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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 경제의 도전②] 총체적 경제난국, 韓 그람시의 '위기'

대기업과 수출 신화 깨졌지만 죽지 않아…새로 지을 판 언제 열리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0.16 16:14:41
[프라임경제] 정권 초, 새 정부의 경제 정책을 둘러싸고 태풍이 예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람중심 경제'를 핵심가치로 삼고 △일자리·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이를 위한 3대 축으로 제시했다. 다만 이를 놓고 반응과 전망이 엇갈린다. 개념들이 명확하고 서로 어울리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재계에서는 대체로 기업에 유리하지 않은 정책일 것이라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진보 진영에서는 '경제적 올바름'의 단추를 끼우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아전인수 와중에 확실한 것은 골든타임이 길지 않다는 위기징후가 강하다는 것이다.

낡은 산업이 경쟁력을 잃더라도 역동적인 새로운 산업이 출현하면 경제의 활력은 여전히 보전된다고 할 수 있다. 경제의 현상 유지 내지 발전이 여전히 가능하다. 다만 이런 역동성이 보장되려면 끊임없는 민첩성 확보가 계속돼야 한다. 따라서 현재의 상황은 기존에 주요 경제 플레이어로 역할을 맡아 온 대기업 및 수출 중심 논리나 자유주의 시장경제론자들의 발언권을 계속 인정해 줄지의 여부를 재논의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물론 일부에서는 소득주도 성장과 혁신성장이 서로 어떻게 연관성을 갖는 지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실제로 검증된 이론이냐는 지적도 있고, 무엇보다 일목요연한 정합성이 부족한 것들의 묶음에 불과한 방법론으로 기존 패러다임을 교체하려 시도하는 것은 무모하다는 지적도 뼈저리다.

다만 이미 경제 전반에서 많은 경제 지표가 경고음을 내고 있다면 그런 논의가 무색해진다. 우리 경제 시스템은 이탈리아의 정치가 안토니오 그람시가 "낡은 것은 죽어가는데 새 것은 아직 오지 않고 있다"고 말한 '위기' 그 자체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관념들이 다소 불명확하다는 논란이 있지만 그것이 개혁 시동을 거는 자체를 막을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대기업 주도 경제 패러다임, '수년간의 부패 적폐'와 무관치 않아 

국제투명성기구에서 1995년부터 발표해온 부패인식지수(통칭 CPI)에서 한국은 1995년(41개국) 10점 만점에 4.29점을 받아 27위(당시 41개국 대상)에 중위권으로 등장한 이래, 대체로 30위대 후반부터 50위대 초반을 오가고 있다. 지난해 한국의 순위는 176개국 중 52위로 전년 대비 15계단이나 급격히 떨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지난 수년간 우리는 청렴국가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뒷걸음질쳤다"며 "반칙과 특권이 일상화돼 국가청렴지수가 15계단이나 하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강조했다.

대기업 주가가 큰 폭으로 오른 날의 거래소 현장. 그러나 대기업 주도 경제론에 한계가 왔다는 우려와 함께 모든 성장 과실이 대기업에만 머물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 뉴스1

수년간의 범위에는 멀게는 MB 정권,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의 기간이 들어간다 는 데 이견이 없다.

물론 부패는 대기업에만 책임을 돌릴 문제는 아니다.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 경제 주체들 모두 부패 상황의 피해자인 동시에 공범이라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불만이 나온다.

또한 부패란 결국 경제의 자유도 즉 규제에서 얼마나 자유로운 지와 반비례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헤리티지재단이 발표하는 경제자유도 같은 지표가 이 같은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즉 부패 문제가 부각될 수록 '규제를 개혁해 주면 부패할 소지도 없다'고 항변하는 셈이다.

지난 9월27일 실은 '시험대에 오른 체제'라는 기고문에서 미국 유력지 포브스는 대기업과 정부의 유착관계를 한국 경제의 큰 문제 중 하나로 꼽았다. 물론 이 기고문은 기본적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재판이 엄격한 증거에 입각해서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는 데 주안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 글은 기본적인 전제, 즉 우리나라 대기업(재벌로 물리는)들이 그간 시스템의 도움을 대단히 많이 받아왔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즉 삼성·LG·현대·SK 등은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거대한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었지만 부패에 취약한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이 글의 분석이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대기업들의 분식회계 관행이 큰 문제로 부각됐지만, 아직 근원적인 회계신뢰성 제고는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보인다. 스위스경영개발원(IMD)의 회계투명성평가설문에서 한국 기업경영자들은 총점수 63위의 낮은 평가를 내놨다. 두무뭉술한 작성 관행에 회계정보도 서로 믿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아직 뿌리내리고 있다. 

