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최보기의 책보기] 이청준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2.08 15:24:16

[프라임경제]너무나, 너무나, 너무나 유명한 소설이다. 읽지는 않았어도 작가와 제목은 들어서라도 알고 있을 사람들이 대부분일 소설이다. 그런데도 '당신들의 천국?' 한다면 지금 당장 조용히 인터넷에서 검색해보기 바란다. 남에게 물어보기엔 좀 쪽 팔리게 될 것이므로.’ 광장,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함께 100 쇄를 넘긴 소설이라는 게 제일 먼저 눈에 띌 것이다. 1980년대에 조세희 작가의 '난쏘공'과 함께 이 소설을 처음 읽었었다.

   
▲ OLYMPUS DIGITAL CAMERA


최소한 25년은 넘었을 동안 책꽂이에 고이 모셔져 있던 그 소설책을 다시 꺼내어 읽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감수성 예민한 시기에 그 책을 읽으며 절절히 감동한 이후 친한 이들에게 선물한 것만도 십 수 권은 됐던 것 같은데다, 책꽂이 한 중앙에 꽂혀있는 책을 볼 때마다 '근데, 저 소설 구체적으로 내용이 뭐였지?'여서다.

예전의 문둥이, 지금의 한센인들이 강제로 수용되었던 남해안의 섬 소록도와 어떤 간척지 공사를 배경으로, 강자들이 약자들에게 제시하는 천국의 건설은 진실된 사랑과 이해가 없으면 강자와 약자가 모두 어우러지는 '우리들의 천국' 아니라 강자들이 일방적으로 기획한 '강자들의 천국'에 약자들은 그저 엑세서리로 전락하기 쉽다, 그래서 '당신들의 천국'이란 제목의 '당신들' 부터가 왠지 범상치 않았었다는 정도만 어렴풋이 기억이 날 뿐이다.

25년 전 쯤에 샀을 책을 다시 꺼내니 전체가 누렇게 바랜데다 접착도 약해져 몇 장은 떨어져 나풀거리기까지 한다. 기억력이란 참 허탈하다. 처음 읽는 책이나 다름없다. 다음 내용이 뭔지, 결론이 어떻게 끝나는지 도데체 어느 대목, 어떤 문장에 그렇게 감동을 했었던 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러니 가장 최근의 신간 소설을 읽는 것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설이긴 하지만 1962년 전후에 한센인 집단 수용지였던 남해안의 계란 한 개 만큼 작은 섬, 소록도를 배경으로 일어났던 실제의 사건을 정리한 역사기록에 가깝다고 봐도 무리가 없게 사실적이다. 주인공은 물론 등장인물 대개가 실존 인물들이고, 많은 이들이 아직도 살아있어 진실된 천국의 구현을 호소하고 있는, 2011년 현재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인간세계의 끝을 붙잡는 한센인들의 마지막 희망과 절규를 앗아버린 육지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이 소설의 노림수는 아닌 것 같다. 문둥병은 어린이 간을 빼먹어야 낳는다는 진짜 같은 소문에 집안 단속을 해야 했던 시절, 흉측한 외모가 주는 충격적인 전염의 공포를 일시에 접고 오로지 사랑만으로 우리들의 천국을 건설해 함께 살았어야 했다고 ‘그들’에게만 요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소설은 타인에게 무엇을 베푸는 마음이 무엇을 기반으로 해야 진짜 베푸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에 더욱 많은 관심을 쏟게 한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책을 덮고 나면 길게 내뿜는 한 숨과 함께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저 시가 먼저 떠오른다. 나와 내 가족 아닌 그 누구를, 또는 내 것이 아닌 그 무엇을 위해 진실된 나의 땀을 한 방울이라도 흘리며 살아봤는지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다 그렇고 그런 세상, ‘내가 포함된 우리들만의 천국’을 위해 은근슬쩍 이기적 탐욕과 약탈의 대열에 합류했던, 약자와 소수의 불편한 현실보다 강자와 다수의 기득권에 쉽게 편승하려는 부끄러운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행여 ‘당신들의 천국’을 다시 읽더라도 205페이지는 그냥 대충 넘어가기 바란다. 순화되지 않은 황 장로의 병자년 흉년 체험기가 너무 지독하다. 그러나 정치인과 관료, 상위 몇몇 프로 안의 부자들은205 페이지를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당신들의 천국’ 밖에서 굶주림에 더해 소외와 핍박까지 받는 약자들이 종극에는 얼마나 지독하게 이성을 상실할 수 있는지를 보면서 모든 사람들이 골고루 배고픔을 면하고, 핍박 없는 좋은 정치와 현명한 정책, 약자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 몸서리를 치게 될 것이므로.

2011년, ‘당신들의 천국’이 대학 신입생 추천 도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는 신문 기사의 뜻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대령이자 소록도 병원장이었던 주인공 조백헌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또한 더욱 규명되고, 보다 널리 알려지는 것도 나쁠 것 같지 않다. 나눔과 배려의 기부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현실, 기부는 돈으로 가장 쉽게 할 수 있지만, 그게 없더라도 조백헌 원장처럼 사랑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보기 thebex@hanmail.net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