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보통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 수단은 '수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청각장애인 인구 26만명 중 수화를 사용하는 사람은 6%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보청기를 이용해 사람의 입모양을 보고 말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수화통역에 대한 지원 체계가 잘 갖춰진 반면, 말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지원센터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AUD사회적협동조합은 청각장애인과 더불어 소통하고 나누는 선순환 고리를 구축하기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이들은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사회참여를 위해 문자통역 출장 서비스를 지원한다. 지난 9일 AUD사회적협동조합이 위치한 서울 은평구 서울혁신파크를 찾아 박원진 AUD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교사에서 협동조합 이사장까지 '용감한 도전'
"보청기와 입모양을 보고 소통하는 청각장애인들에게 수화는 무용지물이에요. 하지만 이러한 이들을 위한 지원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이에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이 서비스를 개별적으로 누릴 수 있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해 '쉐어타이핑' 서비스가 탄생하게 됐죠."
특수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박원진 이사장은 2012년 우연한 기회로 소셜벤처경영대회에 평소 생각했던 청각장애인을 위한 실시간 문자통역서비스 아이디어를 제출하게 됐다. '빵을 팔기 위해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하기 위해 빵을 파는 기업'이라는 소셜벤처 소개 글에 매료돼 도전하다 보니 지역예선을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해 전국대회 3등을 수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게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일이었는데 소셜벤처경영대회 참가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됐죠. 가족들의 우려도 많았지만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프로그램에 선정돼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받고 조합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2012년 작은 아이디어에서 탄생한 AUD사회적협동조합은 준비기간을 거쳐 지난해 2월 드디어 첫발을 내딛었다. 회사가 꾸려진 지 1년이 지난 올해부터는 적지만 매출도 발생하고 있다.
◆청각장애인 의사소통 해결사 '쉐어타이핑'
조합 명칭인 AUD는 'Auditory Universal Design'의 약자로 청각의 유니버설 디자인(보편적 설계)이란 가치를 담고 있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장애 유무나 연령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편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제품이나 건축, 서비스 등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즉 누구나 듣는 것으로 인한 불편함 없이 디자인된 사회를 추구하는 것이 AUD의 지향점인 셈이다.
이를 위해 AUD는 조합원 구성을 △후원자조합원 △직원조합원 △생산자조합원 △자원봉사자조합원 △소비자조합원 등으로 나눠 운영 중이다. 소비자 조합원은 청각장애인들이 가입대상이며 포럼이나 세미나 등 서비스가 제공되는 장소에서 플랫폼을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이용 가능하다. 생산자조합원은 문자통역사와 개발자들로 구성된다.
"현재 총 3개 기업과 업무협약을 맺었고, 50명가량의 조합원들이 함께 하고 있어요. 문자통역사는 6~7명이 일하고 있고 한 달에 7~8번의 포럼, 세미나 등의 의뢰를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직 시행 초기인 만큼 내년에는 업무량이 두 배가량 증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AUD의 주력 서비스는 '쉐어타이핑'이다. 쉐어타이핑은 실시간 자막을 제공하는 플랫폼으로 대형 강의나 포럼, 학교 및 교회 등에서 강연자의 이야기를 문자통역사나 자원봉사자가 타이핑하면 고객이 이를 자신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통해 문자로 받아볼 수 있다.
조합원은 쉐어타이핑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무료로 이용 가능하며 AUD는 쉐어타이핑 서비스가 필요한 단체 및 모임에 문자통역사나 자원봉사자를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자통역사(속기사) 분들의 반응도 좋아요. 보통 검찰청, 법원에서 기록을 담당하는 분들이다 보니 좋지 않은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되는데 컨퍼런스, 포럼에서 가벼운 주제를 듣다 보니 일하는 재미가 있다고들 합니다. 일당을 받지 않고 다시 AUD에 기부하는 분들도 있고요. 청각장애인들의 삶의 질도 높이고 또 문자통역사들도 행사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니 일석이조라고 생각합니다."
◆지방에서도 자유로운 서비스 이용 목표
AUD는 쉐어타이핑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청각장애인을 후원하고 있다. 올해 10월부터는 '청각장애인 ARS 인증 문제 대책 모임'에 참여, 후원하기 시작했고 지난달 20일에는 이와 관련해 서울역에서 '소통이 흐르는 밤' 행사를 열기도 했다.
스마트폰 이외의 방법으로 문자통역 서비스를 받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스템 개발도 진행 중이다.
"현재 스마트폰으로 이용 가능한 쉐어타이핑은 말하는 이의 표정을 보기 힘들어 스마트 안경을 통해 강사의 얼굴과 글을 함께 볼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입니다. 또한 문자통역사가 현장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 등 전자기기를 통해 음성을 전달받고 이를 바로 쉐어타이핑을 통해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원격문자통역지원 시스템도 개발하고 있어요. 청각장애인들의 니즈가 가장 큰 부분이라 상용화가 되면 지방에 있는 교회부터 포럼, 세미나 등에서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을 거라 예상 됩니다."
박 이사장은 교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든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지만 오히려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강조했다.
"어려움도 많지만 저는 AUD를 통해 더 큰 꿈을 꾸게 됐다고 생각해요. 교사일 때도 현재도 저는 꾸준히 청각장애인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도 보람됐지만 지금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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