◆고용 등 유발효과 줄어드는 구 체제, 위기의식 높아져 

이런 상황에 좋은 경제 상황을 이유로 '면죄부'를 주고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표는 나쁘고 고용 등 사회적 역할에는 소극적이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대기업 취업자 수는 지난해 동기 대비 2만5000명 감소한 246만300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리먼사태 이후인 2010년 3분기 8만4000명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특히 대기업 고용사정은 지난해 1분기까지 긍정적이었다 갑자기 나빠져 배경에 더 관심이 쏠린다. 작년 1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6만1000명이나 취업자가 증가했지만, 2분기 들어 14만8000명으로 증가폭을 줄였고, 올해 1분기(-1만8000명)에 마침내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임기 말로 가면서 창조경제 참여 효과를 강제하는 힘이 떨어진 때문으로도 보인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와의 역학 관계에서도 이런 면종복배 기조가 더 두드러질 수 있다는 우려다. 정권 초기라 아직 정면 대결은 지양하지만, 속내는 개혁 요구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향후 대기업 고용 효과가 더 나빠지면 나빠지지 드라마틱하게 좋아질 적극 호응으로 돌아설지 미지수라는 것.

이는 대기업 특히 수출 위주 대기업이 가진 경제력이 실제로 축소되는 상황과도 무관치 않다. 수출이 곧 부의 창출 바로미터라는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 수출을 해도 국내 경제 성장에 도움이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 '수출 한 단위'가 유발하는 국내 부가가치 크기는 2000년 0.60에서 2010년 0.56, 2014년 0.55로 하락 중이다.

실업급여 신청 현장. ⓒ 뉴스1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임금을 묶어서 수출에 도움이 되도록 하자는 수출주도 경제, 낙수효과론의 정당성은 점차 약해져가고 있다.

실업률은 다시 빨간불이 켜졌다. 16일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8월 기준 실업률(계절조정)이 3.8%로 전월보다 0.2%포인트 상승하며 6월 이후 두 달 만에 상승 반전했다. 이 같은 한국의 전월 대비 상승 폭은 최근까지 8월 실업률 수치가 나온 OECD 회원국 25개국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함께 가장 높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문재인 정부가 혁신경제에 목마른 점은 대기업, 수출 중심론만으로는 안 된다며 다른 에너지 공급원을 작더라도 다양하게 개발하자는 위험 분산론의 의미가 크다. 일부에서는 혁신경제론 역시 대기업 주도 경제성장론만큼이나 소득주도 성장론과 무관하다고도 지적한다. 하지만 한국 가계가 이미 위기에 봉착했고, 이 같은 원인 해결에 고용 등에서 더 이상 과거 같은 구실을 하지 못하는 대기업의 손만 빌리기 어려다는 점은 이미 앞서 살핀 바와 같다.

11일 알리안츠 금융그룹의 '글로벌 자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GDP 대비 가계 부채의 비율은 95.8%로, 조사 대상국인 아시아 10개국 가운데 가장 높았다. 빠른 약효를 기대할 수 있는 소득주도 경제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대기업이나 수출의 반사 효과를 얻기 전에 가계가 빈사 상태에 빠지거나 빚에 눌려 쓰러질 수 있다는 '한계신호'가 크다는 뜻이다.

혁신경제와 소득주도 성장이 반드시 한 데 묶여야 한다든지, 서로가 반드시 가장 좋은 짝인지의 논리필연성은 확고하지 않지만 둘이 모두 활용될 필요와 서로 도움이 될 개연성은 존재하고 있다. 과거의 것이 죽은 상태에서 새 것이 오는 자체를 지나치게 심각하게 막고 있는 게 아닌지, 사람중심 경제의 주요 개념들을 수용하는 검증 문제가 지나치게 엄격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는 그 지점에 뿌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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