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재명 정부와 농림축산식품부가 추진 중인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충남 청양군 현장에서 재정 부담과 운영 혼선, 형평성 논란으로 확산되고 있다. 재원 구조와 시행 기준이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추진되며 지방자치단체가 사실상 '본사업 수준 실험'을 떠안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재 결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지급 개시를 앞두고 같은 달 11일에야 세부 시행지침을 확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첫 지급은 2월27일부터 시작됐다. 지침 확정 후 실제 지급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6일에 불과했다.
청양군 관계자는 "시뮬레이션도 제대로 하지 않은 상태에서 사실상 본게임으로 들어간 셈"이라며 "급하게 사업이 추진되다 보니 지침과 현장 운영이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농어촌기본소득은 인구감소지역 주민에게 월 15만원 상당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정책이다. 시범사업 대상지는 충남 청양을 비롯해 강원 정선, 경기 연천, 전남 곡성·신안, 경북 영양, 전북 순창·장수 등 전국 10개 군이다.
농식품부 시행지침상 재원 구조는 국비 40%, 도비 30%, 군비 30%다. 본지가 확보한 '2026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사업 시행지침'에는 지방비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사업 중단 및 국비 반환 가능성까지 명시돼 있다.
문제는 지방재정 부담이다. 청양군 내부에서는 사업 초기부터 군 재정 압박 우려가 제기됐던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 청양군 예산 담당 부서는 당시 충남도 지원 여부가 불확실하자 군 단독으로 약 162억원 규모 자체 예산 편성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침상 전체 사업 규모는 10개 군 기준 연간 약 5853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청양군이 부담해야 하는 군비만 연간 약 170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국비와 도비까지 포함하면 청양군 한 곳에 투입되는 재정은 연간 수백억원대에 달한다.
청양군은 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재정안정화기금 약 38억원과 순세계잉여금 약 62억원 등을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담당자는 "사업이 없었다면 해당 재원은 재정안정화기금으로 적립됐을 것"이라고 밝혀, 사실상 비상재원 성격의 기금이 현금성 복지사업에 투입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청양군은 화학비료 지원 예산 일부와 농업인수당 조정도 검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농어촌기본소득 재원 확보 과정에서 기존 농업 지원사업까지 조정 대상에 올랐다는 의미다.
◇ 농협 사용처 확대 해석 논란…"지침 원문과 충돌"
가장 큰 혼선은 지역화폐 사용처 기준에서 발생했다. 농식품부 시행지침에는 면 지역 하나로마트와 농협 주유소 사용 한도를 '합산 월 5만원'으로 제한한다고 명시돼 있다. 지역 내 대체 업종이 없을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청양군은 이를 확대 해석해 일부 농협 사용 한도를 최대 15만원까지 허용했고, 이후 농식품부가 시정 요구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청양군 담당자는 "농식품부에 전화 질의를 했고, 별도 MOU 체결이 필요 없다는 취지로 답변받아 제한 완화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행지침 원문 어디에도 'MOU 미체결 시 제한 해제' 내용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결과적으로 청양군 운영 방식이 지침 원문과 충돌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만, 현장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지침 자체가 명확하지 않았다" "조직 개편 과정에서 담당자가 교체되며 인수인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반응도 나온다. 실제 농식품부 지침상 신청·접수 준비 기간은 2025년 12월부터 2026년 2월까지로 설정돼 있었다. 지침 수립과 사업 집행이 사실상 동시에 진행된 셈이다.
도립대 학생 기숙사비 중복 제한 문제 역시 지급 이후 뒤늦게 조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청양군 관계자는 "초기에는 기숙사 지원을 받으면 기본소득 지급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이후 기준이 조정됐다"고 밝혔다.
◇ "인구 유입 정책인가 현금 지급인가"…형평성 논란도
농어촌기본소득은 소득·직업과 무관하게 실거주 요건만 충족하면 지급하는 보편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따라 청양군에 거주하는 공무원과 공공기관 종사자 역시 지급 대상에 포함된다.
지침상 타 지역 직장 재직자도 주 3일 이상 실제 거주가 확인되면 지급이 가능하다. 반면 타 지역에 주민등록을 둔 채 청양으로 출퇴근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지급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정책 목표와 실제 운영 구조 간 괴리다. 인구소멸 대응이 목적이라면 외부 인구 유입과 실질적 정주 확대가 핵심이어야 하지만, 현재 방식은 기존 거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현금 지급 구조에 가깝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청양군 공무원 정원은 약 768명 규모다. 이들이 모두 청양 거주 요건을 충족할 경우 개인 기준 연간 약 13억8000만원이 지급된다. 배우자와 자녀까지 동일 기준을 적용하면 지급 규모는 수십억원대로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대로 상당수 공무원이 외부 지역에서 출퇴근하고 있다면, 인구소멸 대응 지역의 행정 운영 자체가 외부 생활권에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결국 '실질 정주 인구 확대'라는 정책 목표와 현실 간 괴리가 드러난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침상 초과 사업비 발생 시 추가 부담은 도와 군이 맡도록 규정돼 있어, 향후 지급 대상 확대나 위장전입 논란 등이 발생할 경우 지방재정 부담은 더욱 커질 가능성이 있다.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공개석상에서 농어촌기본소득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해왔다. 반면 일부 주민들은 생활비 부담 완화 측면에서 긍정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진도 국민총행복전환포럼 이사장은 "지자체 재정 여건에 따라 사업 참여 자체가 어려운 지역도 적지 않다"며 "성과 검증 없이 지방비 부담만 확대될 경우 지역 간 재정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청양군은 시행 이후 실제 전입 증가 효과와 신규 정주 인구 규모 등에 대한 별도 통계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결국 이번 청양군 사례는 재정 구조와 시행 기준, 정책 효과 검증 체계가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업이 먼저 집행된 '역순 추진' 문제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범사업 확대에 앞서 지방비 부담 구조와 실제 인구 유입 효과에 대한 중간 검증이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농식품부는 지자체 설명자료를 통해 "시범사업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