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겨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일 상법개정안 재발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입법 절차에 들어가면서 기업들의 지배구조에 미칠 파장이 주목된다. 개정안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자기주식 소각 △다중대표소송제 확대 등 기업 이사회 구성과 대주주 방어수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조항들로 구성돼 있다.
현행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집단 중에서도 특히 오너일가 지분율이 낮고 상장 계열사 수가 많은 기업집단과 과거 경영권 분쟁이나 내부거래 논란이 있었던 기업들은 이번 개정안이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한진, 1순위 타격 집단?
가장 취약한 대기업집단으로는 한진(002320)이 꼽힌다. 조원태 회장을 비롯한 오너일가는 지주사 한진칼 지분을 분산된 형태로 보유하고 있어 외부 투자자나 행동주의 펀드의 연합 공격에 노출되기 쉽다.
실제로 2020년 한진칼(180640) 주주총회에서는 KCGI와 반도건설 연합과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졌고 당시 한진 측은 자사주를 재단에 출연해 의결권을 부활시키는 비상조치까지 동원해 겨우 승리했다. 그러나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같은 자사주 활용 편법은 차단된다.
특히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소액주주나 기관이 연합해 이사 선임에 실질적인 영향을 줄 수 있어, 이사회 장악력이 더욱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대한항공(003490)·아시아나항공(020560) 합병 당시 논란이 된 국민혈세 지원 문제까지 더해질 경우 향후 주주 소송 위험도 배제하기 어렵다.
◆지주사 체제 굳힌 SK도 불안
SK(034730)는 상장 계열사 수가 가장 많은 대기업집단으로 상법 개정안이 적용되는 범위가 넓다. SK㈜를 지주사로 두고 있으나 최태원 회장의 지분율은 약 18%에 불과하다.
주요 계열사인 SK하이닉스(000660), SK이노베이션(096770), SK텔레콤(017670) 등 주요 계열사는 집중투표제나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적용될 경우 외부 추천 이사가 이사회에 진입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SK온 등 분할 자회사 IPO가 예정돼 있어 물적분할 규제나 일반주주 신주 우선배정 조항이 도입되면 자본조달 전략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그나마 SK는 그간 ESG 경영과 배당 확대 등 주주친화 정책을 선제적으로 시행해온 만큼 제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여지를 갖췄다는 평가다.
◆'순혈주의' 깨진 삼성, 외부지분 구조의 약점
삼성은 자사주 대부분을 이미 소각한 상태여서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삼성전자(005930)의 외국인 및 기관 지분이 70%를 넘기 때문에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이 도입될 경우 이사회에 외부 인사가 진입할 수 있는 구조다.
삼성물산(028260)과 삼성생명(032830) 등으로 이어지는 교차지분 구조 속에서 공식 지주사가 없는 특수한 형태도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의 기업가치 왜곡 논란처럼 향후 비슷한 구조재편 시 개정안의 '공정가치 산정 의무' 조항이 지배구조 개편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있다.
◆현대차, 지배구조 민감도 높아질듯
정의선 회장이 보유한 현대차(005380)와 현대모비스(012330) 지분은 각각 2.6%, 0.3%에 불과하다.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로 이어지는 출자 고리를 통한 간접 지배 체계로 운영돼 왔지만 개정안 통과 후 집중투표제 도입 시 외부 견제가 쉬워진다.
과거 엘리엇이 사외이사 선임을 시도했던 전례처럼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가 다시 개입할 여지도 남아있다. 특히 전기차·모빌리티 사업을 중심으로 한 분할상장 전략도 물적분할 규제 강화와 함께 수정이 불가피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상법 개정안은 단순히 오너일가를 겨냥한 규제가 아니라 한국 자본시장의 신뢰 회복을 위한 구조 개편의 한 축이다. 투명한 이사회 구성, 주주 권한 강화, 소수주주 보호는 코스피 디스카운트 해소의 핵심 조건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부동산 자산이 아니라 기업에 대한 투자로 개인이 이익을 얻는 선순환 시장 생태계. 상법 개정안은 그 출발점이자 기업에게는 마지막 경고일 수 있다.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