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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자동차결산③] 전기차 빈부격차 시대

승자 독식 구조 재현…플랫폼·규모·신뢰도 갖춘 소수만 살아남는 단계

노병우 기자 | rbu@newsprime.co.kr | 2025.12.18 14:41:49
[프라임경제] 2025년 국내 전기차시장은 성장의 해라기보다 격차가 확정된 해에 가까웠다. 시장규모는 완만하게 확대됐지만, 그 과실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았다. 전기차 전환이라는 동일한 출발선 위에 서 있었던 완성차 브랜드들은 이제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시장에서도 주도권을 공고히 했다. 반면, 나머지 브랜드들은 경쟁구도에서 사실상 이탈했다.

현대차 아이오닉 9. ⓒ 현대자동차


전기차시장 역시 내연기관 시장과 마찬가지로 승자 독식 구조가 재현된 셈이다. 다만 차이는 분명하다. 내연기관 시대의 격차가 상품경쟁의 결과였다면, 전기차시장에서 벌어진 격차는 △플랫폼 △규모 △투자 여력 △신뢰도가 한 덩어리로 작동한 구조적 결과라는 점이다.

2025년을 기점으로 국산 전기차시장은 더 이상 '전기차를 만들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조건을 갖췄느냐가 브랜드의 생존 여부를 가리는 기준이 됐다.

◆전기차도 결국 '라인업' 게임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성과는 단일 모델의 성공이 아니다. 아이오닉 5·6, EV6, EV9 등으로 이어지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기반 풀 라인업 전략이 본격적으로 힘을 발휘한 결과다. 소형부터 대형 SUV까지, 가격대와 차급을 촘촘히 채운 구조는 소비자 선택지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아의 전용 콤팩트 SUV 전기차 EV3가 글로벌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보여줬다. ⓒ 기아


특히 올해는 전기차 구매 기준이 결정적으로 달라진 해였다. 전기차가 더 이상 기술 체험이 아니라 생활형 이동수단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충전인프라 △서비스 네트워크 △중고차 잔존가치 △브랜드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하는 소비자가 급격히 늘었다. 이 변화는 검증된 대형 브랜드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과적으로 현대차·기아는 전기차시장에서도 내연기관과 유사한 점유 구조를 만들어냈다. 전기차가 새로운 시장이 아니라 기존 시장의 연장선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순간, 기존 강자의 우위는 오히려 더 강화됐다.

◆전기차 '빈자리'가 만든 격차

반면 나머지 국산 완성차 3사의 전기차 존재감은 2025년 들어 더욱 희미해졌다. 문제는 단순히 판매량이 적다는데 있지 않다. 시장 내에서 맡고 있는 역할 자체가 불분명해졌다는 점이 더 본질적이다.

한국GM은 내수 전기차 라인업이 사실상 공백 상태다. 글로벌 GM 차원에서는 전동화 전략이 진행되고 있지만, 한국시장에 적용되는 속도는 현저히 느리다. 이로 인해 한국GM은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 주체라기보다 관망자에 가까운 위치로 밀려났다.

세닉 E-Tech 100% 일렉트릭. ⓒ 르노코리아


르노코리아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기차 전략의 중심축은 해외에 맞춰져 있고, 국내 시장을 위한 명확한 전기차 로드맵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았다. 일부 전기차 모델 추가 도입 가능성이 거론되지만, 브랜드 전체를 견인할 수준의 체계적인 전략으로 보기에는 한계가 뚜렷하다.

KG 모빌리티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전기차를 도입했지만, 플랫폼 확장과 후속모델 연결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전기차를 존재시키는 것과 경쟁시키는 것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 대목이다. 단일 모델 중심 전략으로는 이미 고도화된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현실이 확인됐다.

◆기술 격차보다 더 큰 '플랫폼·규모' 격차

2025년 전기차시장의 핵심은 배터리 용량이나 주행거리 숫자가 아니었다. 소비자들은 플랫폼 완성도,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충전속도, 브랜드가 제시하는 장기 방향성을 더 중시하기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격차는 급격히 벌어졌다.

현대차·기아는 전기차를 단발성 프로젝트가 아니라 10년 이상을 내다본 구조 산업으로 설계해 왔다. 나머지 브랜드들은 여전히 전기차를 추가 라인업 수준에서 접근하는 인상을 지우지 못했다. 이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누적되며, 단기간에 따라잡기 어려운 격차로 굳어지고 있다.

무쏘 EV. ⓒ KG 모빌리티


특히 전기차는 생산규모가 곧 원가경쟁력과 직결되는 시장이다. 판매량이 적은 브랜드는 배터리 조달, 플랫폼 투자,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구조적으로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시장은 자연스럽게 대형 사업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2025년은 전기차에 대한 소비자 인식이 결정적으로 바뀐 해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전기차를 산다'는 행위 자체가 상징적 선택이었다면, 이제는 '어느 브랜드의 전기차를 사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보조금 축소, 충전요금 인상, 잔존가치 이슈까지 겹치면서 소비자는 더욱 보수적인 판단을 내리기 시작했다. 이 환경에서 현대차·기아는 '안전한 선택지'로 굳어졌고, 전기차 전략이 불투명한 브랜드들은 비교 대상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났다.

◆전기차도 '가진 자의 게임' 됐다

2025년 국산 전기차시장은 더 이상 모두에게 기회의 장이 아니다. 기술 전환기라는 명분 아래 펼쳐졌던 초기 경쟁 국면은 끝났고, 이제는 플랫폼·규모·신뢰도를 갖춘 소수만 살아남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전기차 빈부격차는 단순한 판매 성적표가 아니다. 이는 국내 완성차산업이 어디까지 구조적으로 재편됐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전기차는 이제 도전의 영역이 아니라 조건을 갖춘 기업만 참여할 수 있는 산업이 됐다. 그리고 2025년은 그 격차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든 해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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