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판코란 지역에 위치한 KB뱅크 본점 건물. ⓒ KB뱅크
[프라임경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과 동시에 상호관세 부과 방침을 밝히자 동남아시아 시장에 진출한 국내 은행권에 비상이 걸렸다. 캄보디아·베트남·인도네시아 등 고관세 대상 국가들에 국내 주요 은행들의 법인이 집중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90일간의 관세유예로 한숨은 돌렸지만, 부동산 부실과 경기 위축에 따른 부실채권(NPL) 증가 등 '겹악재'가 본격화되고 있어 은행권의 시름은 더욱 깊어갈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동남아시아 주요국에 대해 최대 49%에 이르는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중엔 캄보디아(49%), 베트남(46%), 인도네시아(32%) 등 한국계 은행 진출 비중이 높은 국가들이 대거 포함됐다. 관세 발효의 유예에도 금융권은 이미 불확실성의 그늘에 깊숙이 들어간 분위기다.
특히 수출 비중이 높은 현지 기업들이 관세 직격탄을 맞아 자금난에 빠질 경우, 차주 기업의 연쇄적인 원리금 상환 지연 사태로 번질 수 있다는 공포감이 조성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관세 리스크로 동남아 기업의 수출과 제조업이 위축되는 효과를 감안하면 국내 은행의 실적과 건전성에도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은행의 동남아 지역 점포 수는 10년 새 25개에서 65개로 2.5배 늘었다. 자산 규모도 6배 가까이 불었다. 은행별로 보면 KB국민은행은 베트남과 인도, 싱가포르 등에 지점을, 미얀마와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에서는 현지법인을 운영 중이다.
신한은행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인도 등에, 하나은행은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사업을 키우고 있다. 우리은행은 최근 인도네시아·베트남·캄보디아 등 동남아 3대 법인의 성장성을 높이 보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커가는 몸집과 다르게 현지 경제의 불안정성도 국내은행들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등에서는 이미 팬데믹 이후 금리 인상과 부동산 경기 침체로 NPL 비율이 급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동남아 주요국 은행의 부실채권 현황 및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지난 2021년 이전까지 2% 미만이었으나 2022년 말 이후 급격하게 상승해 2023년 상반기엔 5%에 근접했다.
캄보디아의 경우도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 2022년 3%를 넘긴 뒤 2023년 상반기에는 6.3%까지 치솟았다. 특히 부동산 담보대출 확대 이후 중국 투자 감소 등의 영향으로 부실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일부 국내은행 점포에서는 NPL 비율이 10%를 초과하는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처럼 실물경제 침체와 고율 관세라는 이중 악재가 겹치자 국내 은행들은 자산 건전성 유지를 위해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한 모습이다. 은행별로는 여신 포트폴리오를 재정비하거나 고위험 산업에 대한 대출 심사를 강화하는 등 방어적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 직후 비상대책조직을 가동하고, 환율 민감 자산에 대한 리스크 점검을 강화한 상태다. 국민은행은 산업별 리스크 등급에 따라 여신 한도를 조정하고 있다. 국민은행의 동남아 법인의 경우 차세대 전산 시스템(NGBS)을 활용해 업무 효율화와 부실여신 관리에 나서고 있다.
장혜원 하나금융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융시장 구조상 부동산과 소매업 대출에 집중된 현지 여신은 외부 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며 "여신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자산 건전성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동남아는 과거에는 성장률 높은 '효자 시장'이었지만, 최근에는 관세 리스크와 실물 침체가 겹치면서 예의주시해야 할 시장으로 바뀌고 있다"며 "여신 관리 강화, 리스크 점검 고도화 등 보다 정교한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