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우리나라 산림산업은 오랫동안 전통적인 1차 산업의 영역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최근 기후 위기와 지역 소멸, 그리고 급변하는 산업 구조 속에서 산림의 가치는 새롭게 재조명되고 있다.
필자는 올해 산림청 산하 공공기관 한국임업진흥원에서 추진하는 '청년 산림창업 마중물 지원사업'의 운영사무국으로 참여하며 이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청년들을 만났다.
투자자로서 바라본 이들은 단기간에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며 몸집을 불리는 '블리츠스케일링(Blitzscaling)' 방식의 '유니콘'보다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생존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낙타(Camel)'와 닮아 있었다.
제한된 자원에서도 지속 가능성과 생존력을 우선시하며 장기적 안정성을 도모하는 '낙타 전략'이야말로, 긴 호흡이 필요한 임산업에 가장 적합한 모델이기 때문이다.
◆ '진정성'을 파는 청년들, 숲에서 답을 찾다
왜 지금 청년들은 도심이 아닌 산림에 주목하는가? 이는 현재 소비 트렌드의 핵심인 '진정성 경제(Authenticity Economy)'와 깊은 연관이 있다고 감히 생각한다.
기술이 고도화될수록 대중은 역설적으로 가공되지 않은 '자연적인 진정성'을 갈망한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서순라길'이나 '로컬 힙'이 부상하는 현상은 고유한 스토리가 담긴 '장소성(Sense of Place)'에 대한 열광을 반증한다.
청년 창업가들은 밤, 버섯, 목재와 같은 전통적 임산물을 단순한 식자재가 아닌, '경험'과 '라이프스타일' 콘텐츠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들에게 산림은 단순한 생산지가 아니라, 독창적인 브랜드 스토리를 입혀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의 땅이다.
◆ 화려한 비전 뒤에 숨겨진 차가운 현실
하지만 가능성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많은 청년 산림창업가가 산림자원을 통해 도전하고 있는 식품 및 소재 산업은 본질적으로 높은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식품 안전성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원재료의 품질을 균일하게 통제하기 어려운 특성은 초기 창업팀에게 거대한 장벽이다. 규모의 경제를 이루지 못하면 제조 원가 비중이 높아져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기도 어렵다.
실제로 현장에서 목격한 애로사항들은 매우 구체적이었다. 밤 가공식품을 개발한 기업은 훌륭한 아이템을 가졌음에도 저장 시설이 미비해 사업 확장에 제동이 걸렸고, 국산 목재 기반 제품을 만드는 팀은 복잡한 KC 인증과 양산 체계 구축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감을 맛보았다.
기능성 대추 생산 기업 또한 산림자원의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유통 및 브랜딩 역량 부족으로 초기 시장 진입에 한계를 겪었다. 이는 단순한 시행착오가 아니라, 산림 기반 제조업이 갖는 구조적 문제였다.
이에 ‘청년 산림창업 마중물 지원사업’은 막연한 아이디어 지원을 넘어 '문제 인식의 구체성'을 파고드는 데 집중했다. 고객이 돈을 지불할 정도로 괴로운 문제(Pains)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이를 해결할 실전형 사업화 과정을 지원했다.
시제품 개발, 기능성 테스트, 패키징 개선뿐만 아니라 온·오프라인 유통 채널을 직접 연결하여 '팔리는 구조'를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원 기업 대부분이 초기 시장 검증을 마쳤고, 일부는 관공서 납품 검토나 해외 진출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이는 지역성과 산림자원의 특성을 기반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돕고, 지자체 및 공공기관과의 네트워크를 연계해 생태계 기반을 강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넓은 지원'에서 '깊은 육성'으로: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청년 산림창업은 개인의 도전을 넘어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는 '마중물'이다. 이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는 정책의 패러다임도 진화해야 한다. 초기 단계의 산림창업은 IT 서비스와 달리 물리적 인프라와 긴 호흡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다수의 기업에 소액을 지원하는 '넓은 지원'보다는, 산림 분야의 소수 정예 팀을 발굴하여 '깊이 있는 밀착 관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특히, 단년도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준비-실증-확장'으로 이어지는 다년도 성장 트랙(Track)을 마련해야 한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힘든 산림자원 저장·가공 인프라를 공공 영역에서 확충하고, 식품 안전 및 인증과 관련된 규제 샌드박스를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창업가들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줘야 한다.
◆ 부족함보다 과함이 낫다는 마음으로
산림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이며, 이를 활용한 창업은 지역의 지속가능한 내일을 만드는 중요한 과정이다. 숲이라는 거친 시장에 도전하는 청년들이 건강한 '낙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산림 기반 창업은 지역의 확실한 미래 먹거리가 될 것이다.
청년 산림창업은 이제 단순한 '가능성'을 넘어 지역과 산업의 생존을 위한 '필요성'의 영역으로 진입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부족함보다 과함이 낫다는 마음으로 청년 창업가들의 도전을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고, 산림자원을 기반으로 한 미래 임산업 성장의 마중물 역할을 해내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주진영 탭엔젤파트너스 부대표현) 탭엔젤파트너스 부대표
현) 단국대학교 벤처창업융합전공 겸임교수
전) 삼성전자 전략기획 파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