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이 첫 연임 도전에 나섰지만, 미래에셋이 단임 원칙을 내세우며 반대 의사를 드러내자 선거 흐름이 흔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성과와 소통 문제를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부각되는 모습이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서 회장은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코스피 5000 이후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는 적임자"라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그는 "협회장으로서 필수 요건 중 하나는 대관능력으로, 지난 3년간 임무를 수행하며 금융당국을 비롯한 정부, 여야 국회의원, 유관기관 등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했다"며 "저는 한번 쓰고 버리기엔 아까운 회원사 자산이 되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새로운 사람이 이런 관계를 형성하려면 2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며 "치밀한 논리와 대관능력을 바탕으로 업계가 직면한 중대 과제들을 누구보다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업계에서는 "성과 자체는 부정할 수 없지만 연임으로 이어질 정도의 무게감을 갖췄는지는 따져볼 문제"라는 신중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 디딤펀드 외 체감 성과 제한…핵심 과제는 '지연'
서 회장은 취임 후 퇴직연금 활성화를 목표로 디딤펀드를 출범시키고, 조직 개편을 통해 중소형사·운용사 지원 기능을 강화했다. 디딤펀드는 안정적인 수익률을 기록하며 일부 성과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상장지수펀드(ETF)·대체투자 등 대체 상품군 확산에 가려 시장 영향력이 제한적이었다는 평가가 많다. 설정액도 대다수 운용사가 10억~50억원 수준에 머물러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핵심 공약이던 공모펀드 직상장은 도입 일정이 연이어 미뤄지며 성과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못했다. 원래 지난해 말 시행이 목표였으나 세부 제도 설계와 시장 적합성 검토가 길어지면서 올해 연말로 다시 미뤄진 상태다.
또 다른 핵심 과제였던 법인지급결제 도입도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관련 논의가 사실상 중단되면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증권사의 지급결제 업무 확대는 중소·벤처 기업 금융 접근성 개선 효과가 기대됐던 만큼 업계에서는 아쉬운 반응이 많다.
업계 한 관계자는 "성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업계가 체감한 제도 변화로 연결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 출장 논란·소통 아쉬움…"현안 많은 시기엔 부재 길었다"
서 회장의 해외출장 이력도 연임 부담 요소로 꼽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그는 취임 이후 총 17차례, 130일간 해외 출장에 나선 것으로 파악된다. 일정 중 상당수는 유럽과 북미 지역에서 진행됐고, 일부는 금투협 단독 일정으로 구성돼 출장 필요성과 성과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는 공모펀드 직상장, 법인지급결제, 발행어음 제도 개선 등 굵직한 현안이 동시다발적으로 논의되던 시기였던 만큼, 협회장이 장기간 자리를 비운 점을 두고 업계에서는 "회원사 의견을 모으고 정부와 조율해야 할 골든타임에 자주 해외에 있었다"는 말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금투협은 "정례적 성격의 국제회의 참석과 회원사 CEO단과의 공동 출장"이라며 "단독 일정도 업계 협력 확대 차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성과가 업계에 충분히 공유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어, "출장 목적과 성과가 보다 투명하게 공개됐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남는 분위기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협회장이 해외 일정에 나서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현안이 쏟아지던 시기였던 만큼 업계와의 접촉면을 넓히는 역할이 더 필요했다"고 말했다.
◆ 미래에셋 "단임 전통 유지해야"…표심 재편이 최대 변수
연임의 가장 큰 변수는 서 회장의 오랜 근무지였던 미래에셋의 입장 변화다. 금투협 회장 선거는 분담금 규모에 따라 표 영향력이 달라지는 구조여서, 대형사 표심이 결과를 좌우한다. 연임을 둘러싼 기류는 미래에셋의 공식 입장 표명 이후 더 뚜렷해졌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협회장은 단임이 맞다"며 "승계는 한 번뿐이라는 기존 원칙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실상 연임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서 회장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지던 대형사 중 하나가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셈이다.
투표권 비중이 큰 대형사의 움직임은 향후 판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연임 반대를 공식화한 만큼 다른 대형사도 입장 정리에 들어갈 것이라며 표심 재편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 한 중견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무게감 있게 거론되던 후보군이 빠지면서 판세가 요동쳤다"며 "서 회장에게 가장 우호적일 수 있는 미래에셋증권의 이탈이라는 점에서 영향이 작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어 "성과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지만 연임을 정당화할 정도의 체감 변화를 느끼진 못했다"며 "지금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는 목소리도 많다"고 덧붙였다.
◆ 선거 향방은 '표심 재편'이 핵심…금투협 일정도 변수
선거는 서 회장, 황성엽 신영증권 사장,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의 3파전 구도로 전개되고 있다. 다만 표심이 특정 후보로 쏠릴 경우 실질적인 양자 대결로 좁혀질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히 대형사 표 비중이 큰 구조상 초기 구도가 선거 직전까지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금투협은 오는 19일 후보 공모를 마감한 뒤 후보추천위원회를 중심으로 서류·면접 심사를 진행해 내달 초 총회에 올릴 최종 후보자를 확정한다. 이후 회원사 총회에서 비밀투표로 차기 회장을 선출한다. 당선자는 내년 1월부터 2028년 12월까지 3년 임기를 맡아 업계 현안을 총괄하게 된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선거는 단순히 특정 후보의 연임 여부를 넘어 협회가 앞으로 어떤 역할을 할지, 그리고 대형사 중심의 구조가 그대로 유지될지에 대한 평가가 함께 이뤄지는 분위기"라며 "정책 대응력, 업계 소통, 조직 운영 등 전반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진 만큼 어느 후보든 시장 변화에 맞는 리더십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