇼유, 삿포로의 미소와 함께 일본 3대 라멘의 하나로 꼽힌다. 라멘의 자료를 집대성한 라멘박물관은 "삿포로 미소라멘이후 정보화 진전으로 나올 라멘은 대부분 나온 것 같다. 이보다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라멘은 앞으로 없을지 모른다"며 하카타라멘을 극찬한다.

노포 안젠식당의 하카타라멘. ⓒ walkerplus 홈페이지

하카타라멘의 스프는 돼지 뼈로 고아내는 톤코츠 다시를 기본으로 한다. 같은 톤코츠라 해도 재료 부위에 따라 풍미가 달라지는데, 이를 점포의 특성으로 삼는 곳이 많다. 면은 주로 지역 공동브랜드 '라-무기'를 사용한다. 면발이 가늘고 가수율 낮은 라-무기는 스프를 잘 흡수한다. 반면에 쉽게 퍼지는 특성이 있어 라멘 한 그릇에 100g 정도 제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면이 부족하면 카에다마(替玉)라 부르는 추가 면을 시키면 된다. 다만 추가 면에는 스프가 따르지 않으므로 국물 적당량을 남겨 놓아야 한다.

하카타라멘의 양이 적어진 것은 나가하마(長浜)라멘의 영향이다. 후쿠오카 중앙어시장이 위치한 나가하마에는 오래된 라멘집이 많다. 이곳의 생명은 스피드다. 이른 새벽 상인들이 경매 막간에 먹을 수 있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는 면으로 삶는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고, 테이블에 양념과 반찬을 미리 세팅해 놓는다. 양이 부족한 고객에게는 면을 추가로 제공한다. 이러한 구성요소 상당부분이 하카타라멘으로 흡수됐다. 나가하마라멘은 1955년 현재 장소로 옮기기 전부터 어시장과 공생관계에 있었다.

라멘 대부분 그러하듯 하카타라멘도 야타이(포장마차)에서 출발했다. 1940년경 나카스의 산마로(三馬路), 1946년 야나기바시의 하카타소(博多荘)와 하카타역 부근 아카노렌(赤のれん)을 하카타라멘의 원조로 부른다. 스프는 중국풍 맑은 톤코츠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스프가 세월이 흐르며 농도가 변해 오늘에 이르렀다. 다른 한편으로는 쿠루메 바이탕(白湯)의 영향을 받았을 거라는 설도 있다. 어느 쪽이든 1940년대 야타이에서 판매한 톤코츠라멘이 하카타라멘의 뿌리라는 데 이견이 없다.

그 후 야타이는 일본이 고도 성장기를 지나는 동안 대부분 자취를 감추지만, 후쿠오카시에는 아직도 많은 야타이가 있다. 하카타역 부근・나카(那珂川)강변・텐진(天神) 등 특급 상업지 15곳에서 110개의 야타이가 손님을 맞고 있다. 후쿠오카시는 2012년 일본 최초로 야타이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동안 통행방해와 위생문제로 골칫거리였던 야타이를 도시의 명물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후쿠오카 야타이는 도심의 밤을 수놓으며 관광객 유치에도 기여하고 있다.

어느덧 하카타라멘은 일본을 대표하는 라멘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이나 해외의 반응을 고려하면 넘버원으로 쳐도 손색이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트렌드가 맞아 떨어진 측면도 있지만, 끊임없는 개선의 노력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하카타라멘은 면의 경도를 5단계로 구분한다. 카다(보통)를 기준으로 위로 두 단계, 아래로 두 단계가 있어 취향에 따라 선택이 가능하다.

하카타라멘은 고명으로 올라가는 '하카타 만능파'가 유명하다. '먹으면 의사가 필요 없다'는 광고 카피로 잘 알려진 이 쪽파는 비행(flight)야채 대우를 받으며 전국에 공수된다. 양념으로 흰 참깨와 식초에 절인 붉은 생강을 올리는 것도 하카타라멘의 특징이다. 챠슈・목이버섯・김 등 어두운 색상 일색인 토핑에 화사함을 주기 위해서다.

스프를 만들 때 톤코츠 특유의 비린내를 줄이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다시를 낼 때 뼈에 엉긴 피를 제거하고, 생강 등 향신료를 첨가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본인 중에도 톤코츠 냄새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2000년대 들어 일부 프랜차이즈 등에 의해 고농도 스프에 면을 듬뿍 주는 소위 '뉴웨이브' 스타일이 유행되고 있다. 그러나 현지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하카타라멘의 오랜 역사에 비추어 한시적일 것으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전통 있는 노포(老鋪)가 제공하는 라멘은 대체적으로 국물이 산뜻하고 뒷맛도 깔끔하다. 이들 점포에는 양념 겸 밑반찬으로 다진 마늘・참깨・절인 갓(타카나)・붉은 생강이 테이블에 놓인다.

◆후쿠오카시와 하카타 소개

후쿠오카시는 2018년 7월 기준 157만6000명이 거주하고 있는 일본 제5의 도시로 큐슈지방 행정・경제・교통의 중심이다. 중앙부를 흐르는 나카(那珂)강을 중심으로 동쪽의 텐진(天神)과 서쪽 하카타 권역으로 나눈다. 과거 후쿠오카로 불리던 텐진은 백화점・패션빌딩・음식점 등이 밀집된 큐슈 최대의 상업지역이다. 후쿠오카 시청도 이곳에 있다.

