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요즘 들어 컨택센터 관리자들이 부쩍 기운이 빠지고 소심해졌다. AI가 상담 콜을 전수 조사하면서 오프닝 인사는 했는지, 필수 안내는 빠뜨리지 않았는지, 심지어 특정 표현을 몇 번이나 썼는지까지 대시보드에 실시간으로 찍혀 나오다 보니 리더의 말이 힘을 잃었다는 것이다.
상담사들은 이미 AI한테 피드백을 받는다. 대시보드로 자신의 성과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으니, 관리자들의 피드백이 필요가 없어졌다. 예전에 능숙하게 해내던 일들은 이제 기계의 몫이 되었다. 정작 리더가 서야 할 자리는 안개처럼 뿌옇기만 하다.
구시대의 질서에서는 탈출했지만, 새로운 지도를 손에 넣지 못해 방황하는 나그네의 심정과도 닮아 있다. 하지만 이 막막함은 리더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단지 시선을 두어야 할 목적지가 바뀌었음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생겨난 찰나의 혼란일 뿐이다. 기술이 이토록 완벽하게 수면 위의 행동을 측정해내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리더의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의 심연'을 향해야 한다.
우선 리더는 대시보드가 절대 할 수 없는 일을 찾아야 한다. AI가 찍어낸 숫자는 결과라는 수면을 훑을 뿐, 그 행동을 빚어낸 심연의 뿌리까지는 읽어내지 못한다. 세 번이나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받다가 폭발 직전인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상담사를 떠올려보자. AI는 그가 규정대로 사과했는지는 판별하겠지만, 헤드셋 너머로 들려오는 고객의 짜증섞인 불만과 모니터에 띄워진 복잡한 상담 이력을 확인하며 느꼈을 막막함이나 두려움은 알아채지 못한다.
알아채고 위로 한다 한들 기계의 위로는 형식적이라고 여겨진다. 이때 관리자가 해야 할 일은 감점 요인을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든 상담을 끝까지 버텨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며 데이터에 잡히지 않는 노력을 알아봐 주는 것이다. 다가가고, 이야기하고, 함께 웃는 것, 그리고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라는 따뜻한 한 마디는 AI 알고리즘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심연의 영역이다.
또한 리더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이 아니라 그 이면의 풍경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상담사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을 때 "솔 톤으로 목소리를 높이세요"라고 지시하는 것은 가장 손쉬운 처방일지 모르나, 가장 허망한 대책이기도 하다. 리더는 그 무거운 침묵의 심연 아래를 파고들어야 한다. 아침에 아픈 아이를 떼어놓고 온 건 아닌지, 쏟아지는 무차별한 폭언 속에 마음의 방어막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건 아닌지를 살피는 것, 그것이 인간 리더만이 할 수 있는 입체적인 진단이다.
과거 교육 현장에 태블릿 PC가 보급될 때 많은 이가 교사의 종말을 예견했지만, 지금 학교에서 벌어지는 실제 풍경은 사뭇 다르다. 틀린 수학 문제에 AI 튜터는 즉각적인 정답과 해설을 내밀지만, 교사는 그 아이가 어젯밤 부모의 불화로 뜬눈으로 밤을 지샌 사실을 먼저 알아챈다. 기술의 진화가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는 분명하다. 지식을 전달하고 결과를 측정하는 기계적인 일은 기술에 맡기되, 사람은 오직 사람만이 읽어낼 수 있는 '삶의 깊은 맥락'에 시선을 집중하라는 것이다.
더불어 리더의 피드백은 단순한 교정을 넘어 심리 카운슬링으로 진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상담사가 무엇을(What) 했는지에 집중해 스크립트를 다듬고 화법을 재교육하는 데 시간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는 왜(Why)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물어야 할 때다. 친밀감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고객에게 먼저 제안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상담사가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건 화법 연습이 아니다.
"고객과 가까워지는 게 왜 그렇게 불편한가요? 당신의 심연 속에 어떤 불안이 숨어 있나요?"라고 묻는 이 질문 하나가 상담사가 스스로를 가두고 있던 벽을 허물고 다시금 야성을 회복하게 만드는 마중물이 된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능력이 아니라 시선이다. 집 관리를 맡은 사람이 자신의 역할을 단순히 '청소'라고 정의하면 온통 청소거리만 찾게 된다. 하지만 '집을 가꾸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고쳐야 할 곳, 더 예쁘게 만들 곳, 새로 채워야 할 곳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능력이 달라진 게 아니라 시선이 달라진 것이다.
컨택센터 리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역할을 '품질 관리'라고 보면 대시보드의 빈칸을 채우는 일만 남지만, '사람을 키우는 것'이라고 보는 순간 상담사의 표정과 목소리의 결, 오늘의 에너지가 모두 소중한 신호로 보이기 시작한다.
AI가 그려낸 차가운 그래프 결과에 안주하지 말자. 리더의 시선이 머물러야 할 곳은 대시보드의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가 생략해버린 상담사의 일렁이는 마음. 그 표정 이면의 숨겨진 감정, 그리고 그들의 깊은 내면이어야 한다.
지윤정 (윌토피아대표/ 성신여대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