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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경제사상 물질 추구 "진공"도 "물질"인가"?

[인터뷰] 러플린 과기원(KAIST) 총장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05.09.30 20:50:41

한국말에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이 있습니다.이는 사물을 연구하여 그 궁극(窮極) 이른다는 의미입니다.

물리학이 사물 이치의 궁극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경제학은 사물현상의 궁극에 접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최근 창간한 프라임경제 신문의 장창환 상임 편집위원 입니다.

저의 신문은 이런 사물 현상의 첨단 물리학의 합리성을 빌어 그 경제 현상의 궁극에접근하려는 시도도 하려 합니다.

카이스트 출신 윤송이 SKT 상무 차세대 뉴 CEO 패러다임 제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 카이스트)는 5년 전 한국 과학 드라마의  무대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엄청난 인기를 몰아왔던 드라마 카이스트의 주인공 여학생이 지금은 한국 대기업 즉SKT의 20대 상무 즉 20대 임원으로 등장하면서 한국 뉴 CEO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이 주인공 여학생이 준(Semi) CEO 그룹의 선두주자로 부각되면서 한국 CEO인맥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한국 경제의 새로운 틀을 짜는 ‘뉴 피플’ ‘뉴 제너레이션’으로 카이스트가 배출한 과학 및 경제 인재인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경제나 경제사상을 비롯한 문화적 사상과 패러다임이 가파라지고 있습니다.

동양문화 동양사상 중에서 과학 특히 첨단물리학은 조선시대 이퇴계, 이이 등의 성리학을 비롯 불교 등 한국사상 및 동양사상에 잇대어 이해되려 해왔습니다.

예컨대 아이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라든지 최근의 첨단 물리학 이론인 쿼크 이론 등이 거의 퇴계나 이이 등의 한국사상인 이기론(理氣論)이나 불가적(佛家的)  말들에 잇대는 접근이 있어 왔습니다.

따라서 한국 조선시대 성리학이나 동양의 불교는 어떻게 보면 서양의 첨단물리학과 가장 가깝고, 아니 가장 과학적인 동양 사상 즉 한국 사상이나 동양 종교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총장님은 이번 신간은 새롭습니다.

첨단 물리학을 경제사상이나 동양사상 그 중에서도 한국의 성리학 등 조선 성리학과 불교 등에 잇대 동양사상과 첨단 물리학의 관계들 더듬어 보려 합니다.

총장님은 이미 지난 1999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총장님의 이번 새 책 '새로운 우주 다시 쓰는 갭(鬼)' 출간을 우선  축하드리는 바입니다! 우선 총장님께 신간과 함께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 한국에서 매우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시절인 몇 십년 전에도 이미 천재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요?' 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과학 도서 중 특별하게도 전국적인 센세이서널을 이끌어 내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은 경제적으로는 세계 최빈국 수준이었 습니다.

총장님의 신간도 '리차드 파인만'의 이 저서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 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선 재기(才氣)가 넘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번뜩이는 재기 외에 멋진 글쓰기도 일품이십니다.

특히 총장님은 물리학자이지만 지금은 한 대학을 책임지는 KAIST의 CEO로 그 동안 카이스트의 개혁에 대한 획기적인 프로잭트를 제기해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신 바 있습니다.

올해 첫 신입생을 모집한 카이스트 과학기술문화대학원도 이공대 대학에 문화.예술을 접목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러플린 : 글을 더 잘쓴다니 영광이군요. 우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40대까지는 연구DP만 몰두했습니다. 40이 넘어 글쓰기를 약간씩 했지요.

천재 물리학자 파이만의 재기에 놀라

: 그런데 총장님은 혹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읽어 보셨습니까?

러플린 : 예 물론이죠. 파인만의 '파인만씨 농담도 잘하시네'를 읽어 보았습니다. 물리학 책이지만 매우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미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파인만이 제가 생각했던 파인만보다는 못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는 파인만의 주요 논문이나 책들과는 멀리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나는 두려웠습니다. 그의 '뛰어난 재기(才氣)와 물리학'에 압도돼 버렸던 것입니다. 저는 내 책에서 파인만에 대한 유명한 일화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던 것이죠.

