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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기의 책보기]조용옥 님이 쓴 ‘밥상을 차리는 작은 지혜’

 

프라임경제 | webmaster@newsprime.co.kr | 2011.01.10 11:49:45

[프라임경제]‘작은 지혜’라고 했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결코 작은 지혜가 아니다. 최소한 20년 이상은 요리에 대단한 관심과 흥미를 갖고 꼬치꼬치 따지고, 적지 않았으면 안될 만한, 만만치 않은 지혜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이 책은 우선 제목부터가 틀렸다. ‘밥상을 차리는 대단한 지혜’라고 했어야 옳았다.

   
 

주제가 요리이기도 하고 글쓴이 조용옥(트위터 @food114cpa) 님 이름으로만 간단히 넘겨짚어 요리께나 연구한 여성 전문가겠지 싶겠지만 놀랍게도 조용옥 님은 남자다. 그것도 며느리를 둘이나 보았을 만큼 나이 지긋한 신사다. 경기도 양평 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와 70년대에 행정고시와 공인회계사(CPA)를 합격,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공직들을 거쳤다.

기분상해 하지 마시라. 그런 것이 이 책을 가치 있게 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 아니라 그러니까 ‘머리’로는 어디다 내놔도 밀리지 않을 만한 수재란 말씀이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문득 요리에 푹 빠지면서 인근 동네에서 요리깨나 하는 아주머니, 할머니들에게 하나하나 물어, 본인이 직접 반복하고 반복해 체득한 요리법을 기록해 놓은 요리책이니 그 꼬장꼬장한 섬세함, 범인들의 하루 세 끼 밥상 욕구에 맞춘 눈높이가 ‘과연 수재답다’는 탄식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당연히 이 책은 ‘엘레강~뜨하고 클래~직클한 요리’와는 완벽하게 거리가 멀다. 버터가 팍팍 넘쳐 도대체 뭔지도 모를, 아메리카노 이태리안 스타일링 한다는 식재료, 휘황찬란하긴 하다만 이걸 언제 해보며, 먹어보기나 하겠냐며 기부터 죽이는 그런 요리나 사진 한 장 없이 단지 글로만 써졌을 뿐인데도 희한하게 군침이 마르질 않는다.

왜일까? 간단하다. [김치/국/나물,무침,절임/찌개,탕/조림,볶음,구이/죽,전/계란찜 등 기타]로 분리된 목록만 봐도 얼른 알 수 있듯이 113가지 요리목록이 하나같이 ‘어머니 밥상표 식단’이기 때문이다. 요리제목을 보고 ‘이게 무슨 요리지?’라고 뒤적이지 않아도 한 눈에 다 아는 그런 요리들, 삼시 세끼 우리들 밥상에서 흔하게 마주쳐 왔던, 심지어는 ‘아니, 이것도 요리라고 레시피를 썼나’ 싶은 것들이다. 아마도 오늘 점심 밥상에 오른 반찬이 여섯 가지였다면 그 중 다섯 가지는 이 책의 목록에 있을 것이다. 필요한 식재료들도 시장에 가서 하나하나 새로 사야 할 것들 보다는 대부분 이미 냉장고에 잠자고 있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목록들이 깻잎김치,열무김치,오이미역냉국,가지나물,미역줄기볶음,된장찌개,굴전,잔멸치볶음,김치카레덮밥,계란말이,고등어절이기,김밥 등 보편, 시민적인 요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김치 종류만 12가지에 가족건강의 기본인 된장 담그기, 겨울의 별미라는 메생잇국, 낙지연포탕, 겨울동치미, 꽃게찌개, 간장게장, 삼계탕, 양념갈비구이, 전복죽, 잡채, 매실청 등 귀하거나, 손가거나, 정성 들여야 하는 고난이도(?) 요리까지 전국의 ‘어머니 손맛’을 대부분 휘저었다.

목록만 한국적인 것이 아니다. 저자의 요리법, 아니 요리안내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실제적이고 자상하다. ‘열무김치를 담글 때 건고추는 물에 불리지 말고 갈아야 단맛이 안빠진다. 양념은 직접 손으로 바르지 말고 양 손가락을 펴서 열무 밑에 넣고 들어 올렸다가 위에서 털어내려야 양념이 고루 섞이고 풋내가 준다. 양파를 썰어야지 갈아 넣으면 국물이 탁해진다. 콩나물을 볶을 때는 물기 있는 채로 한번에 휘젓고 빨래를 삶을 때처럼 가운데를 조금 비운다. 된장국은 오래 끓이면 떫은 맛이 생긴다. 물에 씻은 깻잎은 마른 수건으로 닦아야 깻잎이 상하지 않는다. 숙주는 뚜껑을 열고 데치되 2분 안에 건져내야 단물이 안빠진다.’는 식이다. 좀 까다롭다 싶은 정도가 ‘콩나물 볶을 때마저 일반 식용유보다 올리브유를 꼭 써라, 가지는 속이 희므로 미관상 소금과 맛간장으로 간을 하라’ 정도다.

시골 교장선생님 같은 저자의 ‘김굽기’와 ‘가지 고르기’는 가히 자상함의 압권이다. 김에 들기름을 바를 때 솔에 묻혀 바르면 기름 낭비가 심하므로 홈이 많이 파진 수저 뒷면에 무쳐 한쪽 면에 바르란다. 가지나물의 맛은 100% 가지에 달렸는데 약간 길면서 통통한 가지가 좋다, 너무 작으면 비린내가 나고, 너무 크면 안에 씨가 있어 맛이 없단다. 도대체 이렇게 자상하고 섬세한 한국적 레시피를 어디서 구할 것인가. 그래서 저자의 책은 오히려 요리깨나 한다는 전문가들이 은근슬쩍 사다가 기본기에 참고한다는 말이 낭설만은 아니지 싶은 것이다.

저자는 음식을 만드는 기본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맛이다. 특히 건강에 유익한 맛을 내려면 화학 조미료나 설탕 대신 천연 재료를 이용해 맛을 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둘째, 계절별 식재료에 대한 안목. 셋째, 소금의 최소화. 넷째, 간. 다섯째, 불 조절이다. 저자는 이런 것들을 레시피가 아닌 자신의 부단한 경험으로 요령을 터득해 나가야 자신만의 요리법이 생기는 법이라고 강조한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에게 일러준 100가지 요리법, 밥상을 차리는 작은 지혜’는 단박에 읽어내는 소설책이 아니라 ‘오늘 저녁은 뭘로 반찬을 하지?’ 할 때마다 꺼내서 여기 저기 뒤적이다 필이 꽂히는 목록을 고르는 ‘반찬 사전’으로 활용할만하다. 굳이 이 책으로 대단한 요리가가 되진 못할지라도 마지막 112번 째 ‘맛간장’, 113번 째 ‘천연조미료’만 제대로 알고, 평생 써먹는다면 책값의 몇 만 곱절은 뽑고도 남을 것이다.

필자는 이 책을 쓴 조용옥 님을 본 적도,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 글을 쓴 대가로 조용옥 님에게 초대받아 시원한 겨울동치미 국물과 잡채가 오른 점심을 제대로 한 상 대접받는다면 그 이상 원할 것도 없겠다. 이번 주말에는 가족들을 위해 지난 20년간 맘만 먹고 실행해 보지 못했던, 아내가 해주지 않으면 먹어보지 못하는, 노란 기름이 철철 넘치는 식당 것과는 비교가 안될 담백하고, 몸에 유익한 ‘잡채’에 도전해 봐야겠다.

최보기 

   
 
thebex@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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