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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영혼의 순례자가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3.07 11:33:05

[프라임경제]모든 것을 접어버리고 싶다. 한 달간만 어디 산속 외딴 집에 파묻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자고, 먹고 자며 뒹굴고 싶거나 가방만 덜렁 메고 발길 닿는 대로 여행이나 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일까. 그러나 현실은 단 하루도 녹록하지가 않다. 치열한 생활전선과 크는 아이들 사교육 뒷바라지에 치이다 보면 정해진 발길 말고는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면서 시나브로 세월만 흘러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안식휴가 받아 1년 간 파리로 떠난다는 어느 대학 교수의 소식은 우리를 정말로 ‘술푸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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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발이 없다고 걷지 못하란 법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발이 없으면 마음으로 걸으면 되는 것이다. 마음으로 걷다니 이 무슨 인도의 떠돌이 수도승 같은 소린가. 맞다. 인도의 떠돌이 수도승이 하는 말이다. 영혼을 실은 인도의 푸른버스에만 올라타면 우리는 굳이 멀리 떠나지 않더라도 히말라야 산속 수도승의 동굴에서 편안한 안식을 얻을 수가 있다.

영혼의 푸른버스는 어디서 탈 수 있을까. 바로 류시화 님의 ‘하늘 호수로의 여행’과 조연현 님의 ‘영혼의 순례자’라는 인도여행기이다. 두 사람의 여행기는 언제, 어디를, 어떻게 갔더니 재미있고, 구경거리가 많았다는 일반적인 여행기라기 보다는 전쟁처럼 애 끓이며 살지 않는 깨달음과 지혜를 얻는 과정을 충실하게 재현한 구도기에 가깝다.

이름과 저서의 제목들만 보면 남녀 구분이 어렵게 부드러운 류시화 시인의 ‘하늘호수로의 여행’은 1998년 2월, IMF로 직장인들의 하루하루가 백척간두이던 시절, 떠나는 자도 남는 자도 눈물을 삼켰던 그 때, 입사 3년 차 후배가 당첨(?)돼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최대리님, 노 프라브럼!’이라 써서 주고 간 바로 그 책이다. 깨달음을 탐하는 시인이 쓴 만큼 OECD 30개 나라 중 삶의 질, 행복도 29위라는 오늘의 한국인들이 류시화 자신이 겪은 인도 중 ‘어떤 사람, 어떤 사건’에서 마음의 평온을 얻을 수 있을 건지를 친절하게 통찰하고 있다.

정곡을 찌르는 단문과 위트로 웃음과 통쾌함을 유발하는 소설가 이외수 님의 트위터가 이유없이 자꾸 생각나는 이 책을 따라 몸을 실은 히말라야 행 영혼의 푸른버스, 운전기사가 자신의 친구를 만나러 장시간 만원버스를 세워둔 체 사라져 버리는 통에 꼭지가 돌아버린 성급하고 정의로운 한국인이 결국 버스 안의, 얼굴이 아니라 영혼을 바라본다는, 닭과 돼지를 끌어안고 탄 평범한 인도인들에게 설복돼 ‘버스는 결국 떠나기로 돼있는 시간에 떠났고, 나는 수천 년 전부터 예정된 시간에 정확히 라니켓에 도착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어느새 눈을 감고 ‘아!...’ 짧은 탄식과 함께 길고 편안한 안식에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연현 님은 있는 그대로의 사실(팩트)를 가장 중요하게 치는 신문기자다. 물론 현재도 그가 기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도 ‘이사람 기자 맞나?’ 할 만큼 ‘영혼의 순례자’는 담백하고 섬세한 문장력으로 메마르고 각박한 우리의 영혼을 촉촉하게 달래준다. 신문기자의 직업적 본능이 간절한 구도기에 녹아 들어서인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모두가 해탈한 고승같은 인도인들의 철학과 삶을 군더더기 없이 전해준다. ‘전생의 데자뷔를 거론하는 시인의 하늘호수’가 주는 평범한 독자와의 거리감을 그제서야 말끔하게 해소해 줌으로써 숨어있던 뭔가의 1인치를 찾은 것 같은 포만감에 비로소 빠지게 한다.

[하늘호수로 여행을 떠난 영혼의 순례자]든 [영혼의 순례자가 하늘호수로 떠난 여행]이든 순서는 상관없을 것 같다. 어느 책을 먼저 읽든 나중에 읽는 책에서 결국 소원대로 모든 것을 접고 산속에서 안식하는 나, 종로에서 뺨 맞고 화가 나 걷어찬 망고임에도 ‘당신은 마음이 아픈 사람이니 돈을 받을 수 없다’는 가난한 망고 밭 아줌마를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러한 잠시 조는 사이에 어느새 히말라야 설원의 바위 위에 긴 수염의 요기와 함께 앉아 지혜의 만트라를 중얼거리게 될 것이다.

“너 자신과 타협하지 말고 정직하라, 그러면 누구도 너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할 것이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그 또한 지나갈 뿐 영원함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은 평화를 잃지 않을 것이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거든 신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그럼 신이 너를 도울 것이다. 중얼 중얼 중얼 중얼… …노 프라브럼!”

하늘호수로의 여행을 선물했던 직장 후배는 현재 한국에서 가장 큰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정말 ‘노 프라브럼!’이었다.

   
 

컬럼니스트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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