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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쿄토 식문화 거스른 '쿄토 라멘' 

"라멘은 국민식, 라멘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06.19 16:53:22

[프라임경제] 천 년 넘는 긴 세월 일본의 수도였던 쿄토(京都)는 식문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지정학적으로 바다와 떨어져 소재에 제약을 받으면서도 세련된 조리기술로 야채·건물(乾物)·콩 가공식품의 맛을 살린 '쿄(京)요리'를 탄생시킨다. 화려하지만 간결한 외관, 소금기 옅고 담백한 맛, 오감을 자극하는 색상과 향 등이 일본을 상징하는 요리로 꼽기 손색없다.

新福菜館의 쿄토라멘. ⓒ icotto.jp

이러한 토양에서 쿄토 라멘은 매우 이색적 존재다. 지역의 전통이나 이미지와 상관없이 우선 볼륨이 풍성하고 맛이 진하다. 짙은 국물에 돼지고기 지방이 흩뿌려지는 것 하나만으로도 쿄요리의 정석과는 궤를 달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쿄토 라멘은 1938년 쿄토역 근처 야타이(포장마차)에서 시작됐다. 요코하마 라멘박물관의 자료에 의하면 "어느 날 한 야타이가 우동도 아닌 소바도 아닌 생경한 면류를 팔기 시작했다. 야타이를 끈 사람은 중국에서 건너온 徐永俤(죠에테이)이라는 사람이었다. 이것이 쿄토라멘의 시초였다"라고 한다. 6년 후 그는 역 동편에 '신푸쿠사이칸(新福菜館)'이라는 점포를 차리고 진한 쇼유 스프에 얇게 저민 챠슈를 듬뿍 얹어 인기를 끈다.

이어 1949년 스프 표면에 돼지고기 지방을 뿌려주는 '마스타니'라는 점포가 나타나고, 1971년 '천하일품'이 닭 뼈 스프 베이스의 쇼유 라멘을 출시하며 쿄토 스타일 3종이 완성된다. 신푸쿠테이는 톤코츠(豚骨)다시를 사용하는 진한 쇼유 맛이고, 나머지 2곳은 닭 뼈 다시를 사용한다. 모두 진하고 감칠맛 나는 스프가 특징이다.

특히 닭 뼈를 젤라틴이 나올 때까지 푹 삶아 추출하는 다시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쿄토만의 특징이다. 천하일품으로 대표되는 쿄토 라멘의 걸쭉한 스프는 마치 서양의 스튜가 연상될 정도로 라멘의 새로운 경지를 개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면은 중간 굵기의 각 있는 직선 면을 사용한다.

이들 점포는 지금도 쿄토 라멘의 상징으로 군림하는 한편, 프랜차이즈나 통신 판매를 통해 전국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그밖에도 '라멘 요코즈나(横綱)'와 '라멘 카이리키야(魁力屋)' 같은 전국단위 체인 본부가 쿄토에 있고, JR 쿄토역사 10층에는 '쿄토라멘 코지(小路)'라는 라멘 테마파크도 있다. 쿄토와 함께 칸사이(関西)의 음식문화를 대표하는 오사카가 외부에 내세울만한 라멘을 갖지 못한 것과 비교가 되는 지점이다.

1970년대 초반에는 '쿄토 아카사타나'라는 곳이 맑은 스프에 담백한 맛의 라멘을 들고 나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고 마침내 토쿄에도 진출한다. 식문화의 전통으로 보자면 쿄토를 대표하는 라멘으로 손색이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지역 이미지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라며 고토치(지역) 라멘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개발자가 쿄토 출신이 아니라는 점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여 진다.

◆쿄토시 소개

쿄토는 오사카와 함께 '부(府)'가 붙는 광역 자치단체로 행정의 중심을 쿄토시에 둔다. 쿄토부는 15개의 시를 포함한 32개 자치단위로 구성됐고, 인구 260만 중 150만이 쿄토시내에 거주한다. 18만의 우지(宇治)시를 제외하면 10만이 넘는 도시가 없다는 점이 쿄토시의 일극 집중화 현상을 부추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쿄토는 쿄토시 11개구를 가리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적으로 관계가 깊은 오사카시, 나라(奈良)시와는 각각 40㎞ 정도 떨어져 있다. 북쪽 쿄토시를 중심으로 서남쪽 오사카시, 남쪽 나라시가 트라이앵글 형태를 이룬다.

