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 ⓒ 강경상고 제27대 총동창회
[프라임경제] 한국은행 신입으로 출발해 옛 은행감독원과 신용관리기금 등 굵직한 조직을 두루 거쳐, 금융감독원 선임국장까지 오른 인물이 있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 이사장이다.
조성목 이사장은 '금감원 포청천', '보이스피싱 때려잡는 남자', '그놈 목소리를 공개한 단속반장' 등 강경한 이미지를 구축해 왔다. 이 가운데 '포청천'이라는 별명은 저축은행 부실화 조짐을 남들보다 먼저 인지, 외부의 유혹과 압박에도 과감히 조치에 나선 데서 비롯됐다.
그가 지나온 길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서민들의 고통을 가장 가까이서 마주했던 시기도 있다. 2001년 4월2일 금감원 사채피해신고센터에 부임한 직후, 그는 평생 잊지 못할 전화를 받았다.
"단돈 200만원 빌렸다가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 티켓다방에 팔려 갈 뻔한 젊은 여성의 전화였어요. 울면서 '몇 시까지 집 앞으로 나오라'고 협박을 받는 중이었죠."
조 이사장은 즉시 서초경찰서 수사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공문은 나중에 줄 테니 형사들 좀 보내달라"며 사실상 떼를 쓰듯 요청했다. 결국 여성은 위험에 처하기 직전 구조됐다.
그는 "그때 진짜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라"며 당시 일을 회상했다.
조 이사장은 저축은행 사태 당시에도 현장을 지키는 '최전선 인물'이었다. 폐쇄된 저축은행 본점 앞에서 울부짖던 예금자들을 떠올리며 "가슴이 얼마나 아팠는지 모른다"고 했다.
사실 그는 IMF 구제금융 도입을 겪으면서 저축은행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한 상태였다. 불합리한 청탁과 회유가 끊이지 않았지만, 이를 모두 거절했다.
"높은 곳에 부탁해 승진을 시켜줄 수 있다, 좋은 자리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등 많은 유혹이 있었지만, 단호히 마다했다."
이 결정은 훗날 위기를 정면 돌파하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깨끗한 인사였기에 저축은행 사태가 터졌을 때 '소방수' 역할로 중책을 맡을 수 있었다. 그가 직접 구조조정을 이끈 저축은행은 약 133개에 달한다. 임석 솔로몬금융그룹 전 회장에 대한 고발장 역시 직접 작성했다.
조 이사장은 "엄정하되, 상대를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마음에 못 박을 일을 하지 않았다"며 "그래도 평생 남들 안 하는 일, 험한 일만 하다 보니 마음이 힘들어 어느 순간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포청천 뒤에 가려졌던 여린 속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고위직에 오른 뒤에도 그는 공부를 멈추지 않았다. 경기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직장 생활 틈틈이 학업을 이어가 다시 경기대에서 박사학위를 따냈다. 퇴임 이후에는 민간조직인 서민금융연구원을 세워 원장을 맡았고, 현재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리고 지금, 그의 관심은 또 다른 곳에 향해 있다. 모교 강경상고다.
현재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후배들을 위한 장학사업을 직접 챙긴다. 자신이 집필한 금융 관련 입문서 두 권을 활용해 '독후감 경진대회'를 열고, 우수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수여한다.
조 이사장은 "이제 금융 문제사범 단속의 험한 길 대신 서민금융을 마음껏 연구하고 장학사업이나 하면서 지내겠다"며 인생 2막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