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지난해 현대자동차그룹은 글로벌 전기차 판매 톱5를 달성하며, 성공적인 전동화 체제로의 전환을 시작했다. 이에 올해 더욱 글로벌 전기차 리더십을 공고히 하고자 한다. 그 일환으로 △EV9 △코나 EV △레이 EV 등 경형에서부터 플래그십까지 다양한 차급의 전기차 출시를 계획 중이다.
현대차그룹이 전기차에 집중하는 이유는 내연기관 시대에서는 자신들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였지만, 전기차 시대에는 모든 브랜드들이 공평하게 똑같은 출발선상에 서있었기 때문이다. 즉, 경쟁업체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성능과 가치를 보여준다면 충분히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충분히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현대차그룹 이런 목표에 여러 걸림돌들이 있다. 먼저, 현대차그룹이 공들이고 있는 시장 중 하나가 북미 시장인데, 지난해 미국 상원이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IRA)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만 보조금을 세액공제 형태로 지급받을 수 있게 됐다. 그동안 한국 정부와 현대차그룹이 줄기차게 요구했던 북미산 최종 조립 개념 완화나 규정 시행 3년 유예는 사실상 어려워진 분위기다.
현대차그룹은 IRA가 촉발된 지난해 8월부터 현지 전기차 생산을 서둘렀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현대차그룹의 핵심인 전기차 전용 플랫폼 E-GMP(Electric-Global Modular Platform)가 적용된 모델들의 생산라인을 확보하는 데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어서다.
당초 현대차그룹의 계획을 보면 6조3000억원이 투입된 미국 조지아 주 전기차 공장은 올해 상반기에 착공해 2025년에 완공된다. 이대로라면 올해부터 아이오닉 5 및 EV6 등은 조지아 공장 완공 시점까지 2년 반 동안 전기차를 세제혜택 없이 판매를 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대를 주도하고자 하는 현대차그룹의 계획은 사실상 노동조합과의 갈등에 가로막혀 있다. 노조가 급변하는 자동차시장 생태계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고, 현실과 다소 동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현대차·기아가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전기차를 해외에서 생산하려면 기본적으로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노조는 자신들의 고용이 감소할 것을 우려해 수요가 많은 전기차의 미국 생산을 반대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일방적으로 맞추라는 논리를 펼치고 있어, 전기차 현지 생산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 노조는 현대차그룹의 국내 투자 계획도 불만이다. 지난해 5월 현대차그룹은 국내 전기차 분야에 2030년까지 총 2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노조는 뜬구름 잡는 여론몰이식 투자 계획이라고 주장했다. 현대차그룹이 제시한 계획을 노조가 납득하지 못했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면서 노조는 자신들이 만족할만한 계획을 가지고 오라고 으름장을 내놓았다.

현대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1조 근로자들이 퇴근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21조원은 전기차 생산능력 확충과 전용 전기차 라인업 다양화, 부품·선행기술 개발, 인프라 조성 등에 활용된다. 생산과 관련된 것만 놓고 보면 현대차는 울산공장 내 전기차 전용 공장을, 기아는 경기 화성에 신개념 PBV(Purpose Built Vehicle, 목적 기반 모빌리티)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한다. 더불어 기아는 오토랜드 광명과 광주공장에서도 전기차를 생산하고자 한다.
갈등이 지속되다 보니 투자계획이 수립된 지 약 8개월이 지났음에도 진행 상황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동시에 마음이 다급해진 노조는 무리하게 현대차그룹의 상황을 악용하고, 강력하게 압박해서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의 요구안들을 살펴보면 현대차 노조는 새로운 전기차 공장 신설과 정년연장을 통한 고용안정 요구, 임금피크제 폐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기아 노조는 정년연장과 생산직 신규 충원, PBV 전기차 전용 공장 생산규모 확대, 일감 배정 등이 있다. 일감 배정의 경우 기아가 일부 차량을 협력사에 외주를 주는 방식을 제안했는데, 노조는 위탁생산이 단체협약 위반이라며 협력사 인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기아 노사는 '퇴직자 차량 구매 할인 제도' 축소 여부를 놓고도 갈등을 빚었다.
현대차·기아 노조를 향한 비난이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최근에는 "정도껏 해야지"라는 비판이 거세다. 노조의 행보가 유독 생산성 개선 노력보다는 무력시위를 통해 자신들의 이득만을 챙기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감 확보 차원이다. 통상 내연기관차가 전기차로 전환될 때 필요한 부품 수는 50% 이상이 불필요해지고, 30~40% 고용 감소도 불가피하다. 더욱이 신축 또는 증설되는 공장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스마트 공장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차량을 조립하는데 필요한 인력이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다.
이를 감안하더라도 영역 밖의 문제에 대해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조의 모습은 소비자들 눈에 '보신주의(保身主義)'로 비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노조는 정년연장이 노사 모두가 윈-윈 할 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정년연장이 이뤄지면 노조는 안정적인 노후가 보장돼서 좋고, 기업은 고급 노동력을 보유해 고부가가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노조는 정년연장과 신규채용 문제는 연장선상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 다를 사측에 강요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 생산량을 좌지우지하려 하거나 전기차 공장을 지어라 등의 요구는 경영권 침해이자 회사의 사정은 나 몰라라 한 채 자신들의 배 채우기에만 급급한 모습으로 비춰진다"며 "노조의 요구안을 보면 어떤 기업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어 "미래차 관련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회사의 기조에 역행하는 주장들을 계속한다면, 글로벌 산업이 전환되고 있는 중요한 시기에 국내 산업 생태계가 무너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