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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보따리 풀까, 말까? 한·중·일 서로 다른 트럼프 대책 이해득실

막대한 구매 약속 이면엔 견제론 부각…美 압력 대응해 반대급부 얻어내기 실속이 문제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1.09 15:46:41

[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거쳐, 한국 그리고 중국을 방문하고 있다. 무역 적자 등 민감한 주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자국 이익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거친 태도에 일단 전폭적인 구매와 투자 몰아주기 입장을 각국이 내놓고 있다.

하지만 막상 이면에서는 다른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경우도 있고, 반대급부를 어떻게 챙길지에 대한 손익계산이 분주하게 계속되고 있다. 3국이 모두 각자 내놓은 선물보따리의 크기 만큼이나 처한 상황에 차이를 크게 보이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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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중국을 전면적 경쟁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은 이번 순방 상황에서 큰 투자 선물을 내놓고 있다는 평이다. 미국 역시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반대급부를 적당히 주는 등 오월동주 같은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윌버 로스 상무부 장관은 8일 베이징에서 중국 기업인들과 만난 자리에서 '2500억달러'의 구매 및 투자 목표를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중국 정상 내외가 자금성 앞에서 환담하고 있다. ⓒ AFP-뉴스1

그는 이 회동에 앞서 왕양 중국 부총리와 만난 자리에서 이미 20여개 기업이 참여하는 90억달러 거래가 성사됐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들 중 최대 사업은 중국 국영석유공사 시노펙이 미국에서 2개 프로젝트에 수십억달러를 투자하는 것이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유사한 대형 호재로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와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 사이의 최대 50억달러 규모의 공동투자 펀드 조성 안이 있다.

2500억달러 이야기가 허상이 아니고, 미국과 중국 모두가 이 달성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좋은 분위기인 것으로 보인다. 그럼 이 규모는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중국이 쌓은 1~10월 대미 무역흑자는 2229억8000만달러 규모다. 간단히 말하면 2500억달러 투자 등 성사는 1년치 무역흑자 농사를 그대로 다시 넘겨준다는 것이 된다.

더욱이 중국 상무원은 지난 8월18일 자국 기업들에 자세한 해외투자지침을 하달, 사실상 '일대일로(一帶一路, 중국이 주도하는 신실크로드) 관련 투자에만 집중토록 유도한 바 있다. 그럼에도 이 같이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하고 나선 데에는 반대급부를 적당히 얻어낼 수 있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 미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은 결국 경제 이슈에 치중한 대결로 보인다. 각국이 돈줄을 어떻게 풀어 미국의 환심을 사고 대신 이익을 얻을지 협상력 전쟁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 뉴스1

중국은 이번 공동투자 펀드 조성을 계기로 장기적인 투자 수익과 선진 기술 획득 가능성 등 일거양득을 노릴 수 있다는 추정이 나돈다. 중국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 

'아베노믹스' 일본, 줄다리기 체력과 한계는?

일본의 경우 '후한 대접'을 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풀이가 나온다. 막대한 무역적자 때문이다. 미국은 연간 대일 무역에서 700억달러(약 78조원) 규모의 적자를 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일단 에너지와 인프라 분야의 대미 투자 협력 확대 의사를 표명했다. 무기 구매에 대한 언급도 했다. 트럼프의 장녀 이방카가 주도하는 여성 기업가 지원기금(일명 이방카 펀드)에 57억엔(약 557억원)을 기부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그런데 재탕 이야기가 많고, 무엇보다 관료들의 입을 빌어 언론이 대대적으로 제동을 거는 양상이 눈에 띈다.

미국산 무기 구매 규모는 아베 정권 들어 큰 폭으로 커진 바 있다.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제시하는 조건을 일본이 그대로 수용하는 정부간 대외군사판매(FMS) 방식이다. 그 전에도 많은 무기를 FMS로 사들였지만, 특히 아베 정권이 예산편성을 한 2013~2017년도에는 그 규모가 크게 늘어났다.

이방카 펀드의 지원 문제도 이미 일본 외무성이 밝힌 내용을 다시 언급한 것. 원래 처음 공표 당시에도 자금 조달을 어떻게 할 것이냐를 놓고 의구심을 제기하는 이들이 많았다.

결국 일본은 할 만큼 하는데, 이 정도에도 만족하지 못한다는 불만 즉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태도에 대한 반감이 높아일 수 있는 구조다. 조율을 시도할지 주목된다. 

실제로 마이니치신문은 관료의 발언을 인용, 무기 추가 구매 지출 부담이 지나치다고 보도했고, 도쿄신문은 이방카 펀드 제공 자금을 위해 다른 부문의 예산을 삭감하는 사태가 올 것이라는 정부 관계자 우려를 독자들에게 전했다.

이는 무엇보다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적극적인 호응 제스처를 보이면서도, 구체적 협의를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아소 다로 재무장관 등이 진행하는 미·일 경제대화에 맡기자는 생각을 전달해 놓은 상황에 따른 것이다.

일본으로서는 세부적인 내용 조율을 위해 뛸 필요를 느끼고 또 그럴 제2라운드 준비를 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한계는 없지 않다. 아베 총리가 '잃어버린 10년'의 무기력증 타개 여기에 더해 리먼 사태가 남긴 부정적 효과 등을 극복하기 위해 아베노믹스의 기치를 들었을 때 가장 든든한 우군이 돼 준 것은 다름아닌 미국이었다. 

