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올해 1분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타의로 직장을 떠난 인원은 8만명을 넘어섰다. 오라클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구축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최대 3만명 규모 감원을 추진하고 있다. 메타와 아마존 역시 구조조정을 이어가고 있다.
동시에 구글·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메타 등 미국 4대 빅테크는 올해 AI 인프라에만 약 700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이제 AI는 단순한 업무 보조 기술이 아니다. 사람의 역할 구조 자체를 재편하기 시작한 새로운 산업 질서에 가깝다.
특히 AI의 경제성은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GPT-4 기준 100만 토큰 처리 비용은 지난 2023년 약 37.5달러였지만, 현재 비슷한 성능의 모델은 0.1달러 수준까지 낮아졌다. 불과 1년여 만에 비용이 375분의 1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기업 입장에서 AI는 더 이상 실험 대상이 아니라 사람을 대체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지가 되고 있다. 일부 기업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업무 프로세스를 AI에 학습시키고, 그 AI가 다시 자신의 역할을 대체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결국 우리를 대체할 AI를 훈련시키고 있었다"는 한 실리콘밸리 직원의 말은 지금 시대의 불안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 기업이 고민해야 할 질문은 "얼마나 많은 업무를 AI로 바꿀 수 있는가"만이 아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AI 시대에도 무엇을 인간에게 남겨둘 것인가"다.
AI는 보고서를 빠르게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하며 의사결정 과정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원래 고민과 충돌, 시행착오를 통해 판단력을 키워 왔다. AI가 추천과 요약을 반복할수록 사람들은 점점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 조직은 빨라질 수 있지만, 구성원의 질문하는 힘과 비판적 사고는 약해질 수 있다.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조직의 암묵지가 사라질 가능성이다. 조직의 경쟁력은 단순한 데이터 축적에서 나오지 않는다. 선배의 실패 경험, 회의 속 토론과 충돌, 현장의 직관과 감각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암묵지가 조직의 진짜 자산이다.
그러나 AI가 중간 과정을 대체하면 이러한 경험 이동 구조가 약화된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배우지 않게 되고, 조직은 효율적으로 움직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위기 대응력과 전략적 판단력을 잃어갈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책임의 실종 가능성이다. 과거에는 누가 어떤 판단을 했는지가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AI 기반 의사결정 구조에서는 판단 기준이 알고리즘과 데이터 뒤에 숨어버린다. 구성원들은 결과를 따르지만 왜 그런 결론이 나왔는지를 다시 질문하지 않게 된다.
결국 조직은 더 빠르게 움직이지만, 잘못된 방향을 수정하는 능력은 약해질 수 있다. AI는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누군가 설계한 기준과 가치관이 반영된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AI가 인간관계와 사회적 신뢰를 약화시킬 가능성도 있다. 조직은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신뢰와 책임감을 형성해왔다. 그러나 AI가 중간 상호작용을 대체할수록 협업의 밀도는 낮아질 수 있다.
실제로 AI 도입 후 고객 응대를 자동화했던 일부 기업들은 다시 사람 중심 서비스로 돌아가고 있다. 스웨덴 핀테크 기업 클라르나는 AI 상담원 도입 이후 인력을 줄였지만, 고객이 원할 때는 결국 사람과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채용을 확대했다.
또한 AI로 직원을 해고한 기업 600곳 중 31%는 해당 직무를 다시 사람으로 채우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들었다고 답했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단순한 자동화 수준에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간 고유의 판단력을 얼마나 보호할 수 있는가에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방향을 결정하는 힘, 기준 자체를 다시 질문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 윤리적 책임을 고려하는 태도는 여전히 인간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다.
AI는 사람의 업무를 대신할 수는 있다. 그러나 사회를 유지하는 신뢰와 책임, 조직의 장기적 전문성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AI를 얼마나 많이 도입했는가보다, AI 시대에도 인간다운 판단력을 얼마나 지켜냈는가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이윤선 인력경영학자/원광대 미래인재개발처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