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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의 신뢰자본下] 文정부 2년차 재계 최대 현안 '삼성 딜레마'

각 개별사마다 오버행 등 현안 문제 산적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2.29 17:00:43

[프라임경제]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의 항소심 절차도 이제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삼성그룹은 정유라 선수 승마활동 지원을 명목으로 희대의 국정농단 무대에서 열연했다. 단순히 돈을 뜯긴 피해자가 아니라 그룹 승계작업에 도움을 얻고자 기회를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이미 1심에서 3세 승계의 정점인 황태자가 징역 5년을 선고받는 등 신뢰 저하 우려가 크다. 삼성의 신뢰자본 조각들이 깨진 사례 중 작지만 의미 있는 부분을 간단히 살펴보고, 앞으로 이를 다시 붙일 방안은 없는지 실마리도 찾아본다

이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마무리 국면에서 "더 이상의 회장은 없을 것"이라고 발언했다. 특검의 구형에 대응, 구체적 혹은 포괄적 뇌물 혐의에 대해 대체로 강력 부인하던 이 부회장은 조부와 부친의 후광으로 노력없이 기업 경영권을 승계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겸허한 모습을 보였다. 다만 자신의 열정과 노력의 진정성만은 알라달라는 뜻을 강조했다. 회장직 관련 발언도 이 맥락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 부회장이 이번 농단 사건 이후에도 '그림자 회장'으로서의 역할에서 자의든 타의든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지점이다.

그림자 회장(그림자 이사)은 등기임원이 아니면서 사실상 의사구조를 흔드는 영향력을 갖춘 자에게 법적 책임을 인정하기 위해 사용되는 상사법상 용어다. 상사법 연구자들 중 상당수가 90년대 말 해외에서 전개되던 이 논의를 받아들였다. 일명 재벌의 병폐 때문이었다.

회장직 등극을 포기하더라도 이런 '막후'의 인물로 일정 기간 이상 상당한 비중으로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 부회장을 백안시하는 이들에게도 나름 이유가 있다. 그룹의 구조 개편 구상은 3세 승계 작업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삼성 측 변호인들의 주장과 달리, '현직 대통령(일명 독대 당시 재임 중이던 박근혜 당시 대통령)'까지도 협상 대상이나 도구화의 객체로 본다는 의혹이 여전하다. 

항소심에서 뒤집힌 판결이 나올 수 있겠으나, 우선 1심 재판부는 총수 일가의 추가 자본 투자 없이 금융 계열사의 지배력을 강화하려 했고 이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공고히 하려 했다는 특검의 주장을 수용했다. 

1심 재판부는 △삼성SDS 및 제일모직의 유가증권 시장 상장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 △합병에 따른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등의 현안은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 또는 삼성생명에 대한 지배력 확보에 직접적 간접적으로 유리한 영향을 미치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했다.

삼성 정조준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재판부는 설명자료에서 "이 부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사망 후 자신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생명 지주회사 등 금융부문을 안정적으로 지배하면서도 이 회장 보유의 삼성생명 지주회사의 지분 전부 또는 일부를 처분해 상속세 납부 재원을 마련하는 데 사용하는 등 이 회장 보유 지분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포승에 묶여 있다. ⓒ 뉴스1

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보유를 통한 지배력 행사 구조는 어차피 장기적으로는 지속 가능하기 어려웠다는 전망도 덧붙였다.

삼성생명은 구 체제에서 그 역할을 다했으며, 이제 신 삼성물산(통합 삼성물산) 중심 구조에서 삼성의 미래가 전개될 것이라는 예측인 셈이다. 

문제는 바로 이 시스템을 풀어헤치는 데 적잖은 경제적 파장이 불가피하다는 데 있다. 우선 시선이 가는 부분은 삼성SDI 쪽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삼성 이슈에 천착해 온 학자이자 시민운동가로, 삼성 전반에 대단히 비판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그는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간 연결고리와 관계' 등 치명타를 가할 방법을 모색하는 데 공을 들일 것으로 보인다.

향후 문재인정부 5년 전체를 그가 공직에 있을지 단정하기는 어려우나, 그에게 2년여만 허락돼도 대단히 큰 출혈을 강요해 삼성의 개혁 빗장을 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거는 시각도 있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변경으로 삼성SDI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2.1%. 404만여주) 매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과거 삼성물산 지분이 풀리게 된 상황에서는 이 부회장 본인과 우군 삼성생명공익재단 등이 힘을 발휘했다. 500만주의 주식이 시장에 풀려 주가가 급락하는 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었다는 평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곧 닥칠 사태에서 이 같은 행동 패턴을 반복할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온다. 현재 오너 일가가 30% 이상의 지분율을 갖고 있는 상황, 즉 1심 재판부가 이미 승계 구도는 완성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하는 터에, 이 부회장이 영어의 몸인 상황에서 지금 연결고리상 큰 문제가 없는 삼성그룹 계열사들이 이를 나눠 맡도록 콘트롤하거나, 혹은 자신이 맡고 나설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막후 인물로 그를 지목하는 건 무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한 단계가 더 있다. 이 부회장에게 승계 다른 말로 상속세 문제를 모두 처리 가능할 정도로 자금 여력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고배당 방침을 밝힌 게 주주이익 환원이라는 대의에서만이 아니라, 이 부회장의 상속세 부담 자금을 벌어주기 위한 '꿩 먹고 알 먹는' 방법 구사라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시장에 이번에 404만여주가 풀리는 대혼란을 방치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백기사로 나섰던 KCC 사례처럼 삼성과 우호적 관계를 갖고 있는 다른 대기업이 우호 투자자로 나설지 미지수인 터에,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변명할 수 있는 것.

