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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우의 경제 법률] 日 대지진 피해 보상 법적 범위는

 

이성우 변호사 | swlee@lawbom.com | 2011.04.26 11:01:21

[프라임경제] 일본 동북대지진이 발생한지 한달이 지난 이 시점에도 상당한 규모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당시 거대한 쓰나미에 의해 장난감처럼 휩쓸러 내려가던 수천 대의 자동차들을 보면서 인간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자연의 힘 즉 불가항력(不可抗力)을 생생히 목도했다. 이러한 불가항력은 법률상 어떻게 규정되고 당사자간의 법률관계에 있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불가항력(Force Majeure, Act of God)은 통상적으로 지진, 쓰나미, 태풍과 같은 자연적인 불가항력 외에 내란, 전쟁 등에 따른 비상위험 뿐만 아니라 정부의 간섭, 조치, 법원 명령, 파업, 정전 등 당사자가 통제 및 관리할 수 없는 사태를 포괄하며 예측 가능성이나 회피 가능성이 없는 외부적인 우발사유를 의미한다.

민법이나 상법상의 책임 또는 채무, 기타의 불이익을 면하게 하거나 경감시키는 표준으로 사용된다. 즉 불가항력에 기인한 계약의 불이행 또는 지연에 대해서 상대방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면책되는 것이다.

또한 불가항력은 무과실보다 좁은 개념으로 가령 민법상 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민법 제397조 제2항)에 따라 채무자는 금전상의 채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에 대해 무과실이라는 이유로 항변하지 못하지만 모라토리엄(moratorium)선언이나 법령에 의한 지급유예 등의 불가항력을 이유로 금전채무불이행에 항변할 수 있다.

   
이성우 변호사
그렇다면 구체적인 경우 법률관계에 있어 불가항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살펴보자.  먼저 이번 일본 대지진 같은 불가항력적인 천재지변은, 통상적으로 보험 사고에 해당되지 않는다. 보험약관에서 ‘지진, 분화, 해일, 전쟁, 외국의 무력행사, 혁명, 내란, 사변, 폭동, 소요, 기타 이들과 유사한 사태’를 보험자의 면책사유로 규정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규정의 취지는 위와 같은 사태 하에서는 보험사고 발생의 빈도나 그 손해 정도를 통계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타당한 보험료를 산정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사고발생 시 사고의 대형화와 손해액의 누적적인 증대로 보험자의 인수능력을 초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2007년 동남아 여행을 갔다가 쓰나미가 덮쳐 사망한 관광객 가족이 여행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법원은 여행사에 책임이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일본의 경우 지진이나 쓰나미 등이 문제라면 우리 나라 판례상 주로 불가항력의 문제로 논의되는 것은 태풍 내지 여름철 집중호우이다.

다만 단순히 태풍 내지 집중호우라는 사실만으로 당연히 면책되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이례적인 것이었는지, 예방 가능성은 없었는지에 따라 불가항력 사유가 적용된다.

2006년 강원도 영동고속도로에서 폭우로 발생한 산사태로 토사가 버스를 덮쳐 승객들이 다친 사고에 대해 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가 치료비를 지급한 뒤 도로공사의 안전시설관리 하자로 사고가 났다며 도로공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례를 살펴보자.

당시 법원은 ‘산사태 발생 당시 강우량 측정장치가 고장 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고, 도로공사 소유의 산비탈에는 시설기준에 맞는 배수로가 설치돼 있었다’며 ‘도로개설 후 8년간 안전사고 없이 관리된데다 고속도로 모든 경사로 윗부분까지 콘크리트 옹벽을 설치할 수는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가 당시 산사태 발생을 예측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며 기록적인 집중호우에 따른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였다는 이유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바 있다.

반면 2001년 7월 이틀간 서울 중랑구 일대에 310㎜의 기록적 폭우가 내린바 있는데(이는 하루 강수량 기준으로 1920년, 88년에 이어 세번째였다) 당시 면목동 주민 수십 명은 면목빗물펌프장의 가동 중지로 피해가 커졌다며 서울시와 중랑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고법은 ‘당시 빗물펌프장의 배수펌프 9대 중 3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만큼 관리 주체로서의 주의 의무를 다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 승소 판결한 사례도 있다.

위와 같이 불가항력 여부가 다투어 지는 사례는 주로 도로, 항만 등의 국가 기간 시설(공작물)의 관리 부실과 겹쳐서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법원은 도로, 항만 등이 일단 하자 있음이 인정되는 이상 손해발생이 천재지변의 불가항력에 의한 것으로서 하자가 없었다고 해도 불가피한 것이었다는 점에 대한 입증책임은 이를 주장하는 공작물의 점유자에게 있다고 판시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재해 뿐만 아니라 IMF나 리먼브라더스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어떠한가. 법원은 이러한 금융위기를 불가항력으로 보는 것에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 

그 일례로 2008년 7월경 S건설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한 D사는 같은 해 12월 세계 금융위기가 발발한 뒤 인수 건을 최소 1년간 유예해 달라고 제안했다.

그러나, 자산관리공사 등이 이를 거절하자 양해각서 해제를 통보했고 그 후 D사는 급격한 금융환경 변동과 S건설의 주가 폭락 등을 들어 적법한 양해각서 해지임을 주장하며, 이행보증금으로 납부한 수 백억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제기한 사례에서 법원은 D사가 내세우는 세계금융위기라는 불가항력적인 사유로 인해 양해각서에 따른 거래의 이행이 불가능해지는 경우 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한 바 있다.

또한 IMF 사태 및 그로 인한 자재 수급의 차질 등의 불가항력으로 인해 공사기간이 연장되었으므로 지체상금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수급인의 주장을 배척한 사례도 있다.

한편 이러한 불가항력은 형사상의 판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데 이 일례가 급발진 추정 사고이다. 2007년 법원은 좁은 도로에서 급발진으로 추정되는 역주행으로 6명의 사상자를 낸 혐의(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로 기소된 사안에서 ‘가해차량 자체에서 발생한 통제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상황에 의해 상상하기 어려운 속력의 역주행이 일어난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판시해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한 바 있다.

요컨대, 법원은 불가항력의 요건을 엄격하게 볼 뿐만 아니라 불가항력만으로 책임을 완전히 면책하지도 않는다. 만약 우리 나라에서 이번 일본과 같은 대지진이 일어난다면.

생각도 하기 싫고 그런 천재지변이 일어 나서도 안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일본의 지진과 연이은 원전 사고를 반면교사로 삼아 국가에서 불가항력을 원인으로 면책을 주장하는 일이 없기를 기대해 본다.

이성우(법무법인 봄 구성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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