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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친척과의 고스톱, 고액으로 자주 치면 원정도박단?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6.09.14 10:51:39

[프라임경제] 추석 연휴가 시작됐습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교통 정체로 복잡한 귀성·귀경길을 뚫고 친척들이 모여 즐거운 한때를 보내게 되죠. 

이런 명절에 빠질 수 없는 오락거리로 고스톱 같은 각종 도박이 있습니다. 도박은 '2명 이상이 서로 재물을 걸고 게임을 해서 우연한 결과(승패)에 의하여 그 재물을 누가 갖는지를 결정짓는 것'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우연히 돈을 따는 재미에 빠지면 건전한 경제 활동에 대한 열의를 잃게 되고, 이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전체 사회질서에 악영향을 미치므로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 아울러 도박 자금 조달을 위해 다른 범죄를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는 점도 규제 이유로 꼽히고 있죠.

그런데 친척 간에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친교 수단으로 화투장을 섞는 정도까지 곧이곧대로 처벌하는 게 옳은지는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형법 제 246조 제1항에서도 '도박을 한 사람은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다만,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고 했기 때문이죠. 

1980년대에 나온 오래된 판례지만 대법원은 "생선회 3인분과 소주 2병 등 음식값을 마련하기 위하여 한 피고인들의 행위는 그들의 연령, 재산정도, 친교관계, 이 건에 이르게 된 경위와 그 방법, 그 회수와 장소 및 건 돈의 액수 등을 합쳐 검토하여 볼 때 단순한 오락 정도에 불과하다"며 처벌 대상이 아니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재산이나 친교관계, 내기를 하게 된 경위와 방법 등을 모두 따지게 되므로 사실상 '경우의 수'가 대단히 많은데요. 친척끼리 모여 집문서를 걸고 도박을 하는 경우는 없겠지만, 아무튼 형편에 비해 지나치게 큰 판돈을 거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같은 10만원이라도 회사원에겐 하루 저녁에도 쓸 수 있는 정도지만 초등학생에겐 한 달을 지내고도 남을 대단히 큰 돈이잖아요? 따라서 이런 모든 사정을 고려해 넣는다는 취지의 규정입니다.

그러므로 친척 간에도 판돈이 상식적 규모에서 너무 크다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서로 누가 땄는지를 놓고 싸움이 붙고 실제로 경찰이 출동하게 되면 충분히 도박죄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잃어도 아깝지 않은 규모에서 유흥의 한 수단으로 도박을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한편, 같은 조문의 제2항에서 '상습으로 제1항의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도 했는데, 명절마다 모여서 고스톱을 치는 경우 상습범에 혹시 해당하는 건 아닐까요? 하지만 이 정도는 상습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왜냐 하면 도박의 상습성을 판단할 때는 우선 처벌 대상이 되는 도박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친척 간의 친교 게임 정도는 우선 이 자체가 인정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요. 그 다음 판단 대상인 상습성에 있어서도 횟수와 그 도박 행위 간의 기간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008년에 내기 골프의 상습범으로 유죄 판결이 나온 사례에서 대법원은 상습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잘 요약 설명한 바 있는데요.

피고인들이 각자 핸디캡을 정하고 홀마다 혹은 9홀마다 별도의 돈을 걸고 총 26~32회에 걸쳐 내기 골프를 친 것은 상습도박이라고 인정한 사안에서 "내기 골프의 횟수, 기간, 판돈의 규모 및 피고인들의 전력 등을 고려한다"고 했습니다.

명절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상식적인 판돈을 걸고 설에 고스톱 한판, 그 다음 추석에 포커 한판 정도를 치는 걸 수십년을 반복해서야 절대로 상습도박 문제가 될 수 없는 셈입니다.

예외적으로, 가까이 사는 친척 간에 서로 매일같이 모여 거액의 판돈을 걸고 도박하는 걸 상당 기간 이를 반복한다면 상습도박으로의 가중처벌을 고려해 볼 수 있겠습니다.

우연에 의해 승패가 갈리는 게 아닌, 속임수 등을 쓰는 흔히 말하는 사기도박은 도박죄 적용 대상이 아니고 사기로 처벌해야 한다는 점이 다릅니다. 그래도 설마, 친척 간에 속칭 '밑장빼는' 행동을 해서 얼굴 붉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죠?

좀 과격하지만 "올라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기름 한 번 넣을 돈 이상 남기면 원정도박단 되는 것", 이런 식으로 딱 마음의 선을 그어놓거나 '판돈은 무조건 친척 아이들 나눠주고 끝내기' 같은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도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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