하지만 일반 투자자의 피해가 심각할 것이라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이때 빛을 발할 마지막 코드가 바로 그룹 최고 수뇌부의 의중을 반영한 '소송 가능성'이다. 삼성SDI가 향후 법적(예규) 근거가 마련되고 공정위의 통보를 받는 직후, 소송으로 대응할 가능성이다. 

액면상으로는 충분한 법률적 검토와 내부 논의를 거쳐 입장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사실상 그룹 차원의 의사 입김이 작용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문재인정부 개혁코드, 명확히 분석해야

삼성이 이처럼 강경한 소송 불사 모드로 돌입할 경우, 그 배경이 이 부회장의 영향력이 아니겠냐는 풀이는 다른 계열사들이 그간 대개의 경우 오너 일가 돈 벌어주기나 비용 절감 등을 최우선시했다는 선입견(혹은 합리적 의심)에 뿌리를 둔다.

삼성생명 등 금융보험사의 삼성전자 보유 지분 이슈가 여전히 일정 크기의 몸집을 갖고 있다. 당장 내년까지 삼성전자 자사주를 모두 소각하는 계획에 따라 일부 지분을 매각해야 하는 리스크가 존재한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시스템이 도입되는 것도 문제다. 무엇보다 보험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지분을 공정가액(시가)으로 평가하는 내용이 담긴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경우, 일명 유배당보험 논란이 재개될 여지가 크다. 보험소비자연맹은 지난 2010년 삼성생명 유배당보험 계약자 2802명을 모아서 상장차익 이익배당금 청구소송을 냈다 패소했다. 당시 소송에서 삼성측 손을 법원이 들어준 이유는 "삼성생명 상장 이후에도 장기투자자산을 처분해 이익이 생기면 배당받을 수 있기 때문에 보험계약상 권리는 상장차익과 무관하다"는 논리 구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삼성생명은 (지금은 폐기된 논의로 보이나) 금융지주 전환 등에서 유배당보험 가입자에 대한 이익 분배를 개폭 깎는 구상을 갖고 있었다. 이런 무리한 구상 때문에 과거 금융위원회에서는 지주 전환안을 반려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를 보자. 지난 2월 경제개혁연대가 발표한 '경제개혁이슈'에 따르면 2016년 9월 기준으로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식 1062만여주를 매각할 경우(당시 시가 기준) 매각차익은 취득가액 5690억원을 공제한 20조6766억원이었다. 법령 등을 고려하면, 이 중에서 유배당보험 계약자 몫은 32.56%(6조7323억원)이라 한다. 여기에 유배당보험 역마진으로 인한 연간 손실액이나 유배당보험 운용수익 등은 공제할 필요가 있다. 물론 깎이는 규모도 크지만, 그 후 기타이익을 더하면 그래도 대략 3조9000억원대의 큰 돈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삼성전자 주식을 5년간 균등 매각할시 2조5388억원, 7년간 균등 매각하면 1조8567억원으로 배당금이 급격하게 줄어든다고 자료는 분석했다. 이 같이 7년간 균등매각할 경우 지급되는 유배당보험 배당금은 일괄 매각 시 배당금의 46%에 불과하다.

이런 분할 매각과 절약 아이디어가 삼성이 직면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항변, 즉 정부가 입장을 바꿔 혹은 국회가 새 입법으로 각종 압박안을 내놓는 경우 '사정을 봐달라'는 명분으로 재부상할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면 애초 삼성생명 이익을 유배당보험 가입자에게 분배하지 않아도 다른 기회에 (정당하게) 이것이 분배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대폭 흔들리게 된다. 

그간 여러 경로로 최소의 자본으로 최대 효과를 보려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이 부회장과 삼성이 사회 구성원들로부터 받고 있는 신뢰자본이 충분치 않아 보이며 그 최전선에 김상조 공정위 위원장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 등이 대립각을 형성하고 있는 구도다. 

이 부회장이 회장 직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의견 외에도, 더 다양하고 실질적인 행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집권 2년차에 해당하는 2018년에도 현정부의 지지율은 당분간 고공행진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재계 최대 현안이자 숙제이기도 한 이재용 부회장의 문제는 결코 쉽지 않다. 일각에서는 이미 적폐청산에 대한 피로감 마저 나오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정치권도 가벼이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따라서 경제와 정치권 안정화 등 다양한 과제가 버무려 있는 삼성의 문제는 문재인정부 또한 딜레마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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