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감독원 점검에 따르면 전자금융업권에서 다수의 자금세탁 위험이 발견됐다. = 장민태 기자
[프라임경제] 비대면 금융거래를 자금세탁에 악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지만 당국은 구체적인 대응책 없이 금융사 내부통제만 강조하고 있다. 실효성 있는 자금세탁 방지를 위해 사법부가 엄격한 처벌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은 최근 여의도 본원에서 전자금융업권 대상 자금세탁방지(AML) 내부통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당시 금감원은 이 워크숍에 중·대형 전자금융업 46개사, 자금세탁방지 업무 담당자 약 80명을 참석시켜 내부통제 강화를 주문했다.
금감원은 자금세탁방지 체크리스트를 배포해 자체점검과 자율개선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업계에서는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금융사에 있다는 엄포"라는 관측도 나왔다. 또 당국 대책은 갈수록 진화하는 자금세탁 문제를 해결하기에 역부족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지난 5일 금감원이 발표한 '비대면 전자금융업권의 자금세탁 위험요인 및 자금세탁방지체계 구축 현황 점검' 결과, 다수의 자금세탁 유형이 발견됐다.
금감원 점검에 따르면 대표적인 자금세탁 유형은 '가상계좌(선불전자지급수단)'를 활용하는 방법이다. 가상계좌는 무통장 등으로 누구나 입금할 수 있고 실입금자 실명 및 계좌번호를 알 수 없다는 특징 때문에 자금세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가상계좌는 법령상 200만원을 넘게 보유할 수 없도록 법령상 제한을 두고 있다. 하지만 충전과 구매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 악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200만원씩 10번 구매·환불을 반복하면 2000만원을 자금세탁자 계좌로 옮길 수 있다.
이같은 사각지대는 '가상자산 자금 세탁'에도 가상계좌를 악용할 가능성까지 열어 두고 있다. 현행 특정금융거래법(이하 특금법)은 가상자산 자금세탁을 방지하기 위해 가상자산거래소에 가상자산 송수신인의 신원정보 기록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이를 간단히 우회할 수 있는 셈이다.
당국이 각종 자금세탁 수법을 발견한 건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금감원은 은행권 일제 검사를 실시해 총 72억2000만달러(약 9조3800억원) 규모의 이상 외화송금 거래를 파악했다. 대다수가 가상자산과 관련된 자금세탁이었다.
금융권에 자금세탁이 확산하고 있지만 금감당국은 내부통제 강화 되풀이 중이다. 지난해 은행권 검사 후에도 금감원은 후속 조치로 '은행 내부통제 강화'를 내놨다.
점차 금융권 위법 행위가 지속되고 오히려 고도화된 수법으로 발생하자, 사법부가 자금세탁에 연루된 인원들을 강력하게 엄벌해 경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매번 은행·증권 그리고 이번에 전자금융업까지 위험이 발견되면 내부통제를 강화하라고 똑같은 소리만 한다"며 "모든 금융사고 방지에 내부통제가 절대 중요하다는 건 맞지만, 그것만으로 범죄를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자금세탁 같은 일들은 내부통제 강화만으로 막을 수 없다"며 "일을 저지른 당사자에 대한 매우 엄격한 처벌이 필요한데, 그동안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게 사실"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금융 정책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보다 사법부에서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중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