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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컨텍스터 선언⑥] 텍스터는 프롬프트를 믿고, 컨텍스터는 프레임을 만든다

 

최홍규 EBS 연구위원 | press@newsprime.co.kr | 2026.05.06 11:10:49
[프라임경제] 회의실에서 이런 장면을 마주친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인공지능(AI)에게 "우리 제품의 장점을 정리해줘"라고 입력하고, 그 결과물을 그대로 보고서에 붙여 넣는다. 

반면 다른 누군가는 같은 AI에게 먼저 이렇게 묻는다. "지금 우리가 풀어야 할 진짜 문제가 뭔가?" 두 사람은 같은 도구를 사용했지만, 출발한 지점이 달랐다. 전자는 AI에게 답을 시켰고, 후자는 AI를 끌어들이기 전에 문제를 먼저 설계했다. 프롬프트는 같은 형식이었지만, 결과의 품질은 근본부터 달랐다.

이 차이는 단순한 기술 숙련도의 문제가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에이머스 트버스키(Amos Tversky)와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198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발표한 논문 「결정의 프레이밍과 선택의 심리학(The Framing of Decisions and the Psychology of Choice)」에서 이미 이 현상의 본질을 규명했다. 

논리적으로 동일한 문제라도 그것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판단이 정반대로 뒤집힌다는 것이다. '200명이 살아남는다'와 '400명이 죽는다'는 동일한 상황을 묘사하지만, 사람들은 전자에서는 안전한 방법을, 후자에서는 위험한 도박을 선호했다. 문제를 어떤 틀로 보느냐가 답을 결정한다. 이것이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다.

이 반세기 전 실험의 논리는 생성형 AI 시대에 더 정밀한 형태로 재현됐다. 페데리코 제르마니(Federico Germani)와 지오반니 스피탈레(Giovanni Spitale) 연구팀은 2025년 11월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Science Advances)』에 발표한 논문 「대형 언어 모델에서 출처 프레이밍이 체계적 편향을 유발한다(Source framing triggers systematic bias in large language models)」에서 4개 AI 모델에게 총 19만2000건의 텍스트 평가를 수행하게 했다. 

출처 표기 없이 텍스트만 제시했을 때 모델들은 서로 놀라울 만큼 일관된 평가를 내놓았다. 그런데 동일한 텍스트에 '특정 국가 출신이 작성했다'는 정보를 덧붙이는 순간, 평가 점수가 급격히 바뀌었다. 내용은 한 글자도 달라지지 않았다. 프레임만 바뀌었는데 AI의 판단이 달라진 것이다. 프롬프트를 구성하는 맥락이 달라지면 AI가 만들어내는 세계도 달라진다는 것을 실험실에서 실증한 결과다.

이 발견은 프롬프트를 다루는 방식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프롬프트 기술을 닦는 일은 분명 쓸모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아무리 세련된 프롬프트라도, 그것이 잘못 설정된 문제를 담고 있다면 AI는 그 문제를 더 효율적으로, 더 설득력 있게 풀어줄 뿐이다. 컴퓨터 과학에서 오래전부터 경고해온 명제가 있다. "쓰레기를 넣으면 쓰레기가 나온다(Garbage in, garbage out)." AI의 등장으로 그 명제는 더 날카로워졌다. 이제는 쓰레기를 넣어도 결과물이 매끄럽고 그럴듯하게 나오기 때문이다. 오류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류가 더 믿음직스러운 형태로 포장돼 나온다.

텍스터는 프롬프트를 입력창 앞에서 설계한다. 컨텍스터는 입력창 앞에 앉기 전에 이미 설계를 마친다. 그 설계의 핵심은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가"를 먼저 묻는 것이다. 이 두 질문은 한 글자 차이처럼 보이지만, 그 사이에 프레임 전체가 들어 있다. 전자는 원하는 것을 빠르게 얻는 경로를 찾고, 후자는 풀어야 할 것을 정확히 정의하는 과정을 거친다. AI가 답을 잘 내줄수록, 무엇을 물어야 할지 결정하는 인간의 능력은 더 희소하고 더 결정적인 자산이 된다.

AI 활용 교육 현장에서 이 간극을 거듭 목격한다. 같은 도구를 쓰고도 어떤 사람은 "AI가 잘 정리해줬다"는 데서 멈추고, 어떤 사람은 "이 결과가 내가 묻고자 했던 것에 정확히 응답하고 있는가"를 재차 따진다. 후자는 AI의 답을 받은 뒤에도 프레임을 재조정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들이 더 나은 프롬프터여서가 아니다. 더 명확한 사유자이기 때문이다. AI를 잘 쓰는 기술과 문제를 잘 정의하는 능력은 다른 층위에 있다. 전자는 배울 수 있고, 후자는 단련해야 한다.

프롬프트는 도구다. 프레임은 판단이다. 도구를 잘 다루는 것과 판단을 잘 내리는 것은 서로 다른 능력이다. AI 시대에 텍스터가 더 좋은 프롬프트를 찾는 동안, 컨텍스터는 더 정확한 질문을 만든다. AI가 아무리 정교해져도, 무엇을 물을지를 결정하는 자리는 언제나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당신이 오늘 AI에게 입력한 첫 문장을 다시 들여다보라. 거기에 담긴 프레임은 누가 만들었는가. AI가 만들어준 프레임 위에서 질문하고 있지는 않은가.

최홍규 EBS 연구위원 / 미디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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