: 세번째 질문은 좀 길게 말씀 드리겠 습니다. 왜냐하면 동양사상과 첨단물리학에 대한 이해가 충분치 않은 독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이번 신간을 읽어 보면 총장님은 30년 전 물리학을 동양사상과 맞대어 풀려했던 '프리초프 카프라',  '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연상케 합니다. 카프라는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을 쓴 물리학자이십니다. 이러면서 첨단과학 그 중에서 첨단 물리학과 동양사상은 접근이 이뤄져 왔습니다.

다음과 같이 카프라의 이론을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장님께서 잘 아시다시피 카프라의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은 1975년 처음 출간되면서부터 이른바 "신과학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어 논란의 중심에 놓여 왔기도 했습니다. 그의 동양과 서양에 대한 지나친 이분법적인 접근이란 평도 있었습니다.

또는 신비주의적 주관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란 말도 있었습니다. 객관주의 또는 중립성의 가치를 무게(重)로 하는 현대 과학의 오만함과 한계를 넘었다는 평도 있었습니다. 그 만큼 카프라의 이 책은 과학과 동양학에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리학 등 자연과학 이론에 깊은 지식이 없는 일반인들이 읽기에는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문적 내용을 다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무방한 책일 정도로 이 책은 인기가 있었고 관심도 많았습니다. 카프라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과 '양자 물리학'을 토대로 현대 물리학에서 나타난 세계관을 도출하려 했습니다.

즉 카프라는 이 같은 물리학의 변화가 동양의 고대사상 속에 담겨 있는 세계관과 얼마나 '맞물리는가'를 비교했던 것입니다.  카프라는 근대 이후의 과학의 기계론적 자연관을 유기체적 자연관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뉴턴 이래 물리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과학의 각 분야들은 인간들에게 무한한 자신감을 갖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물리학은 인간이 자연의 모든 현상을 과학적이거나 합리적인 논리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이어 물리학은 언젠가는 인간은 "전지자(全知者)"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고 믿을 수 있다는 개연성(蓋然性)도 내비쳤던 것입니다.

즉, 20세기에 들어와서 물리학은 '극대' 와 '극소'의 개념을 다루게 됩니다. 이 '극대세계'와 '극소세계' 에서 '절대공간', '절대시간', '인과율', '질량적 물질' 등 고전물리학적 개념은 파기되면서 새로운 개념이 도입되기도 합니다.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이라는 새로운 개념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해 제기되면서 불교사상의 '공(空) 사상' 등 즉 동양사상과 맞물려 이해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고전 물리학의 철칙이었던 인과율은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 원리를 도입, 양자 역학을 수립하면서 원자의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개념으로 전락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에서 생각했던 단순한 질량적 물질은 양자 물리학에서 합리적 이해를 초월하는 자기 모순에 가득 찬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운 것으로 돼 버리기도 했던 것입니다.

이에 카프라는 "물질의 궁극체가 논리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신비로운 것"이라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는 물질적 존재란 전일적인 것의 '한 과정'으로서만 성립될 수 있다는 이 같은 현대 물리학의 자연관이 동양사상의 '전통적 자연관'과 거의 일치하고 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카프라는 따라서 '정신과 물질',  '육체와 영혼'이라는 기계주의적 이원론을 극복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이에 동양의 유기체적 생태학적 사상이 지닌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물리학을 동양사상과 잇대 이해하려 했던 것입니다. 카프라는 객관적인 지식과 주관적인 성찰이 조화된 새로운 전체적이고 종합적인 인식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동양학 즉 동양사상을 이해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보는 것이 카프라의 물리학으로 본 동양사상입니다. 즉 물리학이란 첨단 과학 망원렌즈를 동양사상에 모으는 행위인 것입니다 . 그런데 총장님은 이번 책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는데요? 질문이 긴 것에 우선 이해를 구합니다.

러플린 : 그렇습니다. 저의 책에는 동양철학의 뉘앙스가 함축돼 있습니다. 이런 과학과 인문학의 경향이 세계적입니다. 이런 물리학의 일반에 대한 유혹은 "반종교적"일 정도인 것입니다.

