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은 지난 22일부터 거래소 서울사무소에 근조 현수막을 걸고 있다. =박진우 기자
[프라임경제] 한국거래소가 글로벌 시장 추세와 대체거래소(ATS) 성장세에 발맞춰 주식 정규 거래 시간을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시가단일가 조기 개장과 애프터보드 신설이 유력하게 논의되지만, 증권업계와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에 부딪히며 난항이 예상된다.
3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한국거래소는 지난 29일부터 각 증권사에 설문조사 공문을 발송하며 의견 수렴에 나섰다. 이 설문은 이날 오전 11시까지 회신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설문에는 전산 시스템 개발 부담과 인력 배치 등 현실적인 인프라 구축 여부를 묻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됐다.
제시된 거래 시간 변경안에는 △시가 단일가 오전 7시30분 조기 개장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20분까지의 접속매매 △오후 3시20분부터 3시30분까지의 종가단일가 △신규 도입될 애프터보드(After Board)가 오후 3시40분부터 8시까지 운영되는 방안이 담겼다.
또한, 설문 문항에는 위 제시안의 수용 가능 여부, 정규장 시작 선호 시간, 정규장 거래 연장 시 시스템 개발에 필요한 시간 등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거래소가 주식 거래 시간 연장에 속도를 내는 가장 큰 배경으로는 지난 3월 출범한 대체거래소(ATS) 넥스트레이드의 빠른 성장세가 꼽힌다.
넥스트레이드는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12시간 거래를 제공하며, 이달 들어 일평균 주식 거래대금이 8조6853억원을 기록, 한국거래소의 약 45% 수준에 달하는 등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했다.
특히 프리마켓과 애프터마켓의 거래대금이 넥스트레이드 전체 거래대금의 30% 이상을 차지하며, 거래소 마감 후에도 매일 2조원 이상의 주식이 거래됐다.
업계 관계자는 "넥스트레이드의 시장이 커지면서 거래소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며 "넥스트레이드가 규제 한도에 근접할 정도로 성장하자 거래소도 점유율 방어를 위해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함께 글로벌 주요 거래소들의 24시간 거래 체제 개편 움직임도 한국거래소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일간 거래 시간을 현행 16시간에서 22시간으로 늘리고, 나스닥은 내년 하반기부터 24시간 거래 체제를 추진 중이다. 최근에는 런던증권거래소(LSE)도 24시간 거래 도입을 공식 검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자본 유치를 위한 글로벌 경쟁 심화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거래 시간이 연장되어 접근성이 높아진 시장으로 자금이 쏠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내 증시만 현행 거래 시간을 유지할 경우, 해외 증시로의 자금 유출이 가속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다만 거래 시간 연장이 순조롭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증권사들은 시스템 변경 및 인건비 증가에 대한 부담을 표하며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이번 거래시간 연장 추진에 대해 "비용과 인력, 노무 부담이 커지고 해외 주식시장처럼 2교대 근무까지 필요해질 수 있다"며 "거래 시간을 늘린다고 해서 실질적인 이득이 크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는 한국거래소가 자신들의 점유율을 뺏길 것 같으니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내부 임직원들의 반발도 문제다. 한국거래소 노동조합(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 한국거래소 지부)은 지난 22일부터 거래소 서울사무소에 근조 현수막을 걸고 "협의 없는 독단적 거래 시간 연장에 증권업계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운명했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 관계자는 "설문을 보낸 건 사실"이라며 "다만 아직 검토 단계에 있다"라고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