반면 하카타는 JR하카타역・버스터미널・항구・공항 등 교통 인프라가 잘 갖춰진 후쿠오카의 현관에 해당한다. 강 가운데 길이 1㎞, 폭 약 200m 되는 삼각주에는 일본 3대 유흥가의 하나로 꼽히는 나카스(中洲)가 있다. 행정구역상 하카타구에 속하고, 북쪽 끝 세류(清流)공원의 야타이촌이 유명하다.

후쿠오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카타(博多)를 알아야 한다. 하카타는 송・명시대의 중국, 고려와 조선, 류큐 등 동남아시아와 무역을 하던 일본 거상들의 활동무대였다. 그들은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일본 최초의 자치조직을 만들고, 도시를 합의제로 운영했다. 독자적 번영을 구가하던 하카타의 지위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것은 서양 교역선이 찾아오기 시작하는 1500년대 중엽이다. 하카타만의 수심이 낮아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무역 기능 대부분이 히라도(平戸)와 나가사키로 넘어가고, 하카타는 중계무역을 통해 상인의 거리로 거듭난다.

후쿠오카라는 지명은 1601년 막부에 의해 영주로 봉해진 쿠로다・나가마사(黒田長政)가 통치의 거점이 될 성과 부속시설을 신축하며 붙인 이름이다. 하카타 동편에 영주와 무사가 거주하는 행정도시가 불쑥 들어선 것이다. 그 후 두 도시는 에도시대 260년간 별 탈 없이 양극체제를 유지하며 공존해 왔다.

두 지역이 통합의 진통을 겪게 되는 것은 1889년 메이지 신정부에 의해서였다. 새로운 지명을 놓고 2차 표결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후쿠오카로 낙착된다. 역사가 유구하고 인구도 많은 하카타였지만, 후쿠오카 측 무사들의 방해로 자신의 이름을 관철시키지 못한 것이다. 그 대신 교통의 중심이 되는 중앙철도역에 하카타를 붙이는데 만족해야 했다.

하카타는 현재 후쿠오카시 7개 구의 지명 중 하나로 남아있다. 물론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과는 거리가 있는 위상이다. 하카타는 일본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지명도가 높다. 각종 마츠리(축제)・공예품・음식・농수산물・각종 기관・상업시설・스포츠시설 등에 이름이 동원되는 것도 하카타의 이러한 역사성에 기인한다. 후쿠오카시는 1989년 부산과 국제교류도시 협약을 맺었고, 츄오(中央)구에 한국영사관을 두고 있다.

◆주변 명소

△하카타역
큐슈와 후쿠오카를 대표하는 큐슈지방 최대 역, 신칸센을 비롯한 각급 재래선이 발착하는 교통의 거점, 1889년 첫 역사 개청 후 두 번의 이전을 거쳐 1909년 지금 자리에 정착, 2011년 3월 큐슈신칸센 개통에 맞춰 대규모 상업역사(JR 하카타City)로 새롭게 탄생, JR큐슈의 본사도 이곳에 있음.

△나카스(中洲)
나카강과 그 지류인 하카타 강 사이 삼각주에 조성된 유흥가, 각종 클럽・바・풍속점포・파친코 등 밤 문화의 모든 요소가 망라된 지역, 3500여개 점포가 밀집해 있고 1일 6만명이 찾아옴, 섬 끝 쪽 세류공원과 야타이가 명물, 야타이는 오후 5시부터 영업 (교통편) 지하철 나카스카와바타(中洲川端)역 주변.

△캬나루(canal)시티
나카스와 인접한 스미요시 지구 4만3485㎡(약 1만3150평)에 건설된 대규모 복합 상업시설, 1996년 4월 오픈, 극장・호텔・라멘테마파크・게임스테이션・캐릭터 숍이 있음, 2011년 추가 오픈된 동관은 H&M・ZARA・ Francfranc・유니클로・Bershka 등 대형 패션업체 16사 입점. (교통편) JR하카타역 하카타 출구에서 도보 10분.

△오호리(大濠)공원
후쿠오카 성 터를 감싸고 있는 호수공원, 중국 항주의 서호를 모델로 삼음, 인공 섬 사이 놓인 연륙교에서 호수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음, 공원 내 미술관과 일본정원도 있음, 후쿠오카성은 1691년 쿠로다(黒田)에 의해 세워진 후 12대 270년간 영주의 거성으로 사용, 메이지시대 성 철폐령으로 천수각 등 대부분 시설해체, 1957년 국가 사적으로 지정. (교통편) 지하철공항선 오호리공원역 도보 5분, 나나쿠마(七隈)선 록폰마츠(六本松)역 도보 10분. 

△우미노나카미치(海の中道) 해변공원
후쿠오카 제1비행장과 해군기지를 거쳐 1981년 국영공원으로 개원, 하카다 해안 260만㎡(약78.6만평)에 유원지・캠프장・오리엔티어링 코스・선인장공원・풀장・잔디광장・수족관이 있고 야외공연장으로도 활용. (교통편) JR 카시이(香椎)선 우미노나카미치역 하차.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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