이는 어떤 주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사상이나 감정들을 불러온다는 것이 필요로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내놓은 나의 책과 카프라의 책과는 상당한 차이점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나의 책은 '거의 실험'에 따랐다는 것입니다. 카프라와 저는 '종교적 뉘앙스'를 가지고 있지요. 하지만 제가 측정해 밝힌 증거는 '종교적 깨달음'은 아니지요.

물리학과 인문학 특히 동양사상과의 접근은 첨단과학의 인문학과의 접목 및 시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첨단과학과 예술 문화가 만나는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을 열기도 했습니다.

: 이 새 책에서 박사님은 기본적 물리학 법칙에 대한 관념들을 바꿔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리고 이 책에서 밝힌 상(相)이란 무엇인가요? 동양사상 불교에서도 상(相)이란 말이 있습니다.

러플린 : 제가 과학적 경험에서 지내다 보면 서서히 과학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믿음의 체계'이라고 느껴져요. 단 한가지의 단순한 사례는 시공(時空)에 대한 수학 이론이 우주(宇宙)를 설명한다는 사상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양자(量子)에 대한 수학 이론이 '생명이나 삶'을 풀어 낼 수 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 것이예요.

이 같은 주장은 '약간은' 진리이지요. 그러나 '필수적 개념'이 빠진 것이지요. 신문에 우주와 양자 물리학에 대한 관계가 나오고 있지요. 그러나 사실은 그건 뉴턴이나 갈레이오적 과학이 아니고 단지 '신화 창조'일 뿐 이예요.

: 우리는 기본적인 물리 법칙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고 하셨는데 이것이 함유하는 의미는?

러플린 : 물리학이란 자연법 즉 자연의 법칙을 다루는 것입니다. 이는 항구적(恒久的) 진리에 대한 계량(計量) 관계를 의미한 것이지요. 즉 진리를 '수치화numberinization)'한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법칙에 대한 상이한 '2개의 사고의 틀'이 있습니다.

첫번째가 당위(當爲) 입니다. 두 번째는 '자기 편제(編制)' 입니다. 즉 스스로의 유기적 조직인 것 입니다. 첫 번째 예는 '뉴턴적 우주관'의 법칙일 것입니다. 양자 역학 법칙에 대한 중력 일 것입니다.

두번째의 예는 고체의 강도(强度)일 것입니다. 즉 '초유동체(超流動體)'와 '양자 홀 효과'일 것 입니다. 즉 법칙에 대한 사고를 변형함으로써 제가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저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2개의 법칙이 아닌 단지 한가지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이는 "유기적인 종류(organizational kind)"라고 저는 주장합니다.

실험은 매우 부정확하게 전합니다. 이렇게 근본적 법칙이 우월하다는 논거는 사실 믿음이 위장되면서 만들어낸 주장인 것입니다. 저는 이 같은 믿음은 "낡은 학설"이라고 봅니다.

현대 물리학이란 직분인 진실된 자연 법칙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는 자연에서 당위가 아닌 " (본질)스스로의 유기적 편제(조직)"를 살펴야 할 것입니다.

"진공"도 "물질" 색즉시공과 공즉시색?"그렇게" "측정할 뿐"

: 박사님은 "진공"도 "물질"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들의 동양사상과 매우 유사하다고 느낍니다. 즉 불교 경전인 반야심경(般若心經)에서 나오는 색즉시공(色卽是空)과 공즉시색(空卽是色) 이란 의미와도 상당한 접근이 보입니다. 제가 이렇게 이해해도 되는 것인가요?

러플린 : 아닙니다! 이는 제가 생각하기로는 매우 좋아하는 불교의 감미롭고 뛰어난 추상적 혹은 은유적 말씀인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진공은 물질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진공을 "그렇게" "측정" 합니다. 이 같은 측정은 간단히 대형 가속기에서 입자 충돌 하는 것입니다. 이 실험에서 보다 많은 입자들은 들어가기보다는 튀어나오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 같은 여분의 입자들은 원래 입자의 "한 조각"이 아닌 ‘무(無)’에서 생성된 대상(물체)"들입니다. 그 새로운 입자들은 우주(宇宙)에 충만한 물질 밖으로 충돌하여 나온 부문들입니다. 이 같은 과정을 실험에 의한 완전히 계량적인 과정으로 보고 이를 수학적으로 설명하면 일반적 전자를 일반적 바위 밖으로 충돌하는 것이라고 동일합니다.

