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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 성석제 단편 소설집 ‘지금 행복해’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1.26 16:46:27

[프라임경제]‘성석제 소설가라고 해야 할 지, 소설가 성석제라고 해야 할 지, 어떤 표현이 맞는 지 모르겠다. 필자가 존경하는 대상에 나이도 필자보다 더 많을뿐더러 유명인이기 때문에 호칭부터 신경 쓰인다. 에라, 그냥 많이 쓰이는 대로 ‘소설가 성석제’라고 하자. 그렇다 한들 ‘듣도 보도 못한 사람-듣보사’인 나에게 어떻게 할 수도 없을 테니까.’ 처럼 쓰면 성석제 소설의 문장과 대충 닮아 보인다.

   
 

필자는 성석제 소설가의 책을 ‘지금 행복해, 인간적이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참말로 좋은 날’ 등 모두 다섯 권 가지고 있다. 이중 ‘즐겁게 춤을 추다가’는 사는 동안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었을, 겪을 수도 있는 일들을 엮은 ‘장편 유머 모음집’ 정도고 나머지 네 권은 단편 소설집이다.

소설가 성석제의 소설들은 한마디로 재밌고, 편하고, 사람적이다. 물론 그의 소설이 다 그렇다거나,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육칠십 년대 서울의 변두리나 시골에서 청춘 시절을 보낸 사오십대 남자들이 읽기에 그렇다. 가족을 부양하느라, 직장에서 밀려나지 않으려, 퇴직하고 새로 자영업을 시작한, 고등학생 자녀의 ‘인서울’ 등으로 골머리 아픈 그런 사람들이다. 서울의 변두리나 시골인 이유는 그가 쓰는 소설의 무대가 빛나던 청춘 시절, 도시에서 또는 시골에서 누구나 겪었을 법한 즐거운 기억들로 공감이 쉬운 만큼 책장 넘기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불타는 이십대 초반 방학으로 내려온 대학생, 방위 입대 때문에 휴식중인 백수,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매한 친구 셋이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갓바 텐트와 스피커 두 개 달린 카세트, 석유버너를 낡은 배낭에 바리바리 챙기고 무전여행을 떠났다가 ‘태양’ 담배 나눠 피는 것으로 시비가 붙어 초장에 갈라선 기억이 있는 사람이면 더욱 그렇다.

고향에 모인 남녀 친구들이 작업의도를 애써 숨기며 캠핑에 합의, 황홀한 기대를 품고 오만 것 싸서 명산 계곡으로 갔다가 술 취한 ‘삼시기’가 엣지있는 남녀 대학생 RCY 그룹에 괜한 시비를 걸어 소주병을 깨는 바람에 고고하게 古文學槪論(고문학개론)을 가져와 읽는 옆마을 동창 세희의 손 한 번 못 잡아본 채 판 깨지고 이미지만 더럽힌 추억이 있는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성석제 소설가의 소설들은 작심과 목표, 인내를 가지고 덤벼도 읽다마다 할 덩치 큰 소설과 달리 그냥 머리 식히기나 킬링타임 용으로 아무렇게나 집어 들기에 안성맞춤이다. 큰 방송사의 유명한 코미디 시트콤 PD가 ‘성석제 소설은 나오는 대로 읽는다’는 한마디에 ‘지금 행복해’부터 사서 읽기 시작한 것이 벌써 다섯 권 째다. 주로 단편소설들이라 금방금방 한 편씩 해치운다. 지하철도 좋고 버스도 좋고 철로를 무단 횡단할 때도 좋다. 이 대목에서 소설가 성석제는 ‘조심해야 한다. 철로에 무단 진입 시 법에 의해 처벌받는다는 경고문이 있다. 그러니 무단횡단을 조심하라는 게 아니라 그 경고문을 읽다 철로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즐겁게 춤을 추다가’를 통해 충고하고 있다.

낚시하다 낚시에 낚여 본 사람, [소변금지]를 [지금변소]로 해석 멋대로 방뇨를 하다 개에게 쫒겨 방뇨 중에 달아나 본 사람, 술자리 오기 대결로 겨울 밤에 맨발로 관악산을 올라본 사람,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가 그리운 사람, 보이스피싱 전화 받고 상대방 실실 약올리다 중국 조선족 남자에게 ‘달먹고 달사러라 새끼야’라 욕먹어 본 사람, 집 앞에서 신호위반으로 딱지 끊긴 게 억울해 오기로 ‘노들경찰서 김만복 경장’ 옆에서 근무태도 체크하다 그에게 항복을 받아낼 만큼 ‘인간적이다’는 사람이라면 성석제의 ‘지금 행복해’부터 아무렇게나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더매치유? (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하고, 유치하다)의 뜻을 아는 사람, 조개 껍질 묶어 비니비니 바나바나 바롯싸 바롯싸데 예뽀이 따이따이예 노래를 아는 사람, [상대가 노약자라 바좃는데 족발로 촛대를 까서 치료를 밧앗슴니다]나 [넌 빠져 임마] 대신 [넌 쁘와져 임마]로 써줌으로써 섬세하게 웃음을 챙겨주는 작가의 센스가 필요한 사람들은 ‘웃기는 소설가’ 성석제의 글들로 즐겁게 시간도 때우고, 책도 읽는 일거양득을 권한다.

1960년 생인 성석제 소설가, 이래봬도 한국일보문학상, 동서문학상, 이효석문학상,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오영수문학상을 받은 간단치 않은 작가다.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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