다만 지난 정권이 경제와 정치(외교안보)를 함께 가져가는 기조가  강했다면, 트럼프 정부로서는 지나치게 큰 무역적자 때문에 더 이상 참기 어렵다는 점을 직설적으로 강조하는 인내심 차이가 있을 뿐이다. 애초 아베노믹스 등에 시동을 걸 때 일본은 역내 국가들로부터 '인근궁핍화 정책'을 한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그렇다고 중국의 위협 등 악재가 과거와 비교해 감소한 것도 아니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자기 코가 석자인 상황에 몰린 점만큼이나, 일본도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절대로 잃을 수 없다는 점을 전제로 갖고 있다. 레이건 정부가 환율 문제로 일본을 괴롭힌 '플라자 합의'의 경험도 이미 미국은 정치와 경제를 따로 조율할 수 있다는 교훈을 일본 측에 남겼다. 적정한 정도의 대미 투자를 통해 환율 등 다른 악재를 떠안는 것보다 낫다는 절충적 상황을 만든다.

무엇보다 일본은 경기를 부양하느라 재정지출 부담이 큰 상황이지만, 경제 전반의 사정은 나쁘지 않다. 아베노믹스를 계속할 필요도 느끼고 있다. 부담 자체를 거절하기 보다는, 아베노믹스 재신임 비용을 '조정'하는 정도의 줄다리기를 시도하면 될 여유는 있는 셈이다.

韓, 어떻게 해야 '믿을 수  없는 친구' 꼬리와 환율조작국 지정 우려 뗄까?

결국 당분간 한국의 운명은 중국의 협력 여부나 미국과 중국간 줄다리기 과정의 외부효과(의도하지 않은 이익이나 손해가 주변에 나오는 일)에 달린 걸까?

한국 기업들이 대미 투자 확대를 선언하고 나섰다. 미국의 압력을 덜기 위한 제스처다. 사진은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차 공장을 둘러보는 현대차그룹 임원들(2014년). ⓒ 현대차그룹

'트럼프-시진핑 대화'의 전제 조건이나 가장 중요한 의제가 북한 핵 해결과 통제가 되기를 우리는 바라지만, 중국과 미국의 내심은 전적으로 여기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서로간에 윈윈할 수 있는 경제 교류의 조건과 이해관계 절충안 찾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막대한 선물 크기를 내세우며 미국과의 협력을 타진하는 중국 대비 한국이 본격적인 대화 상대로 인식되기는 어렵다. 

8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32억4600만달러다. 이는 직전연도 흑자 규모인 258억800만달러 대비 9.93% 줄어든 규모다. 금년의 경우 지난달까지 열달간 148억3000만달러를 기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무역수지 흑자폭은 지난해의 것보다 더 클 리는 없어 보인다. 대미 무역흑자 크기가 하향세를 타고 있다고 예측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수십억달러 규모의 무기 구매를 언급했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미국 고위층과의 간담회를 통해, 우리 재계는 오는 2021년까지 향후 5년 동안 미국 시장에 총 748억달러(약 83조4000억원) 규모의 투자와 구매를 집행한다는 뜻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 상황에서 우리도 일본처럼 돈보따리를 풀 크기와 시기에 대해 조율을 시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재량 폭은 상당히 차이가 있을 전망이다.

우선 일본은 아베노믹스 효과를 보고 있고, 상당히 강한 펀더멘탈을 가진 경제대국으로서의 위상이 확고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도체 효과 등에 지나치게 의존한 외형상의 경제성장률 호조로 원화 강세라는 복병을 만났다. 그렇잖아도 수출이 어려운 상황인데, 환율에 당국이 개입하기도 어렵다.

미국이 우리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지만 관찰 대상국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 강세 역풍을 그대로 안고 가야 하는 상황에, 미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요구하고 있다. 세이프가드 발동 등 매번 꺼내드는 보호무역 방어구들도 부담스럽다. 

더욱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우리와 미국의 정상회담이 표면상 우호적으로 끝난 바로 직후인 7일(현지시각) 다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는 등 미국 주류 사회의 시각도 곱지 않다. 이 신문은 문 대통령에 대해 '못 믿을 친구'라고 평가했다. 최근 행동을 봐서는 북핵에 대한 미국 정책과 반대로 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우리는 중국이 미국과의 이번 정상회담으로 얻은 일말의 여지에서 생기는 '평화의 틈새시장'을 최대한 살릴 수밖에 없어 보인다. 

다만 제1강대국의 패권 경쟁이 긴 시간 잠복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가 누릴 골든타임도 길지 않다. 미국에는 대미 무역흑자가 크지 않고 미 현지 투자에 상당히 공을 들인다는 점, 중국에는 미국 중심의 안보전략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고 3불 정책으로 일종의 중립적 태도를 견지한다는 점을 주지시키면서 경제 체질은 빨리 수출 의존도를 낮추고 내수의 몫을 키우는 쪽으로 변환할 방편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일대일로 전략에 휩쓸리거나 미국의 자국 이기주의 어느 쪽에도 미움받지 않는 정도만 챙겨도 선방이라는 평이 나올 법한 상황, 하지만 그조차도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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