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DC현대산업개발이 제시한 용산정비창전명1구역. © HDC현대산업개발
[프라임경제] 도시정비시장이 건설업계 '선별 수주' 기조로 인해 다소 달라진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지방은 물론, 서울 유력 사업지조차 시공사 선정 과정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고, 수의계약으로 진행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다만 '차세대 대표 랜드마크'로 기대되는 사업지를 향한 구애는 여전히 치열해 이들 수주전 행보에 대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최근 건설업계에 따르면, 우수한 입지와 사업성을 앞세운 서울 도시정비 사업장들이 의외로 시공사 선정에 고전하고 있다. 건설사들이 시공권 확보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이전과는 달리 알짜 사업장조차 참여 여부를 놓고 심사숙고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경기 침체와 공사비 급등 등으로 정비사업 수주에 있어 출혈 경쟁을 피하고,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고 있다"라며 "특히 입찰 과열로 인한 부작용은 물론, 조합과의 갈등이 예상되는 사업지의 경우 입찰을 기피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실제 수도권을 포함한 서울 유력 정비 사업지 다수가 경쟁 입찰에 실패하고, 수의계약으로 전환하고 있다.
최근 '강남권 재건축 대어' 송파구 잠실우성 1·2·3차와 개포주공 6·7단지 시공사 선정에 각각 GS건설과 현대건설이 단독 참여하면서 입찰이 무산된 바 있다. 이들 모두 재입찰인 만큼 이변이 없는 한 수의계약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용산 한남3구역 재개발사업 역시 두 차례에 걸친 입찰에 모두 참여한 DL이앤씨가 수의계약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삼성물산은 지난 4월, 1조300억원 규모 '신반포4차 재건축 사업' 시공권을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권을 확보했다. 3월에는 입찰제안서를 제출하지도 않은 2369억원 상당 삼호가든5차 재건축 사업의 경우 우선협상대상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나름 사업성을 확보한 서울 도시정비사업마저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바뀌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펼쳐지는 '핵심 정비 사업지' 용산정비창‧압구정을 둘러싼 치열한 수주 경쟁을 향한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번 대결은 단순 정비사업 수주전을 넘어 강북‧강남 '중심 축'을 확보하려는 대형사 브랜드 경쟁인 동시에 향후 10년 서울 도심 재개발 주도권을 결정짓는 분수령으로 해석된다.

포스코이앤씨가 용산정비창 전면 제1구역에 제안한 '대형평형'. © 포스코이앤씨
우선 강북 지역에서는 시공사 선정을 약 한 달 앞둔 용산정비창전면1구역 시공권을 두고, HDC현대산업개발과 포스코이앤씨가 막바지 경쟁이 한창이다.
용산정비창전면1구역은 용산 한강로3가 일대 약 7만1901㎡ 부지에 지하 6층~지상 38층 규모 △공동주택 12개동 777가구 △오피스텔 894실 △상업‧업무시설 등을 포함한 초대형 복합개발 프로젝트다. 추정 사업비가 1조원 규모로 '서울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수혜가 기대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은 '아이파크 브랜드 복원' 목표로 설계·사업비 제안 등에서 강공을 펼치는 동시에 △용산역과의 연결성 △보유 용산 일대 개발 이력 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용산역과 사업지가 연결되면 주거 가치가 상승하고, 유동 인구 통한 소비층 확보로 인해 상가 분양에도 긍정적 영향을 준다고 게 HDC현산 측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오피스텔‧상가‧업무시설 등 모든 분양 대상 건축물을 대물변제하겠다는 입장이다. 조합 리스크를 없애기 위해 미분양 발생시 공사 대금을 돈이 아닌 미분양 물량으로 대신 받겠다는 의미다.
나아가 공사비‧금융 조건(사업비)‧이주비‧공사 기간 등도 포스코이앤씨보다 우위 조건을 제안했다.
반면 포스코이앤씨는 펜트하우스‧대형 주택형 중심 고급 설계를 앞세워 차별화를 강조했다. 전용 111㎡ 이상 대형 주택형(280가구)을 조합 제안(231가구)보다 늘리는 동시에 200㎡ 규모 펜트하우스(11가구)도 구성한다는 전략이다. 나아가 호텔 브랜드 '하얏트'와의 협업을 통해 세탁‧반려동물 돌봄‧전문 의료기관 연계 건강검진 서비스 등도 제공한다.

완공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불변의 가치'로 인정받고 있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 현대건설
강남 지역에서는 '재건축 황금알'로 평가되는 압구정 현대아파트 일대 압구정2구역을 두고 '업계 1위' 삼성물산과 '업계 맏형' 현대건설 간 진검승부가 예고된 상태다. 해당 수주전은 사업권을 넘어 강남 고급 브랜드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적 승부수다.
해당 사업은 지난 1982년 준공한 압구정 신현대아파트 9·11·12차 1924가구를 지하 5층~지상 65층 총 2571가구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총 공사비 2조4000억원으로, 조합은 오는 6월 시공사 입찰 공고한 후 9월 시공사 선정 총회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압구정 현대아파트 시공 이력을 내세운 현대건설은 '정통 계승자'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에 지난 2월 △압구정 현대(압구정 現代) △압구정 현대아파트(압구정 現代아파트) 등 상표권 총 4건을 출원하고, 우선심사를 진행했다. 준공 수십 년이 지난 단지 명칭을 상표로 등록하는 건 이례적이다.
나아가 대형 법무법인도 선임했다. '압구정 현대' 명칭이 무단 사용되거나 또는 혼용되는 불상사를 방지하는 동시에 고유 자산 가치 전승에 매진한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상표권 등록 이후 명칭 권리를 조합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삼성물산은 최근 압구정 현대아파트 단지 맞은편에 프라이빗 라운지 '압구정 S.라운지(S.Lounge)'를 개관하고 브랜드 홍보에 나섰다. 해당 라운지는 조합원 대상으로 그릴 주택 단지 모형도와 설계개요 등 정보를 제공하고, 소통을 넓히기 위해 마련됐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단순 브랜드 홍보를 넘어 비교 불가 상징성을 지닌 지역 품격과 위상을 한 차원 끌어올린 혁신적 청사진을 공유한다는 전략이다. 나아가 삼성물산이 그리는 향후 주택 단지 모형도‧설계 개요 등 차별화된 기술과 사업 경험 정보를 제공하고, 미래 비전을 영상‧프리젠테이션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압구정 S.Lounge' 외관. © 삼성물산
용산정비창‧압구정2구역 시공사 선정은 최근 도시정비사업 트렌드를 상징하는 사례라는 게 업계 시선이다. 정비 수주 패러다임이 가격에서 브랜드 가치, 기획력 중심으로 옮겨가는 상황에서 시공사의 총체적 도시개발 역량을 검증하는 무대로 자리 잡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정비사업지에서 경쟁 입찰이 보기 힘든 가운데 남다른 상징성을 앞세운 용산정비창‧압구정 재개발 사업은 벌써부터 치열한 대결이 예고되고 있다"이라며 "특히 압구정2구역의 경우 한남4구역을 놓친 현대건설이 '정통계승자'를 앞세운 복수전도 기대된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하반기 예정된 여의도‧성수‧목동 등 대형 시공권 경쟁에서도 이들 사업지와 같이 고급화 또는 기획력 중심 경쟁 구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