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분양 호황에 편승해 주택사업에 올인했던 건설사들이 흔들리고 있다. 한때 '안전판'이던 주택 중심 구조가 지금은 실적 둔화의 출발점이자 인프라 역량까지 약화시키는 약점으로 드러나면서, 업계 전반에 포트폴리오 재정비 압박이 거세지고 있다. 과거에는 통했던 안정 전략도, 앞으로는 시장 변화에 맞춘 유연한 대응과 미래 성장동력 확보 없이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평가다.
인구 감소와 초고령화가 본격화되면서, 지역 소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건설사들이 생존하기 위해선 주택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업으로 포트폴리오를 확장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택 위주 사업은 시장 경기 변동이나 자재값 상승 등 외부 요인에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5대 건설사의 올해 3분기 실적은 리스크 축소와 수익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나는 등 체질 개선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3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물산(028260)의 건축(주택 포함) 매출 비중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3%포인트(p) 떨어진 66.6%를 기록했으며, GS건설(006360)은 12.1%p 하락한 63.4%로 집계됐다.
이어 현대건설(000720)과 DL이앤씨(375500)는 각각 55.6%(-9.6%p), 52.3%(-7.2%p)로 비중이 줄었다. 반면 대우건설(047040)은 동기간 0.7%p 상승한 65.9%로, 건축 매출 비중이 오른 유일한 건설사였다.
이와 함께 대형 건설사들은 주택과 건축 사업을 넘어 새로운 분야로 눈을 돌리며 포트폴리오 다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2021년 환경, 2022년 에너지 분야를 사업 목적에 추가하며 친환경·에너지 중심 기업으로 변신을 추진하고 있다.
GS건설은 프리패브(Prefab) 모듈러 주택, 2차전지 배터리 재활용 등 친환경 신사업을 확대하는 동시에, 데이터센터 건설 전반을 아우르는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관련 시장 공략에 나섰다.
현대건설도 소형모듈원전(SMR), 수소, 풍력, 태양광,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등 미래 에너지 분야 기술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원전, 재생에너지, 전력중개사업과 신재생에너지 EPC(설계·조달·시공) 사업도 강화하고 있다.
건산연 연구위원은 "확장하려는 사업과 기존 사업의 연관성을 고려해 기업별 상황에 맞는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며 "사업 부서 신설, 자회사 설립, 지분 투자, M&A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건설업, 연구개발 투자 미흡…장기 경쟁력 확보 과제
하지만 건설업계의 연구개발(R&D) 투자 비중은 여전히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 주요 대형 건설사 10곳을 대상으로 한 올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평균 0.68%에 불과하며, 이는 제조업 등 다른 산업군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다.
총 투자액은 8601억원으로 전년 대비 7.5% 증가했지만, 매출 증가분과 맞물리면서 전체 비중은 사실상 큰 변화가 없었다. 투자 비중이 1%대를 넘은 건 삼성물산(1.61%), 현대건설(1.05%), 대우건설(1.04%)뿐이며, 나머지 건설사들은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렀다.
이처럼 R&D 투자 비중이 낮은 배경에는 건설업 구조적 특성이 자리한다.
건설업은 기본적으로 입찰과 수주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갖고 있어, 장기적인 연구·개발 성과가 불확실한 분야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공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는 단기적인 비용과 수익 관리가 최우선 과제가 되기 때문에, 장기적인 기술 개발은 자연스럽게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는 것.
게다가 최근 몇 년간 잇따른 안전사고로 인해 안전경영 부담이 커지면서, 기업들의 자원 배분은 더욱 제한적이 됐다. 안전관리와 법적 규제 대응에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투입되면서 독자적인 기술 연구 확대는 더욱 어렵게 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은 본질적으로 수익성 관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산업 구조"라며 "안전경영 부담까지 늘어난 상황에서 자체 연구개발을 대규모로 확대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다만 일부 선도 기업들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스타트업과의 협력이나 기술 투자, 지분 투자 등을 통해 단기간에 필요한 기술을 확보하는 전략을 선택하고 있다.
즉, 자체 R&D 비중은 낮지만 외부 혁신과의 연계를 통해 기술 확보 속도를 높이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건설업이 구조적 한계를 안고 있는 만큼, 자체 연구에만 의존하기보다 외부 혁신과 협력하는 방식이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실질적 방안"이라고 분석한다.
결과적으로, 국내 건설사들의 R&D 투자 현황은 여전히 미흡하지만, 시장 구조와 기업 전략 측면을 고려하면 단순한 투자 금액 확대만으로는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난다. 향후 건설업계의 경쟁력 확보는 기술 개발을 위한 내부 투자와 외부 협력의 균형, 그리고 신기술·친환경 분야로의 사업 확장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