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금융당국에서 예금보호한도 상향을 검토하는 가운데 이에 따른 소비자 부담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유는 은행권 조달비용에 예금보험료가 포함되서다. 은행이 빠져나간 조달비용을 채우기 위해 대출금리를 인상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뱅크런(예금 대량 인출) 발생 시 금융회사의 예금 전액을 지급 보장하는 방안에 대해 살펴보라고 지시했다. 이는 미국 정부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사태와 관련해 예금 전액 보호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SVB 파산 여파로 국내에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가 논의되고 있다. = 장민태 기자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능성은 적지만, 유사시 정부에서 예금전액을 보호할 수 있을지 정책적 판단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며 "우리도 미국과 유사한 대응책을 쓸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이 준비돼 있는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등을 비상계획 마련 차원에서 점검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금보호한도 확대에 대한 움직임은 정치권에서 분주하다.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금융소비자들의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해서 예금자 보호한도 확대 논의를 포함해 실질적인 제대고선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도 지난 21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우리나라 예금자보호한도는 지난 2001년 상향된 이후 20년 넘게 묶여 있다"며 "시대에 맞게 보호한도 확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도 동일한 목소리가 나온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예금자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와 함께 필요에 따라 전체 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정책도 곧 발의해 추진할 방침이다.
정치권에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 근거로 내세운 건 주요 국가들 사례다. 한국 예금자보호한도는 현행 5000만원이다. 반면 주요 국가들의 예금자보호한도는 △미국 25만달러(3억3000만원) △유럽연합 10만유로(1억5096만원) △영국 8만5000파운드(1억3650만원) △일본 1000만엔(9883만원) 등이다.
이처럼 여야가 똑같은 입장을 밝히면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 가능성에 무게가 쏠리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의 목소리는 다르다. 예금자보호한도가 확대될 경우 금융소비자 부담이 증가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현행 예금자보호제도의 구조가 이들 주장에 힘을 실어준다.
예금보호제도는 은행 파산 등으로 고객 예금을 지급하지 못할 때를 대비한 제도다. 예금보험공사가 예금보험기금을 활용해 문제 발생 시 고객 예금을 대신 지급한다. 이를 위한 재원이 금융기관에서 보내는 예금보험료(이하 예보료)다.
은행권에 따르면 현재 예보료는 조달비용에 포함된다. 이는 은행 경영공시를 살펴보면 명확하다. 국내은행 공시에서 수신금리 결정체계를 살펴보면 예보료 및 업무원가가 제비용으로 포함돼 있다.
즉 은행에서 대출하기 위해 돈을 끌어오는데 들어간 비용에 예보료가 포함된다는 얘기다. 예금자보호한도 인상에 따라 예보료도 올라가고 은행에서 지불할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이 늘어난 비용을 은행은 소비자에게 전가시킨다는 게 중론이다.
비용 전가는 금융위가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예금보험료율 적정수준·요율한도 관련 검토 경과 보고서'를 살펴보면 조금 더 명확해진다. 당시 금융위는 예금보험료율 적정수준 검토를 위해 세 차례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와 소비자단체 간담회를 진행했었다. 이들 회의에서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하는 경우 소비자에 대한 비용 전가 등의 문제가 있다고 언급됐었다.
또 다른 우려는 '자금 이동'에 따른 금리 인상이다. 예시로 2억원을 보유한 금융소비자는 은행 파산을 대비할 경우 4개 기관에 돈을 보관하면 된다. 하지만 한도가 1억원으로 늘어날 경우 예금금리가 높은 2개 은행만 추려 이용해도 된다. 이에 따라 예금금리 경쟁이 발생하고,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의 금리차)를 맞추기 위해 대출금리도 동반 상승한다.
다시 말해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에 따라 대출을 이용 중인 금융소비자 부담이 오르게 된다는 게 은행의 주장이다. 이들은 뱅크런 대응이라는 제도 목적을 감안해 특별보호를 해야 하는 상품에만 예금자보호한도를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은행권 관계자는 "한도 상향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예금자 보호를 강화할 수 있는 게 일부예금 별도 한도 적용"이라며 "현재 보호 금융상품으로 운용되는 개인형퇴직연금 적립금은 별도로 5000만원까지 보호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도 상향 근거로 해외 사례가 주로 언급되는데, 일본·영국 등 해외 주요국도 일부 예금에 대해 별도 한도를 적용하고 있다"고 첨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