: 총장님은 노장 사상이나 불교 사상을 알고 계시는지요.

러플린 : 예 알고 있습니다.

: 총장님은 물질은 "3개의 상(相)"이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러플린: 그렇습니다. 저는 "그 중 하나"를 발견, 노벨상을 타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물리 문헌에서는 더 많은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즉 유체 크리스털이든가 초고체 혹은 결함 직물 등 이런 목록들이 아주 깁니다. 저의 물리학은 그것들을 "열거"하는 것입니다.

금속은 액체와 같고 초유체 헬륨도 고체? 제행무상(諸行無常)?

: 총장님은 금속은 액체와 같고 초유체 헬륨도 고체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불교 사상과 맞물리는 것으로 보입니다. 즉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운행하면서 변하고 모습을 바꾼다. 그러므로 모든 물질은 고정된 상(相)이 없다는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과도 맞물려 보입니다만?

러플린 : 맟습니다! 똑 같은 사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저는 제가 그것들이 그래야만 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들이 그것들을 측정하는 사물들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 총장님은 첨단 물리학 이론이 우리가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현상을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언뜻 상식과는 달라 보이는 이런 세계이며 물리학의 가장 심오한 신비가 <우주의 끝이 아니라><우리의 손에 닿는 곳>에 존재한다고 쉽게 설명하시는데?

려를린 : 예 그렇습니다. 그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 입니다.

: 끝으로 과학과 종교 혹은 사상과 철학과의 상관관계는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진행 되어"새로운 우주"가 자리를 잡아야 하는지?

러플린 : 저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로부터 같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나 가장 좋은 답변은 아마도 제가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사상이나 철학 등과의 사이에서 기능적 규칙을 전제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과학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우리들은 첫째로 제 생각으로는 종교적 삶을 추구하는 사람을 이끄는 것들과 동일한 개인적인 사유에 깊게 유인돼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상-철학적 “피난민”과학자는 "실재 실험자"

과학자들이 문제를 푸는 방법은 그가 측정할 수 있는 사물에 대한 토론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는 "철학적 피난민"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실재의 실험" 이라는 자그마한 보트를 따라 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우주라는 거대한 대양(大洋)은 사고하기에는 너무 크고 두렵기 때문 입니다. 따라서 저는 과학과 종교 사이에는 어떤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들은 인간 경험에 대한 "그저 다른 양상"일 뿐입니다.

자본주의 경제사상 물질 창출에만 너무 치중

: 오랜 시간 답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첨단과학과 동양사상을 연상시키는 총장님의 신간에 다시 한번 축하를 드립니다. 동양정신 즉 동양사상 특히 불교가 현재 서구인들의 정신적 영혼적 메마름과 목마름을 축여주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경제사상이 물질 창출에만 너무 치중한 가운데 인간의 영혼과 몸이 상해 이를 적셔주는 곳이 동양사상이나 불교사상 등입니다. 그래서 최근 서구 사회가 동양사상이나 유교 경제권인 중국 경제나 한국경제 등을 주목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런 가운데 동양사상과 첨단과학을 통한 한국 사상 등 동양정신과 불교 등 동양 종교 등의 진리에의 접근 등은 합리성에만 길들여온 서구인들에 접근하기는 오히려 용이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한국의 신세대나 20세기 이후 서양사상이나 서양사상에만 치달려온 한국인 혹은 동양인에도 동양사상이나 동양 종교인 불교를 첨단 과학이라는 창으로 들여보는 하나의 방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면서 첨단 과학과 동양 사상 특히 종교 그중에서도 불교와의 만남은 비록 과학이 추구하는 진리와 종교가 추구하는 진리는 다를지라도 인류의 행복을 위하는 것에는 같을 것입니다! 저희 프라임 경제와 사상계는 이런 세기적 경제사상이나 문화 패러다임변화에 조명을 하려 합니다. 다시 한번 오랜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창환 /프라임경제 상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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