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민간 주도 스테이블 확산을 우려하며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향후 통화정책에 대해서는 수도권 가격 급등세를 고려해 추가 인하 속도와 시기를 결정하겠다고 시사했다.
이 총재는 지난 1일(현지 시각) 포르투갈 신트라에서 열린 유럽중앙은행(ECB) 포럼 정책토론에 참석해 이같이 밝혔다. 포럼에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 앤드루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 카즈오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 등이 참석했다.
◆ 스테이블코인 "자본유출·통화주권 훼손 우려"
이 총재는 "최근 미국에서 지니어스법이 통과되며 많은 핀테크 회사들이 정부에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며 "하지만 비은행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한은의 권한을 넘어서 정부 기관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어 "규제되지 않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한다면 달러 표시 스테이블코인으로의 전환을 더 쉽게 만들고 국내 자본유출입 관리를 약화시킬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블록체인 신기술로 불규칙한 거래를 식별하고 고객 확인(KYC)을 준수하며, 이상 거래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각국 중앙은행장들도 이 총재의 의견에 동조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정부의 규제 프레임워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디지털 자산이 확산되는 시기일수록 통화 시스템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도록 규제적 기반을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베일리 영란은행 총재도 "스테이블코인이 화폐로서 신뢰와 명목가치 보존을 충족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가르드 ECB 총재는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강한 어조로 "화폐가 사유화될 가능성이 높고, 공공의 이익에도 좋지 않다"며 "스테이블코인은 통화정책 수행 능력을 약화시키고, 의도치 않게 통화 주권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고 경계했다.
◆ 기준금리 인하 기조 유지…"속도·시기, 금융안정 따져야"
이 총재는 이날 포럼과 외신 인터뷰를 통해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대한 입장도 분명히 했다. 현재 한국 경제가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국면인 만큼 완화적 통화정책은 필요하지만, 가계부채와 주택가격 상승 등 금융안정 위험 요인이 뚜렷해 속도 조절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이후 기준금리를 1%포인트(p) 낮췄고, 현재도 완화 사이클을 유지하고 있다"며 "다만 최근 수도권 주택 가격이 매우 빠르게 오르고 있어, 추가 금리 인하의 속도와 시기를 결정할 때 금융안정 위험을 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가계부채는 통화정책의 가장 큰 우려사항"이라며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약 90%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수도권 집값 급등세와 맞물려 금융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며 "인하 여지는 있지만 매월 경제지표를 보면서 결정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재정정책에 대해선 "올해 성장률 전망은 0.8%로 잠재성장률인 2%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은 일시적인 재정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으며, 약 0.2%p의 성장률 제고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또 "최근 글로벌 관세 이슈는 물가 상승보다는 디플레이션 요인에 가깝다"며 "보복 관세 가능성이 낮고, 중국발 수입물가 하락세와 성장 둔화로 총수요 압력도 크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어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 등 품목별 관세가 지속될 경우 국내총생산(GDP)에 1%p 이상의 충격이 있을 수 있다"며 "AI 수요 증가 등으로 반도체 산업은 회복세지만,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관세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이 총재는 "대중은 여전히 3% 성장을 기대하고 있지만, 잠재성장률은 이미 2% 이하로 떨어졌다"며 "경기 부양보다 구조개혁이 필요하지만, 중앙은행 총재로서 이에 대해 어디까지 발언할 수 있을지는 고민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