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장애인 고용 확대의 다음 과제는 '어디에 채용할 것인가'로 옮겨가고 있다. 법정 기준을 채우는 것뿐 아니라 장애 유형과 개인 역량에 맞는 직무를 발굴해야 고용 유지와 경력 형성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1000인 이상 기업 장애인 고용률 추이. 1000인 이상 기업의 장애인 고용률은 2022년 2.77%에서 2025년 3.06%로 꾸준히 상승했다. 장애인 고용의 양적 확대와 함께 직무 다변화, 고용 유지 방안 마련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 프라임경제
그동안 기업 현장에서 장애인 채용은 청소, 주차 관리, 카페 바리스타, 단순 사무보조 등 일부 직무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았다. 해당 직무 역시 필요한 일자리지만, 제한된 직군만으로는 장애인 고용의 외연을 넓히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최근 민간기업과 고용서비스 기업,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장애인 직무를 다변화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예술·체육 분야 전문 직무부터 서비스 현장, 산업 보조 업무까지 장애인 일자리의 범위를 넓히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유베이스의 자회사형 표준사업장 '유베이스 유니티'가 꼽힌다. 유베이스 유니티는 예술·체육 분야 역량을 가진 장애인을 채용해 안정적인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서초한우리오케스트라와 예그리나합창단 단원 등 예술 분야 인력을 정규직으로 고용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장애인 고용을 단순 보조 업무에 한정하지 않고, 개인이 가진 예술·체육 역량을 직무로 인정한 사례다. 장애인에게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여하고, 기업에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가치 창출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제니엘 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제니엘은 2011년 사회적 기업 '제니엘플러스'를 설립해 장애인의 안정적인 사회 진출을 지원해왔다. 제니엘플러스가 운영하는 카페 '헤이듀'에서는 장애인 직원 11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헤이듀는 장애인 근로자가 고객 응대, 음료 제조, 매장 업무 등 서비스 직무를 수행하는 공간이다. 유베이스가 예술·체육 분야의 전문성을 직무화한 사례라면, 제니엘은 서비스 현장에서 장애인 일자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 중 하나는 '적합한 직무를 찾지 못해서'다. 의무고용 필요성은 인식하더라도 실제 현장에서 어떤 업무를 맡길 수 있을지 판단하지 못해 채용 대신 부담금을 선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재훈 어울림에이치알에스(HRS) 전무는 "기업들이 장애인 채용에서 어려워하는 부분 중 하나는 직무에 맞는 인재를 찾고 현장에 배치하는 과정"이라며 "장애 유형과 업무 난이도가 맞지 않으면 근로자와 기업 모두 적응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업무를 중심으로 직무를 설계하면 단순 업무 보조가 아니라 전담 역할을 맡을 수 있고, 장기근속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입사 이후에는 초기 적응 기간 동안 후견인 또는 관리자를 배치하고, 업무 단순화와 반복 훈련, 합리적 편의 제공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간극을 줄이기 위해 민간 고용서비스 기업들도 역할을 넓히고 있다. 어울림HRS는 기업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장애인 채용 컨설팅과 채용대행을 강화하고 있다. 기업별 직무 환경을 분석하고, 장애 유형과 업무 특성에 맞는 채용 방식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어울림HRS는 장애인 직접 고용이 부담금 납부보다 ESG 경영과 비용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는 점을 기업에 설명하며, 직무 발굴과 채용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지역 기반 채용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지사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공공부문도 직무 다변화에 나서고 있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 사업을 통해 산업 현장 수요에 맞는 신규 직무를 발굴하고 있다. 이 사업은 중증장애인이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직무를 개발하고 실제 채용으로 이어지도록 지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앞서 공단 사업을 통해 발굴된 직무도 다양하다. 출산 축하 공예품 제작원, 치과용 의료기기 제작 보조원, 공공 운동시설 클리너, K-컬처 헤리티지 디자이너 등은 산업 변화와 현장 수요를 반영한 직무 사례로 소개됐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중증장애인 고용모델 개발·확산 사업 추진 절차. 이 사업은 취업이 어려운 중증장애인을 대상으로 민간기업과 장애인 유관기관이 신규 고용모델을 개발·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 한국장애인고용공단
직무 다변화는 장애인 고용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개인의 역량과 직무 특성이 맞지 않으면 채용 이후에도 장기근속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반대로 장애 유형과 강점에 맞춰 직무를 설계하면 근로자의 적응 가능성과 기업의 고용 유지 가능성이 함께 높아질 수 있다.
장애인 고용정책도 이제 '몇 명을 채용했는가'를 넘어 '어떤 직무에서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는가'를 함께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간기업의 법정 기준 달성은 의미 있는 변화지만, 고용의 지속성을 높이려면 직무 개발과 사후관리 체계가 병행돼야 한다.
결국 장애인 일자리 확대는 단순히 채용 문을 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이 직무를 새로 설계하고, 민간 고용서비스 기업이 채용과 적응을 돕고, 공공기관이 신규 모델을 확산할 때 장애인 고용은 숫자 중심을 넘어 지속 가능한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