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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3500억달러 선불' 압박…韓, 외환위기·車 관세 이중고

관세 성과 거론해 '현금 투자' 강요…러트닉 "대미 투자 증액 요구"

임채린 기자 | icr@newsprime.co.kr | 2025.09.26 14:14:45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90조원)를 '선불(up front)'로 받아내겠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한·미 무역협상이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 연합뉴스


[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의 대미 투자 3500억달러(약 490조원)를 '선불(up front)'로 받아내겠다고 공개 발언하면서 한·미 무역협상이 중대한 갈림길에 놓였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자동차 관세를 15%로 낮춘 가운데 한국은 여전히 25%를 유지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높은 관세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의 대미 투자 확보 요구가 맞물리면서 한국 정부와 산업 전반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는 모습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틱톡 합의 관련 행정명령 서명 직후 기자들에게 "우리는 과거 다른 나라들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가 이토록 잘한 적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관세와 무역 합의 덕분에 한 사례에서는 9500억달러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전에는 전혀 지불하지 않던 금액이다. 일본에서는 5500억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달러를 받는다"며 "이것은 선불"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선불'을 언급한 것은 한국의 대미 투자금이 단순한 협력 차원이 아닌 관세 인하의 조건부 대가라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미는 지난 7월30일 타결한 무역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대미 투자의 구성과 이행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보증 위주로 구조 방식을, 미국은 일본식 모델을 강요하며 현금성 자금을 원한다.

더 나아가 이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장관은 최근 한국의 투자 규모를 일본 수준인 5500억달러에 근접하도록 증액할 것을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사실상 감당 불가능한 조건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4일(현지시간) 뉴욕 주유엔대한민국대표부에서 스콧 베선트 미 재무장관을 접견해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며 "경제·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양국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짚은 바 있다.

지난 22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통화스와프 없이 3500억달러를 모두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한국은 지난 1997년 외환위기와 같은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며 외환안정 장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우려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최근 블룸버그통신 인터뷰에서 "3500억달러는 우리 외환보유액의 70%에 달하는 규모"라며 "통화스와프 없이 이를 이행한다면 한국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협상팀뿐 아니라 국민 정서도 미국식 요구를 그대로 수용하기 어렵다"며 "추가 협상이 장기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부연했다.

김 총리가 공개적으로 외환보유액 비중까지 언급해 경고한 것은 이번 협상이 단순한 통상 문제가 아닌 한국 경제의 안전판과 직결돼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약 4163억달러 수준으로 3500억달러를 단기간에 현금 투자 형태로 제공할 경우,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가 폭증해 원·달러 환율 급등은 피할 수 없다.

특히 수입물가 상승과 금융 불안을 동반해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이 대통령과 김 총리가 '외환위기'라는 단어를 잇따라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와 달리, 한국 경제 체력이 강화됐다고 해도 단일 투자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약 20%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외환 유출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외교가에서는 내달 말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만나 관세·투자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업계 일각에서는 협상이 장기 교착으로 빠질 경우, 한국 경제는 외환 불안과 자동차 산업 타격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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