쿄토는 일본의 고대국가가 완성되는 헤이안(平安)시대, 당나라의 장안성을 모방해 784년 수도로 조성됐다. 당시 쿄토는 동서4.5㎞, 남북5.2㎞ 규모에 도심부를 장방형으로 구획지은 최첨단 도시였다. 이후 카마쿠라와 무로마치 무신정권, 전국시대와 에도막부를 거쳐 서양식 메이지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역사의 현장을 지켜온다.

쿄토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고 편리한 코드는 관광이다. 쿄토는 일본의 이력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는 각종 자료와 유물이 잘 보존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중 원폭투하 후보지에 오르는 등 위기를 맞기도 하지만, 쿄토의 역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긴 미국 수뇌부의 배려로 참화를 면한다.

그 바람에 애꿎은 히로시마가 피해를 입었다. 오늘 날 쿄토는 연 5000만명 이상이 찾는 세계적 관광명소가 됐다. 2016년의 경우, 외국 관광객의 숙박자만 318만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쿄토를 방문하는 여행객은 여느 도시와 달리 차분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시 대부분이 경관지구로 지정되어 높이가 제한되고 옥상광고물이나 점멸 조명이 금지되기 때문이다. 지붕의 경사도나 기왓장에도 일정한 규격을 설정해 놓았다. 맥도널드 햄버거처럼 콧대 높은 체인점도 화려한 고유색상 대신 중량감 있는 적갈색을 채용하고 있다.

쿄토를 주목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분야가 교육이다. 쿄토시에는 41개나 되는 국·공·사립대와 단기(전문)대학의 본부 또는 캠퍼스가 있다. 이들 대학은 매년 10월 공동으로 '쿄토학생제전'을 개최하고 있고, 공익법인 '대학콘소시움쿄토'는 재계와 산업계를 연결하는 가교역할을 한다. 

최근 일본이 배출한 노벨상 수상자 여섯 명이 교토대학 출신인 것도 이러한 산학협력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명소 소개

쿄토에는 일본을 대표하는 문화재가 도처에 널려 있다. 국보의 약 20%, 중요문화재 14%가 이곳에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것만도 17개에 이른다. 그동안 잘 조명되지 않았던 몇 곳을 소개한다.

△쿄토 국립박물관
헤이안~에도시대의 쿄토 문물 전시, 1897년 5월 개관, 상설전시관은 2013년 준공, 국보·중요문화재 각각 27점 보유, 구 본관과 정문도 국가지정문화재, 관내 정원·차실·분수·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진품)'도 볼거리, 인근에 33겐도(三十三間堂)가 위치, 명품갤러리 입장료 ¥520. 특별전은 별도요금. (교통편) 케한혼센(京阪本線) 시치죠(七条)역 도보 7분.

△다이고지(醍醐寺)
진언종 다이고지 총본산, 헤이안 초기 창건된 661만1570㎡(200만평) 규모의 대가람, 험한 산길로 연결된 상·하 다이고는 도보 한 시간 거리에 위치, 경내 금당·5중탑과 벽화·약사당·세류구(清瀧宮)배전이 국보, 5중탑은 874년 창건당시의 모습, 유네스코 세계유산. (교통편) JR쿄토역 하치죠구치(八条口)에서 케한버스로 다이고지(醍醐寺)행, 지하철 다이고역 도보 10분.

△우지가미(宇治上)신사
15~16대 천황과 황태자를 기리는 신사, 창건연대 확실하지 않으나 2004년 연대측정 결과 1060년경으로 추정, 현존하는 가장 오랜 신사건축물, 본전과 본전 앞 배전(拝殿) 국보지정, 인접한 우지신사와 대칭 이룸, 유네스코 세계유산. (교통편) JR나라선 우지역 도보 20분, 케한(京阪)선 우지역 도보 10분.

△기온(祇園)마츠리
9세기 헤이안 초기부터 매년 7월 약 1개월간 쿄토 시내에서 행해짐, 토쿄의 칸다(神田)·오사카의 텐진(天神)과 함께 일본 3대 마츠리의 하나, 야사카(八坂)신사와 야마호코쵸(山鉾町)가 주최하는 2개의 기온 마츠리 중 후자가 무형문화재로 지정, 오래된 집안이나 노포의 진귀한 병풍과 공예품이 등장하는 데서 일명 병풍 마츠리로도 불림.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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