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수 KGI 한국판촉물제조협회장은 국내 판촉·선물 시장이 4조원 규모로 성장했음에도 표준산업분류 체계에 들어가지 못해 정부 지원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20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오렌지생활건강 본사에서 만난 황 회장은 판촉물 산업이 마주한 제도적 한계와 함께, 디지털 전환과 브랜드 경쟁으로 재편되는 시장 변화를 짚었다.
◆'타월 한 장'에 담긴 부가가치, 제도적 한계에 묶인 소기업들
오프라인 매장부터 온라인 쇼핑몰, 대형 특판 시장까지 아우르는 국내 판촉물 업계는 시장 규모와 달리 통계청의 한국표준산업분류상 독립된 업종 코드가 없다.
황 회장은 지난 2022년 국정감사 당시 직접 20페이지에 달하는 업계 분석 자료를 국회에 제출하며 표준산업분류 지정을 추진했으나, 최종 단계에서 고배를 마셨다. 통계청은 판촉물이 기존 문구나 섬유 산업에 포함된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황 회장은 현장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소비자가 마트에서 5000원짜리 타월을 살 때와 판촉물로 주문할 때는 완전히 다른 부가가치가 발생합니다. 여기에 기업 로고를 새기는 자수비, 박스 패키징비, 포장 공임 등이 더해지면 제품 가격은 7500원으로 50%가량 뜁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고용이 창출되고 세금이 발생하는데, 이를 단지 기존 타월 제조업의 연장선으로 보는 것은 현장을 전혀 모르는 탁상공론입니다."
독립된 산업분류 코드가 없다 보니 현장의 어려움도 적지 않다. 종사자 수나 정확한 시장 규모 집계가 쉽지 않아 정부의 소상공인 지원 정책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게 협회 측 설명이다.
특히 매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직원 수 기준 때문에 소상공인 혜택에서 제외되는 소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거대 플랫폼 기업들이 자금력과 물류망을 앞세워 관공서 특판이나 기업 복지몰 시장에 진입하는 상황에서, 기존 판촉물 업체들은 제도적 보호 장치 없이 경쟁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황 회장은 "판촉물업이 표준산업분류로 정립되고 향후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을 위한 논의 기반이 마련된다면, 대기업의 무분별한 시장 진입을 막고 전통적인 소상공인들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제도적 안전장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산 70% 시대…"브랜드와 스토리 마케팅이 생존 열쇠"
국내 판촉물 시장은 중국산 제품 확대와 온라인 플랫폼 중심 재편이라는 이중 변화를 맞고 있다. 협회는 시장의 약 70%를 중국산 수입 제품이 차지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인건비와 물류비 상승까지 겹치면서 국내 업체들이 단순 가격 경쟁으로 버티기는 어려운 구조다.
그러나 황 회장은 대기업 플랫폼의 확장이나 중국산 저가 공세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무조건적인 국산품 애용보다 제품 기획력과 브랜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무조건 한국 제품이니까 더 비싸게 사달라고 요구하는 시대는 지났다"며 "이제는 수입 제품을 들여오더라도 어떤 캐릭터를 입히고, 어떻게 패키징 디자인을 바꿔 우리만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느냐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우산이라도 암막 자외선 차단 기능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고급화하면 가치는 몇 배로 뛴다"며 "결국 핵심은 제품에 담긴 브랜드와 스토리"라고 덧붙였다.

황 협회장이 지난 2022년 론칭한 맨도롱제주 제품 라인업. ⓒ 오렌지생활건강
황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화장품 브랜드 '맨도롱제주'를 판촉물 시장에 접목해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제주 감귤과 청귤 껍질에서 추출한 친환경 원료로 화장품을 만들고, 자체 개발한 해녀·돌하르방 캐릭터 디자인을 텀블러와 결합한 기프트 세트를 선보인 사례가 대표적이다.
황 회장은 해당 제품이 대기업 복지몰과 관공서 행사 등에서 스토리 마케팅형 판촉물로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합회 결성·아카데미 설립…후배 위해 길 닦을 것"
황 회장은 2년의 임기 동안 산재해 있는 업계 단체들을 하나로 묶는 '판촉물 사업자 연합회' 결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부를 향해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국내 판촉물 산업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장기적으로는 중국 광저우의 세계적인 판촉 전시회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K-기프트 산업 전시회'를 정례화하겠다는 목표도 갖고 있다.

지난 4월 진행된 협회 정기 이사회에서 황선수 KGI 한국판촉물제조협회장과 회원사 관계자들이 판촉물 산업의 제도 개선과 디지털 전환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 KGI 한국판촉물제조협회
황 회장이 특히 공을 들이는 분야는 회원사들을 위한 디지털 전환 교육이다. 1세대에서 2세대로 넘어가는 업계 전환기 속에서 젊은 CEO들이 카탈로그 중심의 기존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SNS 마케팅과 오픈마켓, 복지몰 시장에 적응할 수 있도록 협회 차원의 아카데미를 신설할 계획이다.
그는 "미용사회나 안경사협회처럼 직능 단체가 단합해 방향을 제시해야 산업이 발전한다"며 "지난 30년간 이 산업에서 성장해 온 만큼, 뒤따라오는 후배 CEO들이 더 안정적이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것이 제 마지막 소명"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이라면, 제가 먼저 걸어가 길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