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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부는 벤처 바람 '2000년대 초반 버블 재연' 우려 떨칠 방안은?

규제완화 요구 높아…도덕성 해이와는 별개 '눈먼 돈 관리 숙제'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1.29 11:37:58

[프라임경제] 다시 '벤처'가 주목받고 있다. 일자리 성장과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과 공정경제 등을 통해 경제 발전의 기본 틀을 혁신하겠다는 정부 구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축으로 기대를 모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와 정부는 그간 개념의 모호성 지적을 받았던 혁신경제 부각과 성과내기 작업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정부는 혁신성장이 곧 벤처라는 단순한 등식이나 연상 작용은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빠른 성과가 필요하고 경제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상황에서 기존의 대기업이 주도한 몫을 책임질 벤처 중요성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고 있다.

28일 열린 혁신성장 전략회의는 벤처에 대한 기대감을 여실히 드러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날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유니콘기업(기업가치가 10억달러를 넘긴 스타트업) 수가 미국 108개, 중국 58개인 데 비해 2개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혁신창업 생태계 조성과 신산업 육성을 강조한 것이지만, 사실상 벤처 창업과 성공이 쉽지 않은 우리 상황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같은 규제망이라도 대기업이나 전통산업보다 벤처 신성장 사업이 더 지장을 느낄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시사한 것으로도 평가된다.

김상곤 교육부총리 역시 이날 '인재성장' 지원 방안을 언급하면서 벤처를 거론했다. 그는 특히 핀란드 이동통신기업 노키아에서 정리해고된 직원들이 만든 벤처회사로 '클래시 오브 클랜'이 유명한 슈퍼셀을 언급했다.

돈·성장 가능성 청신호…문제는 패자부활전과 규제완화   

한국벤처투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신규 벤처 투자가 활성화 바람을 타고 있다. 당국이 내년부터 3년간 민관 합동으로 10조원 규모의 투자펀드를 조성한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도 있지만, 이미 2009년 국내 신규 벤처 투자가 8600억원선이던 것에서 약 10년만인 금년에는 2조30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추정된다.

벤처 업계에서도 이처럼 훈풍이 도는 사정에 주목하고 있다. 혁신벤처단체협의회(혁단협)가 28일 혁신벤처선언 2017을 개최한 자리에서 '혁신벤처 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젓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당국에 일자리 창출 등을 약속하는 대신, 그간 피부로 느껴온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압축해 제시한 '딜 제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혁단협은 혁신벤처 생태계 고도화가 이뤄지면, 5년 후까지 좋은 일자리 222만개 신규 창출 및 해외진출 비중 50% 확대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경제 활성화의 가시적 성과에 목마른 정부로서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다만 혁단협은 △ 벤처기업 규제샌드 박스 가동 △ 창업안전망 확보 △ 공정거래 확립 등을 요청하고 있다.

벤처기업 규제샌드 박스는 창업 후 일정기간을 원칙적으로 신설·강화규제 적용을 한시적으로 면제해 주는 제도를 통칭하며, 창업안전망 확보는 '성실하지만 실패한 기업인'에게 재도전 기회를 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일련의 패자부활전 시스템을 가리킨다.

혁신성장의 시대가 오면서 다시 벤처가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2000년대 원조 벤처 열풍 중심지였던 서울 테헤란로. ⓒ 뉴스1

김 경제부총리도 혁신성장 전략회의 전인 지난 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얘기한 바 있다.

그는 "민간 중심의 혁신창업을 통한 제2의 벤처붐을 조성하겠다"고 제언한 후 "창업 유형을 다양화해서 누구나 혁신창업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실패 경험마저 우리 사회의 자산으로 축적되고 투자가 선순환되는 생태계를 구축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문제는 실패 위험을 극복하고 최종적으로 살아남은 다음의 일이다. 벤처를 창업하고 경영하는 것이 성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염려가 높기 때문이다. 경영권 방어나 매각을 통한 부의 창출에 제도적인 도움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이 부분에 대한 해결은 2000년대 초반 '벤처 거품' 원죄 때문에 아직 족쇄를 끊지 못하고 있다.

정부도 실패 경험 선순환에 주목, 문제는 자정능력 상실 우려?

우선 벤처업계에서는 외부의 경영권 공격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걱정 없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차등의결권제 도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다. 차등의결권은 일부 주식에 특별히 많은 수의 권리(의결권)를 부여하므로, 경영권 방어가 쉬워진다. 당연히 장기적인 성장 로드맵을 짜기에도 수월하다. 

2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원)의 보고서는 주로 대기업이 벤처를 인수한다는 측면에서 기술된 것이지만, 벤처를 성공시켜 매각하는 것이 지나치게 어려운 현재의 제도적 문제를 주목, 대안을 여럿 제시하는 데 성공했다.

한경연은 보고서에서 △ 기술혁신형 합병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 스톡옵션에 대한 비과세 혜택 증진 △ M&A때 부담해야 하는 양도소득세를 완화 등을 통해 벤처기업 경영권 양수·도를 쉽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차등의결권 제도 추진이나 경영권 매각시 편의 제공 등은 벤처 거품 등의 도덕적 해이 경험이나 결국 키워도 대기업으로 매각되는 것은 문제라는 도그마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은 재벌 중심 경제의 병폐나 자금 쏠림 현상에 따르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제어 등에서 논의할 필요는 있다. 벤처 1세대들의 잇따른 분식회계와 주가조작, 주주와의 불법거래 사건이 2006년경에 이르러 동시다발적으로 터질 때까지 사회·경제적 제어 시스템이 가동되지 않은 것은 소중한 반면교사 소재다. 

다만 과거 벤처 거품은 거대한 자금의 '묻지 마 투자'에 비해 부정한 경영수단을 감시할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못한 데서 온 것이지 벤처업계에 돈이 도는 자체가 빚은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일례로, 차등의결권 제도가 부실한 경영 성과에도 경영권을 쉽게 장악하고 내려놓지 않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는 문제 기업이 시장에서 도태되고 다양한 지원에서도 배제되도록 유도하면 족하다는 반론이 있다.

성공적으로 키운 회사를 팔고 부자가 되는 것에 제동을 거는 제도 역시 미국식 벤처의 꿈, 실리콘벨리 벤치마킹 자체를 막는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성공한 벤처를 사들일 여력의 상당부분은 결국 대기업 외에 찾기 어렵다. 정당한 비용과 세금 부담, 경영 감시가 무엇인지 가이드라인을 새롭게 제시하고 불러모아야 모처럼 돌아온 좋은 기회가 다시 거품으로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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