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정부가 브레이크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는 가계부채에 제동을 건다. 정부가 꺼내든 브레이크는 대출 규제와 제도 강화다. 이에 따라 '막차타기'식 대출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금융위원회가 13일 유관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해 시중은행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선다고 밝혔다. = 장민태 기자
13일 금융위원회(이하 금융위)는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주택금융공사 △은행연합회 △금융연구원 등 유관기관과 함께 '가계부채 현황 점검회의를 개최했다.
이번 회의는 최근 지속된 가계부채 증가세 때문에 마련됐다. 이날 한국은행 발표에 따르면 8월 기준 은행권 가계부채 잔액은 1075조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월과 비교하면 한 달 새 6조9000억원이 늘었다.
금융위에 따르면 회의 참석자들은 가계부채 증가세가 더 확대되지 않도록 면밀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특히 최근 2개월간 가계부채는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시중은행 가계대출 관리 강화에 나선다. 우선 50년 만기 주담대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우회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시행한다.
이날부터 은행은 대출자 상환능력이 명백히 입증되는 경우에만 50년 만기 대출을 실행할 수 있다. 대출 전 기간에 걸쳐 상환능력이 입증되기 어려운 대출자는 최대 40년 만기까지만 대출받을 수 있다.
은행권은 장기대출이 악용되지 않도록 자체 관리하고, 집단대출·다주택자·생활안정자금 등 가계부채 확대 위험이 높은 부문은 취급을 주의하기로 약속했다.
금융당국이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를 타깃으로 정한 건 DSR 규제 구멍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DSR은 대출자가 보유한 대출의 연간 원리금(원금+이자)을 연 소득으로 나눈 뒤 100을 곱해 계산된다. 현재 규제는 대출 한도를 DSR 40% 이하로만 받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문제는 대출 만기가 길어지면 연간 원리금도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대출자가 한도를 늘리기 위해 5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한다는 게 금융당국 시각이다. 당초 DSR 규제는 상환능력에 맞춰 대출이 제공되도록 마련됐지만, 대출자들이 만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우회한 셈이다.
실제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은행권 50년 만기 주담대는 지난 7월과 8월에만 6조7000억원이 증가했다. 특히 50년 만기 주담대를 이용한 연령은 40·50대 비중이 57.1%로 가장 높았다. 60대 이상 고령층은 만기 시 110세에 도달함에도 불구, 전체 대출자 중 12.9% 비중을 차지했다. 정부가 제동을 건 배경이다.

금융위원회는 변동금리 대출 한도 산정 시 가산금리 1%p를 적용하는 '스트레스 DSR'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다. = 장민태 기자
금융당국은 향후 금리 상승 가능성을 고려해 변동금리 대출에 대한 DSR 규제 강화도 추진한다. DSR 비율 산정 시 가산금리를 적용해 대출 한도를 낮추는 '스트레스 DSR' 제도가 도입될 예정이다.
예를 들어 연 소득 5000만원인 차주가 DSR 40%에 맞춰 50년 만기로 금리 4.5%를 적용하면, 현재는 4억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스트레스 DSR 제도로 인해 가산금리 1%p가 적용돼 3억4000만원까지만 대출 받을 수 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50년 만기 대출을 대규모로 취급한 특수은행에 대해 DSR 대출 규제 특례가 제대로 운용되는지 살펴보고, 금감원은 가계대출 취급이 많은 주요 은행을 대상으로 취급실태 점검에 나설 계획이다.
김태훈 금융위 거시금융팀장은 "시중은행 등 금융권 대출관행 개선 및 DSR 제도정비 등을 추진해 나가겠다"며 "50년 만기 대출 취급과정에서 드러난 은행권의 느슨한 대출심사를 바로잡아 '상환능력 범위 내에서 빌리고 처음부터 나눠갚는' 기본 원칙이 뿌리 깊게 정착하도록 관리하기 위한 취지"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조이기에 나서자 '막차타기'식 수요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번에는 50년 만기가 타깃이지만, 다음에 40년 만기 주담대 등 다른 대출도 문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지난 2021년말에도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에 나선다고 하자 미리 대출을 받기 위한 수요가 몰렸었다"며 "아직 우리나라는 부동산 투자에 대해 불패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아파트 매매를 위한 대출 수요가 넘쳐난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난달에만 주담대 잔액이 7조원 늘었다"며 "50년 만기 주담대는 막혔으니 이제 다른 대출이 닫히기 전에 몰려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