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미국과 일본이 자동차 관세를 기존 25%에서 15%로 인하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 정부와 자동차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북미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수출 시장이기 때문이다. 일본만 관세 인하 혜택을 받을 경우 한국 완성차업체들이 역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에 정부는 일본과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 혜택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본격적인 대미 협상에 돌입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고위급 실무진을 워싱턴에 파견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및 상무부와 협의를 할 예정이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23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회의에서 "일본과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외교·통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강조하는 핵심 논리는 '형평성'이다. 한국은 이미 미국과 자유무역협정(이하 FTA)을 체결한 동맹국임에도, 미·일 양자 협의를 통해 일본만 관세 혜택을 받는다면 차별적 조치로 비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정 국가에 유리한 무역 환경이 조성되는 것은 FTA 정신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업계의 반응도 긴박하다. 미국은 현대자동차와 기아에게 있어 최대 시장이며, 수출뿐 아니라 현지 생산도 확대 중이다. 그러나 수입 관세율 차이가 발생할 경우 가격경쟁력에서 일본 브랜드에게 밀릴 수 있는 것은 물론, 중장기적 이미지 및 점유율 유지에 위협이 된다.

미국이 다음달 1일 시행 예정이던 대 일본 상호관세 세율을 25%에서 15%로 낮추기로 합의했다. ⓒ 연합뉴스
특히 이번 협상에서 미국이 관세 인하의 대가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일본 역시 이번 자동차 관세 인하 합의를 체결하면서, 미국산 쌀을 비롯한 일부 농산물에 대해 시장 개방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전체 농산물 관세 인하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지만, 미국이 쌀을 포함한 민감 품목을 협상 카드로 삼은 것은 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5500억달러(약 760조원) 규모의 대미 투자도 약속했다. 이번 투자는 △반도체 △의약품 △철강 △조선 △중요 광물 △인공지능 등 경제·안보 핵심 분야에 집중될 예정이며, 특히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에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국은 관세 인하와 맞교환할 항목으로 농산물, 투자 약속, 에너지 협력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는 한국과의 협상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특히 과거 한미 FTA 개정 협상 당시에도 미국은 △사과 △배 △쌀 등의 민감 품목을 집중적으로 요구한 바 있어, 충북 제천·충남 예산 등 과수 산지에서는 이미 "자동차 수출을 위해 농촌이 또 희생당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자동차산업의 이익과 농업계의 피해를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절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미·일 관세 합의는 단순한 통상 이슈를 넘어 북미시장을 둘러싼 한·일 간 산업 경쟁의 분수령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은 농산물 시장 개방과 대규모 투자를 함께 제시하며 미국과의 통상 전략을 전폭적으로 설계했다. 한국은 이와 동일하거나 그 이상의 협상카드를 마련해야만 '15% 관세 인하'라는 성과를 확보할 수 있다.
더욱이 일본은 미국 내 전기차 생산 인프라 확보에는 다소 늦었지만, 토요타·혼다·닛산 등은 수십 년에 걸쳐 현지 공장을 운영하며 고용창출과 기술 투자에서 장기적 입지를 다져왔다. 미국 정부와의 협상력 역시 이런 누적된 신뢰와 관계 속에서 발휘된 결과라는 분석이다.
이와 달리 한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IRA), 배터리 원산지 규정 등 불리한 제도 환경에 직면하면서 북미 내 입지 확대가 시급한 과제다.
다만, 전기차 대응력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앞서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현대차는 2023년부터 앨라배마에서 GV70 전동화 모델을, 기아는 2024년부터 조지아에서 EV9을 양산 중이다. 여기에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yundai Motor Group Metaplant America, HMGMA)까지 감안하면, 현지 생산 기반은 빠르게 확대되는 중이다.
판매량에서도 현대·기아는 미국에서 지난해 12만대 이상의 순수 전기차를 판매하며, 테슬라에 이어 판매 2위를 기록하는 등 일본 업체들을 압도했다. 이는 현대차그룹의 시장 대응 속도와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결국 이번 협상의 핵심은 단순한 관세 인하 여부를 넘어 한국이 북미시장에서 미래 성장 전략을 지킬 수 있느냐는 데 달려 있다. 정부와 업계가 나란히 협상 테이블에 나선 만큼, 관세 협상은 물론 산업 정책과 연계한 다층적 대응 전략이 요구된다.
만약 일본 수준의 조건 확보에 성공할 경우 한국은 북미 수출 기반을 강화하고 무역 불균형 해소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으며, 반대로 협상 실패 시 한국 자동차산업은 △가격경쟁력 △외교 △이미지 전 방면에서 불리한 위치에 놓일 위험이 크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이번 미·일 관세 합의는 단순 통상 이슈를 넘어 한국 자동차산업이 산업, 외교, 무역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분기점이다"라며 "일본과 동등 이상의 협상 결과를 반드시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