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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안 떠나는 전통 부촌' 재건축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들

압구정 2구역 일대 '정착 수요' 확산…개발 이익보다 거주 품질 선호

김주환 기자 | kjh2@newsprime.co.kr | 2025.04.16 15:38:33

압구정 2구역 신현대아파트 단지 일원. = 김주환 기자


[프라임경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재건축 사업이 본격 궤도에 오르면서 다시 한번 시장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곳은 바로 압구정 2구역으로, 오는 6월 시공사 선정을 앞두고 사업에 탄력이 붙는 모양새다. 다만 정작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은 '개발 이익'이 아닌 '삶의 질과 거주의 연속성'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는 분위기다.

압구정 일대는 반포와 함께 3.3㎡당 1억원 이상 아파트가 가장 많은 '국내 대표 부촌'이다(KB부동산 기준). 더군다나 대부분 준공 40년 이상 노후 단지로 이뤄진 만큼 '재건축에 따른 가치 상승 여력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압구정 일대 재건축사업에 있어 가장 빠르게 추진되는 구역이 신현대 9·11·12차 아파트 27개동 1924세대로 이뤄진 '압구정 2구역(준공 1982년)'이다.

압구정 2구역은 재건축사업을 통해 최고 65층 초고층 높이 14개동 2571세대(임대 321세대 포함) 규모 한강볌 고급 주거단지로 탈바꿈한다. 추정 공사비만 무려 2조4000억원으로, 이는 '한남뉴타운 최대 단지' 4구역(1조5723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업계 관계자는 "압구정 2구역은 한강 조망권·지하철 3호선 초역세권·도심 접근성 등 입지 조건이 최고 수준"이라며 "재건축 후에는 개포동, 반포동 최고가 아파트를 넘어서는 3.3㎡당 1억5000만원 이상도 가능하다"라고 평가했다.

'전통 부촌'으로 불리는 압구정 일대는 재건축 흐름에 남다른 신고가를 연일 갱신하며 이목을 끌고 있다. 실제 지난 2월 압구정 2구역 전용 155㎡(11층) 매물이 78억원에 거래돼 신고가를 기록했고, 전용 198㎡ 역시 118억원이라는 '역대 최고가'를 달성하기도 했다.

이런 우수한 사업성으로 무장한 압구정 2구역을 차지하기 위한 시공사 경쟁도 치열하다. 현대건설(000720)은 '압구정 현대아파트'라는 기존 브랜드 명칭 상표를 선점해 지역 정체성에 기대는 분위기다. 반면 삼성물산(028260)은 한남4구역 승리를 발판 삼아 본격 강남권 진출을 노리고 있다.

"우리 집 78억이라고 해도…딱히 이사 갈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내부 상황은 사뭇 다르다. 거주민들은 '개발에 따른 이익'보단 '현재 삶의 질'을 우선시하는 분위기다. 

본지가 찾은 압구정 2구역은 고요한 평일 오전에도 활기가 감돌았다. 단지 내 상가와 인근 학원가, 그리고 병원·백화점 등 탄탄한 생활 인프라가 어우러진 모습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정든 삶터를 떠나고 싶지 않다'는 정착 수요가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압구정 2구역 신현대아파트 단지 일원. = 김주환 기자


# 우리 집 크기가 78억원에 거래됐다지만, 그게 내 생활과 크게 다르진 않다. 지하철도 가깝고, 주변에 병원·마트·학원 등이 다 있어 이사할 이유를 못 느낀다. - 신현대 11차 단지 거주 60대 남성

# 아이 학교와도 가깝고, 단지 안에 상가도 있어 편하다. 재건축으로 더 좋아질 순 있겠지만, 현재 상황에서 굳이 이사 갈 생각은 아직 없다. - 12차 단지 거주 40대 여성

이런 정착 수요는 '압구정'이라는 지역이 단순 부동산 투자처를 넘어 일상과 밀도 높게 형성된 사회관계망 플랫폼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특히 상가 소유 비율이 높고, 소형 아파트 비중이 적은 대신 중대형 실거주 중심 단지가 많아 '생활 기반형' 정착 특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국토부·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압구정 2구역 실거주 비율은 강남권 평균(약 40%)보다 훨씬 웃도는 6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더군다나 압구정 일대 대다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에 따라 외부 투기성 수요도 차단된 만큼 거주 목적이 아닌 거래가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매물은 줄고 실거주 기반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현지 부동산 관계자 역시 "압구정 일대는 매물보단 매수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라며 "여기에 실거주자 위주로 안정적 수요가 입지를 굳히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뿐만 아니라 직접 거주하고 있는 조합원 대다수가 단기 시세 상승보다는 쾌적성이나 지역 커뮤니티 보존 등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오히려 재건축에 따른 스트레스를 제기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특히 사업에 따라 10여년 상당 공사 기간이나 이주·복귀 스트레스 등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압구정은 상업·교육·교통 인프라를 모두 갖춘 자족형 고급 주거지"라며 "단순 고급화나 자산 증식이 아닌, 현재 삶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방향으로 정착 수요가 형성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나아가 오히려 초고층 개발에 따른 '도시 피로감'이 언급되고 있다. 또 국방부의 '고층 건물에 대한 대공 방어 의무 조항' 등 규제도 인허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 조합 관계자는 "압구정 이름 자체가 브랜드이기에 '굳이 70층까지 올릴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 점점 힘을 받고 있다"라며 "전체적으로는 높이보단 품질과 쾌적함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압구정 특성상 단순한 재건축이 아닌 '머물고 싶은 도시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집값 상승 및 초고층 프리미엄을 거론하는 외부 시선과 달리 주민들에게 현재 삶의 정체성과 연속성이 더욱 중요하다는 의미다.

단순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정주성(定住性)과 공동체 유지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지금. 압구정의 재건축은 '삶터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과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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