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1997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는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에게 졌다. 그 패배 이후 그는 오랫동안 한 가지 질문을 붙들었다. 인공지능(AI)이 인간보다 더 잘하는 것과,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 사이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가 도달한 답은 단순했다. 컴퓨터는 해답을 찾는 데는 최상의 도구지만, 어떤 질문이 중요한지는 모른다. 기계는 주어진 판 위에서 최선의 수를 찾는다. 판 자체를 다시 그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설명과 설계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설명은 이미 있는 것을 풀어내는 행위다. 설계는 아직 없는 것을 구성하는 행위다. AI는 전자에 탁월하다. 후자는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둘을 자꾸 혼동한다. AI가 만들어준 매끄러운 설명을 보고 '설계가 끝났다'고 착각하는 순간, 판을 다시 그리는 능력은 조용히 위협받기 시작한다.
자동화의 아이러니, 다시 돌아오다
이 위협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퍼듀 대학교(Purdue University)의 프라카쉬 슈클라(Prakash Shukla) 등 연구팀이 2025년 4월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AI 지원 설계의 잠재적 역설: 탈숙련화, 인지적 오프로딩, 그리고 책임의 이동(De-skilling, Cognitive Offloading, and Misplaced Responsibilities: Potential Ironies of AI-Assisted Design)」은 이 문제를 자동화의 역사에서 먼저 찾는다.
연구팀은 사용자 경험(UX) 디자인 실무자들의 블로그 포스트와 Reddit 커뮤니티 토론 120여 건을 분석하면서 논의의 틀을 현재가 아닌 과거에서 가져왔다. 산업 자동화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아이러니가 있다. 자동화는 인간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도입되지만, 결국 인간을 창의적 의사결정에서 밀어내고 AI 결과물을 검토·수정하는 역할로 좁혀버린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것이 AI 보조 설계 환경에서도 되풀이될 수 있는 '탈숙련화(de-skilling)'의 경로라고 경고한다. 아직 확정된 현실이 아니라, 역사가 반복해서 증명해 온 패턴으로서의 경고다. 실무자들은 AI에 낙관하면서도, 동시에 이 패턴을 직감적으로 감지하고 있었다.
빠른 수렴의 함정
그 직감은 실험으로도 포착됐다. 나자르바예프 대학교(Nazarbayev University)의 마리자 차칼레루(Mariza Tsakalerou) 등 연구팀이 2026년 1월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 「공학 교육에서의 AI 지원 설계 합성과 인간의 창의성(AI-assisted design synthesis and human creativity in engineering education)」은 AI 지원 팀(7팀)과 AI 없이 작업한 팀(5팀)을 직접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AI 없이 작업한 팀이 더 다양한 설계 변형을 탐색했고, 기능적 완성도에서도 앞섰다. AI 없이 작업한 팀 전원(100%)이 최종 설계물을 완성도 높게 구현한 반면, AI 지원 팀에서는 29%만이 같은 수준에 도달했다.
연구팀은 표본이 작아 통계적 유의성에는 한계가 있음을 명시하면서도, 모든 설계 지표에서 같은 방향의 패턴이 일관되게 나타났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들이 이 패턴에 붙인 이름이 '조기 수렴(premature convergence)'이다. AI가 초기에 구조화된 제안을 제시하자, 팀은 더 넓은 가능성을 탐색하는 대신 그 제안의 궤도 안에 머물렀다. 설명이 먼저 완성되는 순간, 설계는 그 설명을 따라가는 데 그쳤다.
두 연구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설명의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설계의 탐색 범위는 좁아진다.
서서히 약해지는 뼈
이 구조를 이해하면, 위기의 성격이 달리 보인다. 이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다. 설계 능력이 갑자기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설계를 먼저 시작하는 습관이 조금씩 뒤로 밀린다.
오늘 AI의 제안을 그대로 발표하고, 내일 AI의 틀 안에서 질문을 고르고, 모레 AI가 규정한 문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진행된다. 뼈가 부러지는 것은 순간이지만, 뼈가 약해지는 것은 서서히다. 설계 감각의 퇴화도 그렇다.
여기에 이 문제를 더 까다롭게 만드는 역설이 있다. 차칼레루 연구팀이 발견한 것처럼 AI 지원 팀의 구성원들은 설계의 완성도가 낮아졌음에도 스스로의 창의성에 대한 자신감은 떨어지지 않았다. 설계가 실제로 약해지고 있는데, 본인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매끄러운 설명이 결함을 가린다.
설계의 주권을 쥔 자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조직이 AI가 정의한 문제를 열심히 풀고 있다. 문제를 잘 풀고 있다는 것은 의심하지 않는다. 의심하지 않는 것이 문제다.
설계는 원래 불편한 행위다. 지금 당연하게 여겨지는 전제를 뒤집어 보는 일이고, 아직 존재하지 않는 구조를 머릿속에서 먼저 세우는 일이다. 그 불편함을 AI가 대신 처리해 줄 때, 인간은 편안해진다. 그리고 편안해지는 바로 그 순간, 설계자로서의 감각은 조금씩 무뎌진다. 마취는 고통을 없애지만, 감각도 함께 데려간다.
텍스터는 AI가 건네준 답을 들고 회의실에 들어간다. 컨텍스터는 그 답이 어떤 질문에서 나왔는지를 먼저 묻는다. 이 차이는 작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벌어진다. 답은 소비되지만, 질문은 축적된다. 축적된 질문이 설계의 근육이 된다.
카스파로프가 딥블루에게 진 날, 체스판은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은 그 판 위에서 누가 더 잘 계산하느냐의 문제가 더 이상 인간의 몫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어떤 판을 놓을 것인지, 왜 지금 이 게임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인간만이 물을 수 있는 질문이었다. AI 시대의 지식인에게 남겨진 것은 바로 그 질문이다. 더 좋은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더 날카로운 질문을 먼저 설계하는 사람. 그가 컨텍스터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