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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5.02 08:07:18

[프라임경제]마마, 호환을 넘어 음란비디오보다 무서웠던 IMF구제금융 위기를 빠져 나왔다던 새천년 맞이 즈음. 임직원 50 명도 안됐던 어느 벤처기업의 액면가 500원짜리 주식이 코스닥에 상장되자 173배, 정확히 86,500원에 거래되던 ‘미친 돈잔치’의 끝물. 그 와중에도 부자들은 IMF덕에 더 부자가 되어 건배도 ‘이대로!’였다던 시절. 벤처 잔치 끝나고 갖은 오물과 쓰레기만 난무하던 마당가에 ‘뭐 먹을 거 없나’ 서성거리던 2003년 9월 어느 밤 9시 뉴스. 

   
 

초로의 한국인 농민. 지구 정 반대편 멕시코 어느 건물 앞. 바리케이트 위 매달리듯 불안한 자세. 굵고 낮은 목소리로 ‘뭔가를’ 외치며 자결, 밑으로 굴러 떨어지는 충격적인 현장 화면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런 사건의 원인과 배경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게 아니라 한 인간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 진행되는 장면을 생생하게 지켜봐야 하는 것에 ‘충격’을 받을 뿐이었을 만큼 필자는 무지했고, 이기적이었다. 

이제 알고 보니 살신성인의 그는 박애적 농민운동가 ‘故 이경해’ 님이었고 그가 당시 외쳤던 말은 ‘따브류티오 킬스 파머스!_WTO가 농민을 죽인다!’였다. 장하준 교수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 이 내용이 나오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다 보니 불현듯 ‘아, 그때 그 사람’이 생각나 다시 인터넷을 뒤져서 그 화면에 대해 알아본 것이다. 

일상에 충실(?)하던 2008년 8월, 국내 중소기업의 홍보를 대행하던 필자의 작은 회사에 IMF는 게임도 안될 만큼 무서운 ‘서양인 형제’가 나타나 직격탄을 때렸다. 리먼 브라더스! 필자가 아는 것은 이름뿐 그들이 왜, 어디서, 무엇 때문에 멀고도 먼 동방예의지국 코리아, 일면식도 없는 작은 홍보대행사에 경영을 넘어 생존까지 위협을 가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기회가 되면 만사 제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그들 형제를 찾아서 ‘왜 그랬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아직 못 갔다. 

그런데 이제야 범인을 찾았고, 이유를 알았다. 치밀한 그들은 ‘리먼’이라는 가명을 쓰면서, 미국, 영국 등 강대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의 어깨에 올라타, 자신들도 더하기 빼기가 안 되는 금융파생상품 설계로 세계경제를 말아먹은, 그랬으면서도 엄청난 봉급으로 여전히 잘먹고 잘사는, 스웨덴 중앙은행이 노벨의 이름만 빌어 시상하는 199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머튼(Robert Merton)과 마이런 숄즈(Myron Scholes)였다.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배웠다. 간섭하지 않고 가만히 놔두면 시장이 알아서 수요와 공급을 조절하면서 모두가 잘살게 하는 것이 그 손이고, 공산주의의 계획경제와 다른 자본주의의 꽃이 그 손이라고 배웠다. 이후로는 경제만 아니라 정치, 사회, 종교 등 생활 전반에 ‘보이지 않는 손’을 경구처럼 신봉하게 되었다. 

이제 2008년의 범인을 제대로 찾게 된 것도 시원하지만 그러한 신봉이 얼마나 가소롭고 무지한 것이었는지를 ‘그들’ 대신. 바보들이 이해하기 쉽게. 한국 출신으로 이렇게 똑똑한 세계적 경제학자가 있었나 놀라도록. 전혀 경제학 같지 않은 경제학으로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오류와 반칙을 말해준 장하준 교수의 글발과 말발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카푸치노 사회’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대한민국 교육시스템, IMF와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 ‘자유시장주의자’들의 요구대로 대문을 활짝 연 결과 그나마 곳간마저 털리고 마는 후진국과 대한민국 서민층의 비애와 개선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하는 장하준 교수 역시 자본주의 경제학자다. 다만 강대국과 후진국, 부자와 서민이 모두 함께 지금보다 더 살기 좋은 자본주의를 제안할 뿐이다. 

차제에 누군가가 ‘대한민국,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이렇듯 명쾌하게 말 좀 해줬으면 좋겠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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