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중국 자동차산업의 영향력이 전기차 가격경쟁력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핵심 부품 공급망으로 확산되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 시장 대응과 원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기업과 협력을 넓히면서, 미래차 산업의 무게중심이 중국 생태계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마주한 부담은 해외시장에서 중국 전기차와 경쟁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전기차 생산기반이 약해지고 핵심 부품 생태계의 전환 속도가 늦어질 경우 완성차 경쟁력은 물론 소재·부품·장비와 협력업체 전반의 산업 기반까지 흔들릴 수 있어서다.
미래차 전환을 기업 개별 투자에만 맡기기보다, 국내 생산을 유지하고 부품기업의 사업전환을 뒷받침할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모빌리티학회는 8일 자동차회관에서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와 공동으로 '미래차 산업발전 전략 포럼'을 열고 중국 중심 미래차 생태계 확산과 국내 자동차산업의 대응 과제를 논의했다.

인사말하는 정구민 학회장. ⓒ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이날 포럼에서는 2026 베이징모터쇼를 통해 확인된 중국 전기차·자율주행 생태계의 성장, 글로벌 완성차의 중국 공급망 의존, 국내 생산기반 유지 방안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정구민 한국모빌리티학회장은 '2026 베이징모터쇼 주요 동향 및 시사점' 발표에서 중국의 자율주행·전기차·스마트카 생태계가 핵심 이슈로 부상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가격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부품사 및 완성차 기업과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중국 기업은 이제 글로벌 완성차의 경쟁 상대인 동시에 협력 파트너로 자리 잡고 있다. 문제는 협력 범위가 넓어질수록 핵심 부품과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중국 공급망에 묶일 가능성도 커진다는 점이다.
정구민 회장이 언급한 ESR(Empty Shell Risk) 우려도 이 대목과 맞닿아 있다. 브랜드와 조립 기능은 남더라도, 차량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과 기술이 외부 생태계에 의존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축사하는 정대진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장. ⓒ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전기차 경쟁은 완성차 판매량 싸움에 그치지 않는다. 배터리, 구동계,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부품 공급망을 누가 더 촘촘하게 확보하느냐의 경쟁으로 번지고 있다. 중국은 이 영역을 하나의 생태계로 묶어 빠르게 확장하고 있고, 글로벌 완성차들은 비용 경쟁력과 개발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 기업과의 협업을 선택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산업 입장에서는 미래차 전환의 속도뿐 아니라 산업 기반의 자립성까지 함께 따져야 하는 상황이 된 셈이다.
정책 대응 필요성은 전기차 생산기반 문제와도 연결된다. 김성준 골든오크세무법인 대표는 주요국의 자국 내 생산 유인 정책과 중국산 저가 전기차 확산을 짚으며, 국내 전기차 생산 가동률 저하와 생산기지 해외 이전 가능성을 우려했다. 과거 태양광 산업에서 나타난 중국의 시장 잠식 사례가 전기차 산업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주요국은 이미 자국 내 미래차 생산기반을 지키기 위한 정책 경쟁에 들어갔다. 유럽연합(EU)은 중국산 전기차에 상계관세를 부과했고, 일본은 전략 분야 국내생산촉진세제를 도입해 핵심 산업의 자국 생산을 지원하고 있다. 포럼에서는 한국도 자동차 산업의 국가경제적 중요성을 고려해 국내생산촉진세제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발표하는 정구민 학회장. ⓒ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일본 사례는 국내 논의에 참고할 만한 비교 지점으로 제시됐다. 박정규 KAIST 교수는 일본이 경제안전보장추진법에 따라 배터리 설비투자액의 약 3분의 1을 직접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 정부는 2030년까지 자국 내 150GWh 규모의 배터리 셀 생산능력 확보를 목표로 단계적 보조금을 집행하고 있으며, 토요타는 2023년 1차 지원 사업에서 총 사업비 3300억엔 가운데 1178억엔을 지원받은 사례도 소개됐다.
국내생산촉진세제 논의는 특정 완성차 업체에 대한 지원에 머물지 않는다. 전기차 생산은 완성차 조립라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재와 부품, 장비, 물류, 연구개발 인력까지 연결된 산업 생태계의 수요를 만든다. 생산기반이 해외로 옮겨가면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협력업체의 투자 여력과 전환 동력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다.
정대진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회장도 중국 기업의 위상을 협력 대상이자 위협 요인으로 짚었다. 최근 베이징모터쇼에서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중국 자율주행 기업 모멘타와 협업한 신차를 공개한 사례는 중국 기업이 미래차 산업에서 어떤 위치로 올라섰는지를 보여준다.
전동화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바뀌는 동안 기존 부품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시장 변화에 적응해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발표하는 김성준골든오크세무법인회계사. ⓒ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부품기업의 체력 문제는 국내 자동차산업의 약한 고리로 꼽힌다. 오성민 한국자동차모빌리티산업협회 정책기획실장은 국내 2만여 부품기업 중 95% 이상이 연매출 300억원 미만의 중소·중견기업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수익성과 거래처 확보의 어려움 탓에 전동화 전환을 위한 설비투자와 기술개발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미래차 전환은 완성차 업체의 신차 출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전기차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관련 부품을 국내 생태계 안에서 조달하며, 중소·중견 부품기업이 새로운 기술 체계에 올라탈 수 있어야 산업 전환의 기반이 유지된다. 기술개발, 설비투자, 인력양성에 대한 지원이 함께 논의돼야 하는 이유다.
중국 중심 미래차 생태계의 확산은 한국 자동차산업에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글로벌 완성차가 중국 공급망을 활용해 가격 경쟁력과 개발 속도를 확보하는 동안,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국내 생산기반과 부품 생태계를 지킬 것인가.
국내생산촉진세제 논의는 세제 혜택 하나를 추가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는 자동차산업에서 국내 생태계가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정책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