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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재건축 속도전 "2030년 전에만 끝내면 괜찮다?" 공공안전은 어디에

 

전훈식 기자 | chs@newsprime.co.kr | 2025.08.01 09:55:47
[프라임경제] "ICAO 개정안 적용은 2030년 이후라, 그 전에 조합을 설립하고 사업시행계획 인가까지 마치면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목동6단지 재건축 현장을 찾아 밝힌 말이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고도제한 개정안을 피하겠다는 명확한 의지 표현이다. 재건축을 추진 중인 주민 입장에선 반가운 발언이다. 개정안 시행 전 초고층 설계 기준으로 인허가를 마치면 규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속도전'이 서울시 전체, 나아가 국가 항공안전 체계와 도시계획 원칙에 부합하는 것인지, 근본적 물음이 남는다.

ICAO는 약 70년 만에 고도제한 기준을 개정해 김포공항 반경 11~13㎞ 이내 지역에 단계적 고도제한을 적용하도록 권고했다. 항공기 안전 비행 확보가 그 목적이다. 

해당 반경 안에 포함된 목동·여의도·상암 등 서부권은 사실상 초고층 개발에 제약을 받게 된다. 특히 목동6단지(최고 49층), 7단지(최대 60층) 등은 이 기준이 현실화될 경우 설계 변경이나 사업성 저하가 불가피하다.

서울시는 이에 대응해 '2030년 전 인허가 완료'를 목표로 삼았다. 도시계획 심의를 앞당기고, 조합 간 갈등이 있어도 처리기한제를 도입해 인허가 속도를 높이고 있다. TF까지 꾸려 전방위 대응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일각에선 이런 '선 인허가, 후 규제 시행' 방식이 사실상 국제기준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라는 비판도 제기된다.더욱이 고도제한은 단순한 도시개발 규제가 아니다. 항공안전이라는 절대적 가치에 기반한 국제 기준이다. ICAO 개정안은 2030년까지 유예기간을 부여했을 뿐, 장기적으로는 모든 회원국이 이 기준을 이행해야 한다.

서울시가 종전 기준으로 인허가를 마친다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규제를 피한 건축물이 항공 안전에 영향은 없을까? 또 규정을 피할 순 있어도 위험은 남은 상태에서의 개발이 책임 있는 결정일까?

나아가 향후 국토부가 ICAO 개정안을 국내법에 반영할 경우 서울시 인허가와 국가 기준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여지도 크다. 그 책임은 서울시뿐만 아니라 국제 기준을 따르지 못한 대한민국 전체가 떠안게 될 수도 있다.

형평성 논란도 피할 수 없다.

일부 단지는 고도제한 시행 전에 초고층 인허가를 받고 다른 단지는 시행 이후 낮은 층수로 제한받는다면, 같은 지역 내에서조차 조합 간 갈등이 심화될 수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지역 불균형과 사업 편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적으로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도시 정책으로서 바람직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속도를 낼수록 더 치밀하고 다층적인 법적‧기술적 대응이 뒷받침돼야 한다. ICAO 고도제한은 단순한 규제가 아닌 '국제사회가 합의한 안전 기준'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도시계획은 단순히 빠른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 '속도감 있는 정비사업 추진'은 주민을 위한 결정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항공안전과 국제규범'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예외를 만들기 시작하면 도시 전체 신뢰와 일관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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